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스퀘어 작은아씨들 [씨네21] '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김희원 감독, 류성희 미술감독의 대담
2,333 5
2022.12.22 20:22
2,333 5

16_14_16__63a403c8c64e5_2022122218163103



<작은 아씨들>의 여성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들은 종종 사회 윤리 이전에 개인적 안위가 중요하고 돈을 향한 욕망을 애써 부정하지 않으며 불리한 일을 자처한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명 소설에 기반하지만 인주(김고은), 인경(남지현), 인혜(박지후) 자매가 가난에 맞서 생존하는 방식은 각기 조금씩 뒤틀려 있고, 인주의 직장 동료 화영(추자현)은 원령그룹의 비자금 700억원을 빼돌렸으며, 원령학교의 설립자 원기선 장군의 딸 원상아(엄지원)는 이 무대의 기획자로서 살인도 불사한다. 그리고 정서경 작가는 흠결 있는 여성들을 통해 남성 중심으로 기록됐던 한국 근현대사를 다시 조망한다. 여기에 한국 사회는 그 자체로 호러 장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완벽히 이해하는 김희원 감독의 통솔력, 작품의 지향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각화한 류성희 미술감독의 감각이 만나면서 <작은 아씨들>은 올해 가장 유려하고 담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창작물이 됐다. 영화계는 물론 드라마계에서도 흔치 않은, 주요 창작자들이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조합이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씨네21> 1385호 ‘올해의 시리즈 결산’에서 시리즈 2위·최고의 감독·최고의 스탭(류성희 미술감독)에 선정된 <작은 아씨들>의 대본집 출간을 기념해 정서경 작가, 김희원 감독, 류성희 미술감독이 오랜만에 정서경 작가의 작업실에 모였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화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https://naver.me/5zoXM3Nn



16_21_30__63a4057aa809e_2022122218163179


- 처음 세분이 함께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 정서경_예전에 <작은 아씨들>로 드라마를 써볼까 생각했던 일이 떠올라서 1부 대본을 썼다. 제작사에 보여줬더니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계속 대본을 쓰다 보니 불안해졌다. 이렇게 비현실적 요소와 현실적 요소가 섞여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서 류성희 미술감독님이 꼭 필요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날 때마다 <작은 아씨들> 얘기를 꺼내며 천천히 감독님을 옭아매갔다. (웃음) 우리가 <아가씨> 때 시나리오 얘기를 나누지 않은 건 아니지만 <헤어질 결심> 때 정말 많이 나눴다.

= 류성희_에피소드 위주로 된 트리트먼트에 박찬욱 감독님의 노트가 들어간 <헤어질 결심>을 먼저 받았고, 그다음 제대로 된 초고를 받았는데 다른 결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 정서경 작가님의 터치가 많이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에 따로 전화 통화를 많이 했다. 원래는 박찬욱 감독님을 통해 작가님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헤어질 결심>은 직접 듣고 싶었다. 그때 영감을 주고받으며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다. 이전에도 좋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협업이랄까. 하지만 드라마는 자신이 없었다. 나 없이도 정서경 작가가 드라마 <마더>를 훌륭하게 끝내셨기 때문에 어떻게든 피해가려고 했는데 이분이 시나리오를 너무 열심히 쓰는 거다. 그리고 <작은 아씨들> 대본을 봤는데 걱정이 됐다. 현실과 비현실이 섞여 있고, 문학적인 요소가 많은데 어떻게 시각화를 하지? 내가 봐도 미술이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동안의 의리가 있으니 같이 이 짐을 짊어지고 싶으면서도 고민이 됐다. 예전에 드라마 <돈꽃> <왕이 된 남자>를 보면서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는데, 여자감독과 한번도 일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사람일지 늘 궁금했다. 그리고 김희원 감독과 미팅을 하게 됐는데 굉장히 씩씩하고 만화 캐릭터 같았다. 순정 만화가 아니라 소년 만화에 나오는.

= 정서경_결국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한 거야? 나도 얼굴 때문에 같이 일했다고 해줘!
= 류성희_음, 작가님과는 옛날부터 그랬어. (웃음) 어쨌든 처음으로 여자들이 모여서 하는 작업이기도 해서 결국 함께하기로 했다.
= 정서경_<빈센조>를 보면서 연출자가 시각적인 야심이 있고 추상적인 개념화에 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희원 감독님과 일하고 싶었다. 마침 이분이 본인 작품을 할 때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면서 일하느라 다른 시나리오를 거의 읽지 않는 타입이었다. 함께 드라마를 준비하던 조문주 스튜디오드래곤 CP가 <빈센조>도 했다. 감독님이 다른 경쟁작 대본을 읽지 못할 때 우리 대본을 공 들여 들이밀 수 있었다. (웃음)
= 김희원_에이, 그냥 내가 놀고 있을 때라 그랬다. 조문주 CP님이 보기에 내가 <빈센조> 다음 작품이 없으니까 대본을 준 거지. 정서경 작가, 류성희 미술감독은 어떤 연출자라도 함께하고 싶어 할 분들이다. 먼저 4부 대본까지 받아 읽었을 때 이게 16부작의 리듬감은 아닌 것 같았다. 포맷부터 먼저 물어봤더니 12부작이라고 해서 오히려 도전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 결과물을 보면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드라마에서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 같다.
= 류성희_처음에 공유했던 큰 이야기 외에는 스탭들이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면서 현장이 굴러간다. 그래서 너무 재미있었다. 새로운 협업 체계였다. 그리고 김희원 감독님이 정말 리더십이 뛰어나다. 그래서 크루들에게 믿음을 준다.
= 정서경_일단 머릿속에 자신이 어떻게 찍을지 생각하며 대본을 읽는다. 그러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부분을 얘기한다. 장소, 동선 그리고 설명이 부족한 부분들. 그러다 작품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의견을 주고, 자신이 정말 찍고 싶은 그림을 마지막에 얘기한다. 다른 것은 크게 건드리지 않고 한회에 한번 정도 자신이 찍고 싶은 스타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감독 입장에서 의문스러운 부분을 질문할 때도 언어가 공격적이지 않다. 작가님은 정말 이게 좋으시냐고 물으며 확인한다.
= 김희원_그렇게 질문하면 웬만한 작가님들은 반추한다. 그리고 진짜로 좋다고 작가가 확신하면 그걸로 끝이다. 나도 인간이고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빨리 잘 찍기 위해 정형화된 틀이 분명히 있으니까. 주로 작가님과 의견 교환을 가장 많이 한 부분은 엔딩 시퀀스였다. 드라마에서는 엔딩이 정말 중요하다. 아주 파워풀한 신이 나오면 모든 배우와 스탭이 그 중요성을 알아차리기 때문에 더 찍기 편하다.



- <작은 아씨들>의 텍스트가 비주얼화된 과정이 궁금하다. 가령 난실에서 키우는 푸른 난초의 이미지는 어떻게 구체화됐나.
= 정서경_일단 이야기에 들어온 건 우연이었다. 박재상 재단 같은 곳에서 만들 만한 연구소는 뭐가 있을까. 아저씨 둘이 바둑 두는 모습을 떠올리다 그 옆에는 왠지 난초가 있을 것 같았다. 난초는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식물이자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너무 기이하고 동물적이면서 식물적인 환상의 생물이다. <유령 난초>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난초를 향한 인간의 기묘한 욕망이 돈에 대한 그것과 흡사해서 진화된 형태의 물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블랙 달리아’도 많이 참고했다. 여자의 죽음은 늘 꽃과 연결되는데 죽음의 현장에 떨어진 푸른 난초가 마치 블랙 달리아 같았다.
= 류성희_김희원 감독님이 걱정을 많이 했다. 드라마 내내 푸른 난초가 나오는데 자칫 가짜같이 보이면 안되니까. 영화라면 CG를 입혀서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었겠지만 드라마는 그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다른 공간보다 먼저, 제일 먼저 난초부터 디자인했다. 패브릭으로도 세라믹으로도 만들어보고 여러 버전의 난초를 제작했다.


- 난실은 원상아가 최후를 맞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 김희원_드라마 진행에 익숙하신 분들은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난실과 상아는 어떤 식으로든 함께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그 방식이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가장 말이 되는 건 불이다. 하지만 그간 목조로 만든 대형 세트에 불을 지르고 촬영했을 때 완성도 대비 배우와 스탭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작은 아씨들>에서 도일(위하준)의 아버지 희재(김명수)가 가짜로 분신하는 신도 두 테이크만 가겠다고 스탭들과 약속했던 거다. 결국 나온 아이디어가 염산이었다. <작은 아씨들>이 잔혹함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였다면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주말 프라임 타임에 나가는 15세 관람가 드라마라서 수위를 많이 낮추게 됐다. 그래서 연출이 이상하다고 느낀 시청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원래는 딱 하나만 표현하고 싶었다. 상아가 위를 올려다볼 때 염산이 눈에 떨어지는 거다. 그렇게 한쪽 눈이 타들어간 상태로 인주와 싸우다 죽는 연출을 하고 싶었는데 그건 안된다고 해서 포기했다.



16_30_28__63a4079414fd6_2022122218163256


- 4부에서 인주가 박재상 재단의 비서실장 수임(박보경)에게 돈을 뺏기고 맞는 장면 역시 반응이 갈렸다.
= 김희원_돈이 인간의 감정과 이입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이지만 어떤 시청자들은 불쾌함을 느꼈다고 했다. 시청률에 책임을 져야 하는 감독으로서 이 신이 비호감의 영역으로는 가지 않게 작가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수위를 조절했다. 솔직히 우리는 너무 좋아하는 신이다.
= 정서경_보통 A4 용지 기준으로 한 페이지가 넘어가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이 정도의 가치가 있는 신인가? 그런데 그 신은 대여섯 페이지까지 갔다. 그런데 감독님이 깔끔하게 너무 좋다고 해줬다. 그래서 기대감이 컸고 편집본을 본 후 굉장히 만족했다. 김희원 감독님이 이 신을 정말 아름답게 찍었고 인주의 고통이 화면을 보는 나한테도 느껴지는 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액션은 표정이라는 것을 박보경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느꼈다. 인주를 때리겠다는 의지와 기대감, 기쁨이 모두 드러나지 않나. 김고은 배우가 맞는 연기도 가짜처럼 보이지 않고 그 처절한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방송이 나가고 너무 부정적인 반응들이 나와 깜짝 놀랐다. 돈 때문에 인간이 맞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너무 부도덕하다고. 감독님은 어떻게 예상했나.

= 김희원_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그 농도가 짙었다.
= 정서경_실제보다 부정적으로, 보수적으로 예상하는 분인데 그런 감독님마저 예상하지 못한 거다. 그래서 생각했다. 왜 나는 이 신이 좋고 어떤 시청자들은 불쾌한 걸까? 내가 생각할 때 그 신은 4부에서 중요한 신일 뿐만 아니라 <작은 아씨들> 전체에서도 중요도가 높다. 인주에게 20억원은 가난한 과거를 청산하는 계기이자 화영 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다. 나는 인주가 돈을 육체적으로 지키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코트부터 벗고 자존심도 버리고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던진다. 11부 인주가 고모할머니가 남겨준 아파트에 들어가 우는 신을 감독님이 상당히 길게 찍었다. 그때 드라마는 인주의 과거를 플래시백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청자가 직접 회상을 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 그건 인주가 매를 맞던 장면이 되어야 했다.


- 하지만 9부 인주가 수임에게 다시 폭력을 되갚아줄 때는 통쾌하다는 반응이 많지 않았나.
= 정서경_인주가 비인간적으로 변질돼서 폭력을 행사한다며 사람들이 비난할까봐 걱정했는데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웃음) 남자들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볼 때는 그들의 고통을 보며 관중이 쾌감을 느끼지 않나. 영화에서도 어떤 남자가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죽도록 얻어 맞는 장면이 초반에 나오기 마련이다. 폭력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겐 필연적인 일이다. 그런데 여성은 맞아서는 안되는 것처럼 굴거나 혹은 성폭력으로 고통을 재현하려고 한다. 수임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의 폭력도 즐거움을 위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렇게 가능한 표현 영역을 하나씩 넓히고 싶었다.


- 8부 마지막, 인주가 상아에게 총을 겨누는 신도 화제가 됐다. 기존 장르 문법을 답습하며 성별만 반전시킨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점도 흥미로웠다.
= 김희원_작가님에게 더 길어져도 괜찮다고, 더 쓰셔도 된다고 전했던 장면이다.
= 정서경_그래서 실제로 분량이 늘어난 신이다. 나중에 시청자 반응을 보고 더 길게 갈 필요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8부 엔딩은 처음부터 계획에 있었다. 1부 엔딩과도 연결된다. 인주는 화영이 죽었다고 80~90% 생각했지만 그가 살아 있을 수 있는 나머지 확률 10%를 무모하게 따라가는 사람이다. 다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캐리어를 벽돌로 채우고 도일에게 열쇠를 맡기는 정도의 계획도 세울 수 있는 인물이다.
= 김희원_감독에게 난이도가 너무 높은 장면이었다. 캐릭터들의 감정이 널뛰기 때문에 배우들도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해서 효율적으로 찍는 게 일순위였다. 그다음은 아름답게 보이길 바랐다. 사실 처음엔 플러튼이나 래플스 같은 싱가포르 현지 호텔에서 찍고 싶었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에서 액션 신을 찍을 순 없었다. (웃음) 튼튼한 대리석이 깔린 한국 호텔의 협조를 받아 배우들이 좀더 편한 컨디션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 정서경_그리고 배우들이 1부부터 보여줬던 감정이 연결되는 신이다. 유능한 배우라면 8부 엔딩이 앞선 어떤 신과 연결되는지 파악하고 하나씩 짚어줘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을 것이다. 두 배우 모두 감정적으로 복잡한 신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새로운 원상아가 나타났을 때 우리 머릿속에는 백치처럼 보였던 초반의 그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엄지원씨가 양식적인 배치 안에서 완벽하게 연기했던 가짜 원상아 말이다. 그리고 인주는 놀라움과 허물어짐 그리고 사실은 계획을 숨기고 있던 모습까지 함께 보여줘야 했는데 김고은씨가 연기를 너무 잘했다.


- 인주와 상아, 그리고 화영까지 세 여성이 보여주는 갈등 구도가 <작은 아씨들>의 또 다른 중심축이 됐다. 그런데 대본집과 비교했을 때 화영의 캐릭터가 많이 달라진 듯하다. 대본집에 실린 초기 대본에서는 수수하다 못해 후줄그레하다는 느낌까지 주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 정서경_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나. 별별 아이디어를 다 내봤지만 추자현 배우는 무슨 짓을 해도 수수해 보이지 않는 분이다. 우리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가진 배우를 화영 역에 캐스팅하는 무모함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배우를 만났다. 그런데 배우가 표현하는 내면의 가난함이 얼굴의 아름다움을 가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더 나이가 많은데도 진짜 화영 언니를 보는 것 같았다. 감독님이나 나나 아무 이견 없이 캐스팅했다. 추자현 배우는 가난에 대한 온갖 수식어가 써 있는 얼굴을 보여줬다. 힘없이 떨어지며 체념하는 말투도 대본 리딩 후 다시 연구하고 찾아와서 깜짝 놀랐다.



16_41_58__63a40a46c52f3_2022122218163352


- 원기선 장군의 전시실은 베트남전쟁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근현대사를 집약한 미술이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공간을 채워나갔나.
= 류성희_일찍부터 대본에 나와 있던 공간이라 오랫동안 공부해 준비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 정보를 모두 알았을 때 드라마가 훨씬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과연 감독은 얼마나 보여줄지, 작가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인지 의심하며 만들었다. (웃음)
= 정서경_우리가 공들여서 외면했던 대화 중 하나다. (일동 폭소) <작은 아씨들>에는 모계 플롯과 부계 플롯이 있다. 인주의 엄마, 상아의 엄마에서부터 이어지는 모계 플롯은 전면에 드러나서 사람들이 읽어내기 쉽지만 숨겨진 부계 플롯은 웬만하면 직접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인경은 아빠의 인정을 갈구하며 마치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이 집단의 숨겨진 역사를 쓰려고 하는 사람인데, 미술감독님은 그 스토리를 원기선 장군 전시실로 표현했다.

= 류성희_곁가지가 너무 많아질까봐 원래 준비하려던 것 중에 생략한 것도 많다. 2시간짜리 영화라면 사실 전시실 공간이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됐을 텐데, 상대적으로 드라마는 그 정도로 집중하지 않고 넘어간다. 영화는 단 10분 나오는 공간이라도 가짜처럼 느껴지면 한순간에 거짓처럼 보이는데,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전해지는 감정도 달라진다. 이런 점을 고려해도 전시실이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드라마 전체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세운 전략 중 하나가 벽돌에 단 명패였다.
= 김희원_영화였다면 더 의미를 담아 찍을 수 있는 미술이 정말 많았는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화면에 담기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그래도 최대한 많이 찍으려고 했다.

= 정서경_그런데 김희원 감독님이 어떤 분이냐면, 사람들의 다른 노력을 다 알아. 그리고 안타까워해. 하지만 본인에게 이런 감정에 대해 말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데 뒤를 돌아보며 지체하는 감정을 남기면 안된다는 거지. 감독이 모든 부담을 지는 거다.
= 류성희_박찬욱 감독님도 스탭들의 마음을 알아주면서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감독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했다.
= 정서경_박찬욱 감독님은 미안해하는 걸 싫어하잖아. 왜냐하면 미안한 감정은 현장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돼. 그래도 김희원 감독님은 짧게나마 미안해하시는 스타일이지. (웃음)
= 류성희_사실 감독이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뒷모습으로 “힘들지? 나도 알아. 나도 힘들고”라고 표현하거든. (일동 폭소)
= 김희원_그게 바로 감독의 퍼포먼스다. 가장 중요하다. 스탭들에게 잘 전달되어야 한다. (웃음)
= 정서경_사실 정란회 회원들이 죽음에 이르는 사건들도 굉장히 공들여서 셀렉팅해서 만들었다. 저축은행, 사학 비리, 부동산 투기 등 굵직한 사건들을 순서대로 엮어 마치 하나의 플롯을 만드는 것처럼 접근했다. 하지만 이게 너무 진짜로 보여서도 안됐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균형을 잡으면서 베트남의 유령들, 살아 있지만 죽어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 ‘서발턴’이 악의 핵심이라는 플롯을 숨겨두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작은 아씨들>의 구조는 여러 개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악당들은 흐름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정란회다. 베트남에서 원치 않은 전쟁을 하고 돌아와 국가에 버림받았다고 생각해 악당이 됐다. 마치 역사화 귀퉁이에 그려진 작은 목격자처럼, 이 모든 것을 알고 말하고자 했지만 소외된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원상아의 엄마다. 여기에서 또 소외된 사람이 있다.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던 아이, 원상아는 세겹의 소외를 당한 캐릭터다. 심지어 정란회에서도 상아를 받아주지 않고 연기를 못한다며 배우로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렇게 여러 겹의 소외가 응축되면서 악이 자라나 최종 악당 원상아가 탄생한다.



16_52_35__63a40cc3aacbb_2022122218163433


- 류성희 미술감독은 여성감독과 처음 작업했다. 정서경 작가는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과 함께한 적이 있지만 다들 감독-작가-미술감독이 모두 여성인 경우는 없지 않았나.
= 김희원_여기에 조문주 CP까지, 네 파트가 모두 여성인 건 내게도 처음이었다. 확실히 요즘 드라마 업계에 여자들이 많긴 하다. <작은 아씨들>은 캐스팅까지 합치면 70%가 여자였다.
= 정서경_내가 만났던 PD들도 거의 대부분 여자였다. 특히 스튜디오드래곤에 비혼 여성 비율이 높다. 유심히 그들의 삶을 관찰해봤다. 드라마를 위해 모든 걸 불태우는 분들이다. 인경처럼 헌신적으로 일을 통해 무언가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결혼도 안 하게 되는 거지. 그런데 그런 분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후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사람들이 상상하는 모습은 10년 뒤 이미 과거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게 엔터테인먼트의 미래와도 연관되어 있겠지. 인생이 곧 드라마인 여자들이 10년 뒤 어떤 작품을 만들지 정말 궁금하다.
= 류성희_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는 10년 뒤 세계 100대 부자 대부분이 여자가 될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 김희원_2006년 MBC에 입사했을 때 드라마국 합쳐서 여자 PD가 딱 4명이었다. 지금 활동하는 드라마 감독 중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유지하며 산다. 그게 정말 신기하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여성 드라마 PD가 결혼을 하다니, 한 가정을 파탄낼 셈이냐”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최근 김은희 작가의 <악귀>를 연출하는 이정림 감독님은 <VIP>를 찍고 아기를 낳는다고 선언한 후 출산하고 현장에 복귀했다. 그래서 동료들이 굉장히 응원했다.
= 정서경_김희원 감독님의 사고방식이 투영된 문서화되지 않은 의사소통 구조가 있다. 두세개의 채널을 통하지 않고 자신을 통하도록 일원화되어 있는데 모든 사람의 말을 듣고 취합하기 때문에 아무도 불만이 없다. 토론할 수 없는 영역은 작가와 미술감독 등 각자에게 넘기고, 명확한 것은 양보하지 않는다. 매우 실용적이다. 요새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 많이들 얘기한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이 헤드로 올라가는 자본주의사회가 20년 뒤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때, 김희원 감독 같은 여성의 리더십이 변화를 만들 것 같다.
= 류성희_굉장히 유능한 사람이다. 정말 효율적이고 가볍고 투명하게 일한다. 그런데 자신이 주목받고 조명받을 수 있는 기회를 취하지 않는다. 고민을 많이 하지만 그걸 과시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도 않고. 그런데 이런 스타일의 다른 감독이 있나?

= 정서경_처음 봤다.
= 류성희_그렇다면 이게 여성감독의 특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없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16년 동안 드라마 일을 해오면서 이런 특성을 습성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처음 미술을 할 때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고민했다. 여자는 나 혼자밖에 없었고,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스탭 입장에서는 여성이 하지 못하는 것을 연구하고 고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 나를 선택해줄 테니까. 그렇게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습득해나갈 수밖에 없던 것들이 있었다.
= 정서경_나도 오랫동안 그 고민을 했다. 충무로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장르물이 남성적 특성을 대변했다. 난 순수문학쪽에 흥미가 있었지 장르물을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친절한 금자씨> 끝나고 아이가 유괴된 이야기, 부인이 남편을 죽이는 이야기 같은 것만 들어왔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충무로에서 살아남으려면 장르물에 전문성을 가질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임신을 한 여성은 사회에서 최약체가 된다. 결국 내가 충무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게 드라마였다.



16_52_47__63a40ccf0f79b_2022122218163435


- 다들 2023년 계획은 어떻게 되나.
= 류성희_임상춘 작가의 드라마 <인생>(가제)에 참여한다. 그리고 최근 촬영을 마친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이 공개될 거다. 이전에 없던 소재를 다뤄서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 정서경_작품이 잘 나왔다고 소문난 <마스크걸>과 지금 방송 중인 <재벌집 막내아들>이 후보에 없을 때 <씨네21> 올해의 시리즈 결산을 해서 다행이다. (웃음) 그나저나 지난해에만 해도 <작은 아씨들> 끝나면 드라마 안 한다고 했으면서. 너무 힘들다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내년에 드라마가 두편이나 있네.
= 김희원_나랑 첫 드라마를 하고 난 뒤 류성희 미술감독이 영원히 드라마를 하지 않게 되면 다른 감독들이 나를 질타할 거다. (웃음) 나는 내년에 현장을 도와드리러 가야 할 작품이 하나 있고, 디즈니+ <사운드트랙#2>도 준비해야 한다.
= 정서경_그리고 나와 함께 첩보 멜로물을 개발하고 있다.
= 김희원_그렇게 말하면 안돼. ‘첩보 멜로’라니. 다이내믹한 드라마라고 하자.
= 정서경_이미 얼마 전에 녹화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이하 <알쓸인잡>)에서 첩보 멜로라고 얘기했는데? 장르 정도는 말할 수 있잖아. 내가 첩보 멜로를 쓰는 게 뭐 그렇게 큰 비밀이라고…. 그리고 “다이내믹한 드라마를 쓰려고 준비 중이다”가 뭐야.
= 김희원_(뻔뻔하게) 드라마에 호기심이 마구 생기지 않나? 그나저나 <알쓸인잡>에서 이미 얘기했다니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방탄소년단 RM도 알고 김영하 작가님도 안다는 거니까. 대신 감독은 비밀로 하자. “신원 미상의 어떤 감독이 연출한다.”
= 정서경_성별 미상은 어때. 이러면 더 여자감독 같으려나. 이걸 내년 안에 써야겠지? 내년 안에 다 쓸 수 있으려나…. 그리고 고쳐야지. 촬영 중에도 계속 고쳐야 하고.
= 김희원_작가님…. 그 얘기는 나중에 저랑 천천히….
= 정서경_내가 단 한 가지 조건을 얘기했다. 이번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쓰고 싶다고. 그랬더니 좋다면서 내년 8월까지 대본을 쓰라는 거다. 그래놓고 자기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대! 오늘 김희원 감독의 장점만 잔뜩 얘기했다. 감독님의 장점만 얘기해도 너무 많아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단점도 있어!
= 류성희_이 대담이 이렇게 끝나면 재미있겠다. 아까 그렇게 미래를 논했는데 결국 작가와 감독이 티격태격하다가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면서…. (일동 폭소)



https://naver.me/5zoXM3Nn

https://naver.me/5cAqR2AZ

https://naver.me/FPeU4BXn

https://naver.me/GEuioINC

https://naver.me/59NUrNTR

목록 스크랩 (0)
댓글 5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영화이벤트] P사 감성 가득! 라이언 레이놀즈 영화 <이프: 상상의 친구> F감성 풀충전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146 04.29 39,905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759,935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273,155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4,042,760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493,039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526,767
공지 알림/결과 📺 2024 방영 예정 드라마📱 82 02.08 429,808
공지 잡담 📢📢📢그니까 자꾸 정병정병 하면서 복기하지 말고 존나 앓는글 써대야함📢📢📢 13 01.31 454,964
공지 잡담 (핫게나 슼 대상으로) 저런기사 왜끌고오냐 저런글 왜올리냐 댓글 정병천국이다 댓글 썅내난다 12 23.10.14 812,700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라마 시청 가능 플랫폼 현황 (1971~2014년 / 2023.03.25 update) 15 22.12.07 1,734,332
공지 알림/결과 ゚・* 【:.。. ⭐️ (੭ ᐕ)੭*⁾⁾ 뎡 배 카 테 진 입 문 🎟 ⭐️ .。.:】 *・゚ 151 22.03.12 2,698,247
공지 알림/결과 블루레이&디비디 Q&A 총정리 (21.04.26.) 98 21.04.26 2,006,293
공지 스퀘어 차기작 2개 이상인 배우들 정리 (4/4 ver.) 153 21.01.19 2,137,009
공지 알림/결과 OTT 플랫폼 한드 목록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티빙) -2022.05.09 237 20.10.01 2,141,990
공지 알림/결과 만능 남여주 나이별 정리 239 19.02.22 2,194,261
공지 알림/결과 ★☆ 작품내 여성캐릭터 도구화/수동적/소모적/여캐민폐 타령 및 관련 언급 금지, 언급시 차단 주의 ☆★ 103 17.08.24 2,160,939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영배방(국내 드라마 / 영화/ 배우 및 연예계 토크방 : 드영배) 62 15.04.06 2,377,708
모든 공지 확인하기()
368 스퀘어 작은아씨들 최도일: 오인주씨 잘 지내셨나요? 10 23.05.25 2,044
367 스퀘어 작은아씨들 블레 플레인아카이브 제작 13 23.01.03 1,725
366 스퀘어 작은아씨들 효린이 인스타 5 22.12.27 1,215
» 스퀘어 작은아씨들 [씨네21] '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김희원 감독, 류성희 미술감독의 대담 5 22.12.22 2,333
364 스퀘어 작은아씨들 씨네21 [기획] 2022 올해의 시리즈 감독 ‘작은 아씨들’ 김희원 감독 / 스탭 류성희, 이내경 미술감독 4 22.12.15 732
363 스퀘어 작은아씨들 씨네21 [기획] 2022년 시리즈 BEST 2위, ‘작은 아씨들’ 2 22.12.15 489
362 스퀘어 작은아씨들 엄지원 인스타 업뎃 (영화 영웅 VIP 시사회) 3 22.12.14 1,562
361 스퀘어 작은아씨들 김고은 인스타 업뎃 (영화 영웅 VIP 시사회 단체 사진) (다시 올림!!!) 16 22.12.14 2,926
360 스퀘어 작은아씨들 플레인 아카이브 인스타 대본집 9 22.11.13 1,054
359 스퀘어 작은아씨들 플레인아카이브 인스타 #2 #3 5 22.11.12 860
358 스퀘어 작은아씨들 [작은 아씨들] 대본집 11/17 예약판매 오픈 6 22.11.12 929
357 스퀘어 작은아씨들 정서경 대본집 11/17 예약 판매 오픈 25 22.11.08 1,547
356 스퀘어 작은아씨들 그래야 인주씨가 안전해요 9 22.11.03 1,014
355 스퀘어 작은아씨들 왜 사람이 자는걸 보고 있어요? 14 22.11.03 1,350
354 스퀘어 작은아씨들 본부장님 진짜 믿으니까 주는거예요 10 22.11.03 1,387
353 스퀘어 작은아씨들 내 잘못이에요 15 22.11.01 1,303
352 스퀘어 작은아씨들 8화 도일인주 10 22.10.31 913
351 스퀘어 작은아씨들 싱가폴 오인주 찾아다니는 도일인주 20 22.10.31 1,768
350 스퀘어 작은아씨들 싱가폴 호텔 인주 7 22.10.30 1,009
349 스퀘어 작은아씨들 연락하세요. 초스압 10 22.10.29 3,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