복수극은 많고많지만 한 방 날리면 두 방 얻어맞고 엎치락뒤치락 고구마 오지는 게 대다수인데
가해자들 숨통만 조금씩 천천히 조여가는 일방향 전개란 점에서 일단 박수 열 번 쳤고
무엇보다 복수가 결국 피해자의 영혼도 조각내는 일이고 상대와 함께 파멸하는 길이고 제 인생도 진탕을 구르게 하는 미련한 짓인 것으로 묘사되지 않은 게 너무 좋아.
복수가 진행되면서 선인과 악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되고 악에는 악으로밖에 대응할 수없다는 걸 보여주고... 이런 거 이제 너무 질렸거든.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라던지 처절한 복수의 끝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던지 이런 허무주의적인 것은 더 싫어.
더글로리는 그렇다고 복수를 마냥 '사이다'로만 그리는 것도 아니고, 권선징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도 않아.
시청자로 하여금 단순히 나쁜 짓을 한 년놈들이 벌을 받아야 된다는 마음을 넘어서 동은이에게 새로운 '꿈'이 생기고 그것을 위해 살아갈 미래가 있기를 바라게 해.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복수부터 성공적으로 끝내야 할 것 같단 말이지. 그래야 비로소 사람 답게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서.
양호실 선생님께 꼭 이겨란 말을 듣고, 주인집 할머니께 생활을 염려받고, 이모님과의 연대를 통해서 웃음을 되찾고.
무엇보다 남주가, "도대체 어디까지 갈 작정이야?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이렇게 나무라기는 커녕 "내가 뭘 해줄까요? 누구부터 죽여줄까요?" 하고 망나니를 자처하기까지.
심지어 성형외과 의사라는 설정도 최고야. 동은이의 상처를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치료해줄 사람이란 뜻이잖아.
이 복수 자체가 동은이의 남은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일종의 치유의 과정처럼 그려져서 너무너무 좋더라. 통쾌함보다도 위안되는 게 더 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