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가 죽어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어
몸의 주인인 진부연이 말해주지 않으면 다른 이들은 진부연의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없을 테니까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변화 정도가 생기려나?
진호경이나 진초연은 낙수가 사라졌음을 직감하겠지만 그들이 장욱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면
장욱은 영이의 혼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진부연을 만나서야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될 거야
자신의 스승이자 연인이었으며 햇살이자 구원이었던 여인의 혼이 더 이상 세상에 남아있지 않음을
아주 끔찍한 이별이지
그게 그림자를 사랑한 댓가고 그림자로만 있어야 했던 혼의 운명이야
그림자는 그 자체로 홀로 존재할 수 없어
빛이 있어야 그 빛이 들지 않는 곳에 비로소 그림자가 생기는 거니까
이런 점 때문에 그림자는 빛에 의존해야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며,
그렇게 모습을 드러낼 때조차 나만의 고유한 형태가 아닌, 다른 사물의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 거야
때로는 꽃병의 형태로, 때로는 술잔의 형태로
그런데 영이는 자꾸만 불을 꺼
불이 꺼지면 세상은 칠흑처럼 어두워지고, 자신은 그 어둠의 일부가 되어버리지
그곳에서 장욱은 영이를 찾아야 하는 거야
내가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도 어루만지던 얼굴도, 안았을 때의 감촉까지 모두 지워야 해
그건 조영의 몸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감각으로 그녀를 찾을 수는 없어
오로지 영이의 혼만을 어둠 속에서 찾아야 하는 거지
빛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무엇의 형태를 빌려 드러내지 않고
오롯이 자신이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그림자는 어둠이 필요한 거야
그렇게 나를 찾아달라고 말하며 영이는 계속 불을 끄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