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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욘더 [씨네21] '욘더' 신하균X한지민X이준익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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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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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신하균)은 세상을 떠난 아내 이후(한지민)에게서 메일을 받는다. 자신을 만나고 싶으면 기억으로 설계된 세계 ‘욘더’로 오라는 초대장이다.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기억까지 보존할 수 있는 2032년, 욘더를 창조한 뇌과학자 닥터K는 삶처럼 죽음도 멋지게 디자인하라고 말한다. 사이버 공간에 저장한 아내의 기억으로 죽음 이후에도 함께할 수 있다는 세계관은 2011년 출간된 원작 소설 <굿바이, 욘더>를 바탕으로 한다. 이준익 감독은 가상 세계에 관한 견고한 상상력과 죽음에 관한 통찰을 보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10월14일 공개)로 구현해냈다. 20년 만에 부부로 재회한 신하균과 한지민, 남해와 강원도 등 국내 곳곳에서 촬영된 아름다운 풍광, 진화한 디바이스로 둘러싸인 2032년의 근미래 모습까지 여러 가지 매력으로 손짓하는 욘더의 초대장이 당신에게 전달됐다.



https://naver.me/xgTP0nq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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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이 가상 세계에 온전히 살아 있다면 사람들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까.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재현은 믿기 어려운 사실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굳건히 견지해내는 인물이다. 바람결에 쉽게 흔들리는 가지보다 궂은 날씨에도 굳건한 나무뿌리 같은 사람. 그게 재현이다. 그리고 그건 신하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제는 작품 수를 세어보는 게 무색할 만큼 그는 장르, 인물의 성격과 배경 설정, 주조연을 막론하고 자기 자리를 만들어 확장해나간다. <욘더>의 재현은 신하균으로부터 어떤 모습을 빌려왔을까.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 그를 만났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욘더>를 먼저 선보였다. 오픈 토크와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관객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 영화제에 OTT 시리즈로 초청받은 것도 기쁘지만 관객과 함께 작품을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삶과 죽음, 인간의 이기심 등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에다 템포가 빠른 편도 아닌데 많은 관객이 집중하는 걸 보고 작품의 중심을 잘 따라와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또 GV와 오픈 토크 시간에 좋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욘더>의 어떤 점에 가장 매료됐나.
= 죽음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해내는 힘이 마음에 들었다. <욘더>는 행복과 불행의 정의가 무엇인지 질문을 건네면서 자연스레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준익 감독님도 촬영 초반부터 이건 재현의 1인칭 심리극이라고 강조하셨다. 시청자가 재현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어야만 우리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본래 재현은 감정 기복이 큰 인물이 아니다. 대사가 많은 편도 아니어서 처음엔 큰 숙제처럼 느껴졌지만, 또 다른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 이후(한지민)가 죽고 나서 재현은 오열하거나 절규하지 않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슬픔을 내내 머금고 있는 듯했다.
= <욘더>는 안락사가 합법화되고 난 다음의 이야기다. 모든 사람에게 안락사가 보편적인 기술로 일상화되면서 죽음에 대한 감정이 이전보다 격정적이지 않고 무덤덤할 거라 생각했다. 다만 보건국이 영상통화로 안락사를 참관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 몸을 돌려 이후의 얼굴을 감싼 건 그 순간만큼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재현의 배려였다. 사실 이 장면은 현장에서 연출이 바뀌었다. 대본에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화를 나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포즈 하나 바꿨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 장면이 재현의 가장 큰 감정 변화를 보여준 부분이었다.



-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상을 다루어서인지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가 철학적이다.
= 버릴 대사가 하나도 없다. 사실 촬영 순서는 거꾸로 이어졌다. 화창하고 맑은 천국의 모습을 먼저 담아야 해서 뒷부분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감독님과 배우들 모두 고민이 많았다. 앞부분을 건너뛰고 감정이 더 드러나는 뒷부분을 먼저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로 뒤에서부터 촬영했기 때문에 얻어낸 장점도 있다. 앞부분에서 우리가 생각지 못한 오류를 찾아내고 대사와 표현을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점검한 것이다. 근미래가 가진 설정을 땅에 붙이고 감정의 길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됐다.


- 재현의 주변 인물이 ‘욘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활용할 의지를 보이는 반면 재현은 유일하게 의구심을 제기하면서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그런 재현을 두고 오픈 토크에서 “액션보다 리액션이 많은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 의외다. 재현을 연기한 입장에서 재현은 굉장히 수동적인 인물로 보였다. (웃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먼저 행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 이끌려 의심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감정 사이에서 자기 확신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재현이 능동적인 인물로 보이진 않았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복잡한 일이 벌어지고 그것에 반응하는 캐릭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재현과 이후 부부는 경험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맨발로 숲길을 걷고 호수에서 잠수하고 야외 캠핑을 즐기고. 몸소 누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재현은 가상의 세계이자 간접적인 욘더를 의심하고 낯설어하는 것일까.

= 인물의 성향에 따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야외 캠핑과 호수에서 수영하며 놀았던 일화는 모두 감독님의 추억에 기반했다. 감독님이 실제로 캠핑을 무척 좋아하신다. 또 목걸이를 물속에 빠뜨려 다시 찾으려 한 장면도 실은 선글라스가 빠진 거랬나. (웃음) <욘더>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야기할 지점이 풍성하고,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 쿠팡플레이 <유니콘>의 스티브와 <욘더>의 재현은 결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이다. 시트콤과 정극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 표현 방법에 차이가 있다. 재현의 경우 감정 변화가 크지 않지만 내면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것들을 유연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코미디는 목소리 톤을 한층 더 올려서 경쾌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스티브가 마냥 웃기기만 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가 가진 결핍과 과장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야말로 일희일비하지 않나. 그런 차이를 잘 녹여내 몰입하려 했다.


- 인물의 성격이나 장르에 대한 경계 없이 다양한 작품을 넘나들고 있다. 작품을 선정할 때 특별히 눈여겨보는 게 있다면.
= 새로움. 작품의 플롯이든 장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좋다. 또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깊게 와닿고 인물이 가진 결핍에 공감할 수 있을 때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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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은 ‘따뜻하다’는 흔한 관용어를 매우 구체적이고 감탄스러운 실체로 만드는 배우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봄밤> <눈이 부시게>, 영화 <조제> 등의 근작은 물론, 누아르풍의 <미쓰백>에서조차 한지민은 비정한 세계를 희석하는 뜨거운 존재였다. <욘더>에서 그가 연기한 차이후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 위에 과학적 상상력을 덧대는 SF 장르가 줄곧 호출해온 ‘죽은 아내’라는 점에서 원형적 캐릭터이지만, 실재하는 인물과 가상 세계의 아바타를 여러 층위로 가르는 세심한 연기로 어느새 마음의 온도를 높인다.



- 동시대 한국 멜로드라마의 중요한 초상이다. 그동안 여러 멜로드라마 장르의 작품들을 경험했는데, 이준익 감독이 첫 OTT 시리즈로 만드는 사랑 이야기는 무엇이 다르던가.
= <욘더>가 주는 여운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나 이별로 인한 아픔, 슬픔보다는 인간의 죽음을 본질적으로 고민하는 쪽에 가까웠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나라면 욘더라는 공간을 선택할까 같은 질문을 넘어서는, 더 큰 명제가 있다고 느꼈다. 감독님도 자주 하신 말씀인데, 행복한 기억으로만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아갈 때 과연 우리는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 똑같은 행복이 매일 지속된다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그런 질문이 녹아든 작품이다. 배우인 나의 감정도 사랑하는 연인들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파고드는 일반적인 멜로드라마를 할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 욘더에서의 차이후와 재현(신하균)의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차이후는 대사 처리 방식이나 표정에서 관객이 미묘하지만 확실한 차이를 감지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 이준익 감독님과 꼭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더해져 아주 흥미롭게 읽긴 했지만, 감정 지문이 전혀 없는 시나리오라 처음엔 막막했다. 욘더의 차이후가 진짜인지 가상의 존재인지 아니면 욘더를 사후 세계로 바라봐도 될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물음표투성이였고, 계속해서 곱씹어보게 됐다. 이를테면 재현에게 보내는 첫 초대장 편지에서 어떤 톤으로 이야기해야 할지부터 내 안에서 명쾌하지 않았달까. 많이 열려 있던 대본이라 배우가 직접 채워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겁도 났다. “왔어? 기다렸어”라는 대사 한마디의 톤을 놓고도 오래 고민할 정도였는데, 리딩하는 과정에서 재현의 반응을 흡수해 거기에 맞는 리액션을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관객은 재현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갈등하는 재현의 반응이 자연스럽도록 이후를 만들려고 했다.



- 반복되는 “나 여기 있어”라는 말처럼 이후의 대사는 간결하고 문학적이다.
=‘여보 난 사실 죽은 게 아니야’ 하는 식으로 호소하는 게 아니라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해야 상대인 재현이 욘더에 더 오고 싶어지지 않을까? 욘더 속 이후의 대사는 문학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들도 있어서 더 많은 해석의 여지가 주어진다고 느꼈다. 그런 대사들에 힘입어 표정을 많이 쓰지 않고 의도적으로 조금 다른 이후를 만들어냈다. 어떤 팬은 “처음 보는 AI 연기”라고 해주시더라. (웃음)


- 1화 초반에 이후는 욘더로 건너간다. 이미 죽은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그렇다.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욘더가 기억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이라한들 그 안에서 만난 이후는 살아 있을 때 재현과 나누었던 감정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바이앤바이에서 처음 만나는 초반과 다르게, 이후 점차 욘더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감정이 증폭된다. 슬프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람들처럼.


- 죽음과 관련된 현실적인 질문들을 제기하는 근미래 SF라는 점에서 배우로서가 아니라 인간 한지민으로서도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져볼 법하다. 워낙 가족적 배경이 돈독하고 주변 사람들과 화목하게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 개인적으로 이 작품과 쉽게 접속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나이부터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다보니 항상 두려웠다. 두분이 사라지실까봐. 사람이 죽는다면 어디로 가는 건지 정말로 궁금하기도 했다. 살면서 맨 처음 돌아가신 분을 마주했을 때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거다. 엊그제까지 나랑 이야기도 했는데…. 미동 없는 차가운 손을 만지는데 순간 너무 무서웠고, 또 그 무서운 감정이 든 게 할아버지한테 너무 미안했다.


-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와 함께하며 일찍 조숙해졌을 것 같다. 배우가 되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헤아리는 데 영향을 끼쳤을까.
=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딱히 성숙한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웃음) 다만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형제까지 가족 안에서 여러 관계를 매일 두루 경험하면서 자란 것이 내게 훨씬 더 많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안겨준 건 사실이다. 고등학생 때 가정환경조사를 했는데 우리 가족의 장점을 쓰는 칸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는 것”이라고 썼다가 선생님이 그게 장점이 맞냐고 되물으신 적이 있다. 나한테는 정말 행복이었다. 복작복작한 가족의 시간들이.


- 팬덤의 성향이 곧 그 배우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된 팬은 물론 <미쓰백>을 분기점으로 젊은 여성 팬이 늘어났고 유독 다정한 응원들이 많이 보인다.
=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다 이유가 있겠지’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버티게 해준다. 팬들을 생각하면 항상 내 옆으로 엄청나게 아군이 많이 서 있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여성 팬들은 어쩌다 인파가 몰리는 상황이 생기면 나를 챙기고 또 서로 배려하느라 오히려 물러서시더라. 그런 마음들이 참 놀랍고 감사하다. 사랑에 화답하려면 그분들이 보람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계속 연기를 잘하는 수밖에 없다.



https://naver.me/xGixhJ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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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 구성된 가상 세계에서 재회하는 부부의 이야기 <욘더>를 두고 이준익 감독은 “한편으론 지독한 이기주의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신의 기억을 ‘욘더’에 저장하고 떠난 아내의 선택이 이기적이지 않으냐는 거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자신에게는 진심이었던 거다. 나쁜 마음으로 재현을 욘더로 불러들인 게 아니라 정말 그의 진심이었다. 그래서 <욘더>는 자신의 진심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나와 당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욘더의 세계관과 인물들의 행동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오늘의 관객에게 계속 묻는다. 이준익 감독이 삶과 죽음을 마주 보고 빚어낸 질문들이 인물의 대사에 고스란히 담겼다.



- <동주>의 일제강점기, <사도> <자산어보>의 조선 시대를 거쳐 이번에는 미래로 갔다.
= 영화가 끝나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옆집으로 가면 자꾸 옆에서 지나간 걸 들춰보게 된다. 사극을 찍을 수 있는 물리적 장소는 한정되어 있어서 같은 장소에서 인물과 제목만 바꿔서 찍고 있는 기분이 든다. <사도>는 250년 전 이야기이고 <자산어보>는 200년 전 이야기이기에 유사하잖나. 첫째로는 자기 반복을 하지 않으려고, 둘째로는 자기 반복을 하지 않으려는 과도한 의지 때문에 도랑에 빠지거나 발목 잡힌 경험이 있어서 요만큼도 관련 없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 멀리 가려고 <욘더>로 왔는데 이거 끝나면 앞이나 뒤로 더 멀리 갈 거다.


- 10년 전에는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어떠한 변화가 완성하게 했나.
= 50대 때만 해도 죽음은 개념적이고 추상적이었지만 60대가 되니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친지들을 뵙고 나면 20년, 30년 후 내 모습이 너무 현실로 다가와서 삶의 시간들이 금쪽같이 느껴졌다. 삶에서 선택이 더 분명해졌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만큼 삶을 제대로 인식하는 방법도 없더라. 10년 전 시나리오에는 사이보그가 나오고 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미래 풍경이 있었다. 할리우드영화에 익숙하다보니 미국 SF의 스펙터클을 상투적으로 떠올린 거다. 과감하게 시나리오를 접고 인간의 내면과 심리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시 썼다. 원작의 큰 설정은 그대로지만 주인공 재현(신하균)의 1인칭 심리극을 가운데 놓고 주변 인물과 상황을 많이 쳐냈다.



- 욘더라는 가상 세계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데 메타버스 개념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오픈월드 게임이 연상되기도 했다.
= 10년 전만 해도 욘더의 개념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야?” “전설의 고향이야?” 하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저장된 이미지들로 구현된 유니버스라고 설명하면 이제 사람들이 쉽게 메타버스 공간을 연상한다. 편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 개념처럼 현대인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이미지로 인식한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 요즘 사람들은 실물보다 모니터나 디바이스를 훨씬 많이 본다. 시각정보는 가공된 것이고 실제가 아닌 이미지들이잖나. 인간 뇌에 저장된 가공의 이미지들도 일종의 기억인 셈이다. 구글 같은 선도적인 디지털 기업은 이미 인간 기억이나 뇌를 연구하고 있다는데 이런 게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의 베이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원작 소설 <굿바이, 욘더>에 담긴 질문 중에 무엇이 가장 흥미로웠다.
= 불멸에 관한 질문이다. 나중에 닥터K의 대사만 모아서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수천년 동안 인간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해왔는데 천국은 종교가 발명해낸 개념이다. <욘더>에서는 종교적 발명품을 과학이 대신한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의학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했고 과학은 죽은 자의 기억과 산 자를 만날 수 있게 했다. 구글의 로레타(Loretta) 광고만 봐도 그렇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구글 어시스턴트 기술을 활용해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과 생전의 말들을 되새기는 내용이 담겨 있다. 관혼상제에서 제례에 해당하는 삶의 종점마저도 기업의 디지털 미래 먹거리가 된 셈이다. (웃음) 불멸은 아름다운 것일까? 모든 자연은 소멸을 통해서 생성된다. 나는 진정한 행복이 불멸이 아니라 소멸에, 기억이 아니라 망각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불행은 소멸되지 않으려고 한다는 데서 온다.


- 누구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지 않나. 감독님이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기억은 무엇인가.
= 나는 모든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영화를 한편 찍고 나면 머리를 텅 비운다. 15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다 기억하고 저장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4TB짜리 뇌에 16TB를 넣으려는 꼴이다. 감각만 남기고 기억은 빨리빨리 지운다. 기억의 회로가 정교한 사람은 현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억의 의지에 집중한다.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저건 나쁜 거야, 잘못된 거야. 자기 기억의 감옥에서 요만한 창문으로 보는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기억의 감옥을 해체하고 무의식을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이건 세상과 타인을 보는 관점을 바꾸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면 온 세상에 슈퍼마리오 아이템처럼 흥미로운 게 널려 있다.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 그럼 감독님은 욘더에 가지 않으시겠다.
= 가지. 남의 기억이 궁금하니까. 100번 가지. (웃음) 거기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나.


- 욘더를 처음 경험한 재현은 세이렌에게 “사람 약점 건드려서 장사한다”고 일갈한다. 사실 마음을 흔드는 광고나 이야기들은 죄다 우리의 약점이나 결핍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감독님은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나.
= 나는 실패자의 안타까움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제껏 무용담을 영화로 만든 적이 없다.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 박중훈이 성공했나?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도 올라갔다 떨어졌다. 죄다 비극이고 환희에 찬 결말이 없다. 윤동주, 송몽규도 안타깝고 창대도 안타깝지. 그렇다고 비굴하진 않아. 나는 안타까움을 사랑하는 시선으로 본다. 안타까움을 당한 사람들의 가치를 높이 친다. 이런 이야기에 흔들린다. 무수히 흔들리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을 뿐이다.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비우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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