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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글리치 [씨네21] '글리치' 리뷰 & 전여빈・나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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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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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 외계인은 그저 다정히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잘 지켜보고 있노라고. 지구의 위성 인터넷망을 해킹해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찾아낸 다음 인간에게 전송한 결과가 기괴한 인터넷 밈의 조합이 될 줄은, 그러나 몰랐을 것이다. 야근을 하던 어느 날, 홍지효(전여빈)가 홀로 머무는 회사의 컴퓨터들이 일순 오작동해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쏟아낼 때 평범하고 소심한 여자가 위로 대신 공포를 느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효는 종종 일상생활에서 외계인을 본다. 뾰족한 타원형 얼굴의 절반을 뒤덮는 기괴하고 커다란 눈, 쭈굴거리는 회색빛 피부 위로 잔뜩 부풀어오른 아랫배까지. 그들은 확실히 이상 생명체다. 더욱이 늘 현대 유니콘스 야구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는 점에서 뜬금없고 수상하다. 거리에서, 방 안에서, 편의점에서 나타나는 외계인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살아온 지 어느덧 10여년차. 지효는 홍대 근처에서 복층 월셋집을 전전하던 남자 친구 이시국(이동휘)에게 동거를 제안받는다. 여세를 몰아 상견례까지 한 둘의 관계는 이대로라면 결혼에 골인할 것만 같다. 그러자 눈앞의 외계인도 거뜬히 회피하며 잘 살아온 여자의 일상이 갑자기 소리 없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흘러가면 되는 건가?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끔 눈에 이상한 게 보여도 무시하면서….”

<글리치>는 1화부터 대뜸 편의점 모서리에 서 있는 외계인을 보여주며 시작하지만 이후로는 태세를 쉽사리 SF로 전환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홍지효의 남자 친구 이시국이 실종되면서 분위기는 범죄물에 가까워진다. 지금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도망갈까, 지효가 채 결심하기도 전에 남자 친구가 먼저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치 그를 버리고 싶었던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대체로 의욕 부족형 인간이었던 홍지효는 갑자기 열을 내며 사라진 ‘이 시국’ 찾기에 나선다. 그녀는 UFO 커뮤니티까지 흘러 들어가더니 ‘진짜 광기’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행동파 유튜버 허보라(나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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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진한새의 장르 초월 드라마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혼종의 <글리치>는 그 장르적 태도로 말미암아 동시대의 감수성을 표방한다. SF, 범죄, 버디, 성장물의 공교로운 동행은 홍지효와 허보라가 어느 수상한 종교집단의 의식에 잠입하면서부터 일상성 바깥으로 점점 더 과감히 탈주해나간다. 한발 앞서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의 욕망을 해부한다면, <글리치>는 ‘가장 평범한 존재에서 가장 신성한 존재’로의 가능성을 점친다. 전자가 유령 난초와 베트남 전쟁에 얽힌 모임을 매개로 한국 근현대사의 폭력을 누설한다면, 후자는 UFO와 사이비 종교집단을 빌려 밀레니얼의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을 토로한다. 두 이야기는 주제에 걸맞게 감수성 측면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말하자면 <글리치>는 좀처럼 무게 잡는 법이 없다. 데뷔작인 <인간수업>의 비정함이 무색할 정도로, 작가 진한새는 <글리치>에서 내내 어깨의 힘을 빼고 농을 친다. 웃음과 허무를 괜찮은 방어기제 삼아서. 카메라를 든 기록자인 보라는 내내 감탄사 대신 욕을 남발하며 버티고, 뜻밖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 지효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밈을 자기 인생으로 실현해낸다.

비현실적인 사건, 과장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 <글리치>가 노덕 감독을 찾아간 것은 전적으로 그의 신뢰할 만한 이력 덕분일 것이다. 한국 상업영화의 계보에서 다소 독특한 변종으로 분류되는 <특종: 량첸살인기>(2015)는 자기 속내를 까뒤집고 싸워대는 연인들의 수다극 <연애의 온도>(2012)로 주목받은 직후의 행보로 치면 꽤 신선한 선택이었다.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아슬아슬하게 거짓말의 경계를 줄타기하는 기자와 그를 둘러싼 웃음기 넘치는 세계를 다룬 노덕 감독은 사건이 아무리 심각하든 그 안을 구성하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의 리듬이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블랙코미디적 소동극의 기운은 <글리치>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가령 절체절명의 순간에 갑자기 인물들이 만담을 나눈다든가 하는. 그러니 이 장르 초월적인 모험담을 지켜볼 때 요구되는 것은 약간의 관조적 자세다. 인과관계가 조밀하게 얽히고설켜 발생하는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글리치>는 종종 엉뚱해지거나 장황해질 것이다. 덮어놓고 보자면 <글리치>는 간밤에 꾼 아주 길고 사나운 꿈의 서사에 가깝다. 강렬한 감정과 겁 없는 전개, 그리고 희한한 비주얼이 점입가경으로 펼쳐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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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다가, 지켜주는

바야흐로 사이비의 시대다. 본질은 없고 허상만 있는 것, 그러나 강렬한 매혹과 믿음을 불러내는 것들 사이에서 누구나 오작동하지 않기란 어렵다. 유튜버 허보라는 외계인이든 종교집단이든 가리지 않고 우선 찍는다. <글리치>의 후반부는 이런 면에서 조던 필의 <놉>과 겹쳐 보인다. 다만 진한새 작가가 새긴 한국적 리얼리티는 할리우드 역사가 불러낸 유장미와는 거리가 멀다. 하필이면 이시국이 SH 청년매입입대주택에 당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것이 특히나 애석하다면, 그래서 그 집은 어떻게 되는 건지 좀 염려스럽다면 당신은 <놉>보다 <글리치>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홍지효란 인물을 사회인류학적으로 바라보자. 아빠 친구 회사에 취직해 적당히 성실하게 일하고, 4년 만난 남자 친구와 미래를 도모할 시점이 되었으며, 아빠가 재혼으로 만난 새엄마는 날로 커리어가 탄탄해져 부모의 부양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 없는 캥거루족. 30대의 홍지효는 그래서 자신의 방황과 우울이 꽤 사치라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여자다. 특별한 인물이 되기엔 꿈과 재능이 부족하고, 평탄하게 살아와 비련의 주인공조차 될 수 없는 나, 미치도록 평범한 나의 삶이 의심스러울 때 <글리치>의 작동 오류가 시작된다.

그래서 홍지효에게는 가장 보통의 청년이자 비현실적으로 동화적인 인물이라는 모순 형용이 성립 가능하다. 어쩌면 참 어려운 캐릭터다. 배우 전여빈은 사소한 말투와 표정에서부터 타고난 재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비관습적인 표현을 구사함으로써 이 유별난 잔 다르크가 때늦은 사춘기와 작별을 고하는 화형식을 무사히 치를 때까지 관객의 인내심을 붙잡아둔다. <글리치>의 서사가 왜 꼭 버디 무비여야 했는지에 관해서는 여성 듀오의 관계에 단순한 우정 이상의 복잡한 뉘앙스를 불어넣는 나나의 연기가 대답해준다. 남자 친구와의 동거 계획이 모든 소동의 시작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글리치>의 엔딩에서 두 인물이 내리는 선택은 꽤 다양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1P용 게임이 버그에 걸려 2P로 바뀌더니, 앞으로는 두 캐릭터가 서로를 지켜준다는 새 컨셉마저 생긴 채로 위험한 모험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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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효와 보라, 무키무키만만수적 조합

“지켜보고 있다. 내가 한번 간 적 없어도, 내 등 뒤에 붙어 있다. 지켜보고 있다. 저기 안에 있는 사람은, 우릴 조종하고 있다….”(<남산타워>) <글리치>에서 지효와 보라의 관계는 그들이 20대 초반일 무렵에 유행한 어느 여성 듀오 가수의 가사에 빗대볼 수 있겠다. 그사이 영화음악가로 변신한 이민휘가 소속된 무키무키만만수는 2012년 5월에 결성해 이듬해 3월 해체할 동안 UFO만 찾지 않았다 뿐이지 <글리치>에 버금가는 희한한 정신세계를 펼쳤다. <남산타워>에서 이어지는 가사, “넌! 망한다 망한다 망한다 망한다 무너진다”처럼 혹은 <7번 유형>의 외침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에요 나의 문제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글리치>의 듀오도 실은 악을 쓰며 생존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미확인 비행물체에 그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까닭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미확인, 즉 여전히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지만 이들은 모두 진지, 아니 정색 중이다. “그냥 잘 살고 싶다오. 편히 잘 살고 싶다오.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오. 그게 그리 큰 꿈이었던가….”(<투쟁과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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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빈은 투명하다. 무엇에든 금세 투사되고 쉽게 물드는 투명함이다. 상실이나 분노가 닿으면 감정을 증폭시켜 깊은 슬픔에 휩싸인 <멜로가 체질>의 은정이 되고, 비정한 눈빛으로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복수에 나서는 <낙원의 밤>의 재연이 된다. 강인함과 유머를 더하면 늘 어깨 펴고 당당하게 걷는 <빈센조>의 홍차영이 되기도 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지각색으로 물들어 나타났던 전여빈이 넷플릭스 드라마 <글리치>의 홍지효로 돌아왔다.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지효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남자 친구를 찾으러 이제껏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뛰어나가는 여자다. UFO와 외계인, 이 멀고 낯선 이야기가 홍지효가 된 전여빈을 통해 단단한 설득력을 갖는다. 먼 얘기가 아니라 여기, 우리 내부의 이야기라고 믿게 만든다.



-<글리치>의 어떤 매력에 합류를 결심했나.
=4부까지 대본에는 지효가 어떻게 달려나갈지, 모험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 않았다. 약간의 두려움과 그보다 큰 호기심을 안고 감독님과 작가님을 만났다. 감독님이 들려준 <글리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UFO를 좇는 구체적인 모험이었다. 지효가 모험을 하며 동료를 얻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때마침 드라마 <빈센조>를 마치고 새 작품을 생각하던 중이라 마음이 약간 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에너지가 고갈된 채 내 일의 중심에 대해 생각이 많던 차라 감독님의 말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지효의 모험을 마치고 촬영 전 기대한 것들을 얻었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모험이라 이러다 우주 밖으로 솟구쳐 나가면 어쩌지 하는 우려와 기대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었다. 지효와 함께 나 역시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 드는 날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결말이 만족스러웠다. 글이 가진 잠재력이 영상으로 충분히 표현됐다. 시사하고 나니 마음이 먹먹하면서 여운이 남았다.



-극중 지효는 외계인을 자주 본다. 촬영할 때 외계인이 실제 눈앞에 있었나.
=예고편에 나온 외계인과 거의 비슷한 외형의 옷을 입은 배우가 서 있었다. 영상에서 구현된 것과 같은 귀염둥이가 눈앞에서 웃어줬다. 배를 만져보고 싶고 악수해도 무섭지 않을 것 같은, 내가 어릴 때 상상했던 딱 그런 모습의 외계인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바로 반응할 수 있었다. 친숙하지만 상상 속에 있어야 할 게 왜 내 눈앞에 나타났지. 왜 나를 쳐다보지. 현장에서 느낀 이질적인 기분을 그대로 표현했다.


-지효는 겉보기에 쉬운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남모를 고민을 안고 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지효의 어떤 특징이 이 캐릭터를 선명하게 만들었나.
=지효는 복잡한 친구다. 평범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노력할수록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지효는 자기 마음을 무시하고 속이지만 시국(이동휘)의 실종을 겪으면서 더이상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게 된다. 의심을 내버려두지 않는 점이 홍지효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정면으로 질주해 그간 쌓아온 삶의 안정성과 평범성을 던지는 과감한 면모도 있다. 평범하다는 말이 있고 그에 걸맞은 이미지가 떠오르긴 하지만 과연 평범한 사람이 있을까? 먼발치에서 떨어져 보기 때문에 평범하고 무사해 보이는 것뿐이다. 외계인을 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효는 우리 모두와 닮은 보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친한 친구들도 나에게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을 테고 나 역시 나만의 사정이 있으니까.


-극중 웰시코기 스타일이라고 불린 지효의 스타일도 흥미롭다. 단발에 안경, 내추럴한 화장에서 무심하면서도 당찬 지효만의 개성이 묻어난다.
=내가 떠올린 지효는 귀엽고 엉뚱한 면과 결단력을 가진 이미지였다. <빈센조>의 홍차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세팅된 사람이었잖나. 홍차영 되기를 멈추고 홍지효가 되려고 하니 모든 게 어색해지더라. 의상, 분장, 헤어 각 분야 전문가과 긴 논의를 했고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홍조나 주근깨를 드러내 민낯처럼 보이되 너무 거칠지 않게 하기로 했고, 얼굴에 어두운 분위기를 더해 어딘가 골몰해 있는 인상을 만들고자 했다. 짧은 머리로 모험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 길이를 계속 유지해야 했는데 지효는 계속 어딘가로 달려나가니까 그 기세를 담아 점차 머리가 뻗쳐도 되지 않을까? (웃음) 이렇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친숙하고 개성 있는 홍지효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빈센조>의 김희원 감독부터 <글리치>의 노덕 감독까지 주목받는 감독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나나 배우와 함께 주연을 맡았는데 이렇게 여성 창작자가 주요 역할을 맡은 현장은 드물다.
=데뷔작인 단편 <최고의 감독>의 문소리 선배님부터 시작해 나에게 리더는 대부분 여성의 상으로 떠오른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봐도 나를 이끌어준 영어 선생님도 여성이었다. 당연하게 의지해온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고. 으레 리더는 여성의 얼굴이었다. 일부러 그런 현장을 고른 것은 아니지만, 현장을 경험하고 이 산업을 살펴보면서 내가 만난 리더와 함께한 경험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선장님이라고 부르고 따르던 김희원 감독님은 매사 온몸으로 부딪히는 멋진 분이다. 노덕 감독님은 거대한 산처럼 배우들을 품어주신다. 나도 이들처럼 멋진 여자, 나아가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 생각을 잘 정립하고 꾸준히 내가 할 일을 해나가면 언젠가 이들을 닮아 있지 않을까, 막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꿈꾸게 된다.


-<글리치>에서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믿음이다. 종교적 믿음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믿음 역시 중요하게 다뤄진다. 커리어 없이 오직 믿음으로 버텨야 하는 신인배우의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저 기회의 날이 와주기를 믿고 달리는 수밖에 없었던 날들. 재능이 있다고 마음껏 믿고 오해하며 ‘셀라’(극중 하늘빛들림교회에서 히브리어 ‘아멘’처럼 외치는 말)를 외치는 날들. (웃음) 이 일은 누가 시킨 게 아니어서 내가 멈추면 다 멈춰버린다. 오로지 내 발과 내 의지에 내 일이 달려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최선을 다해도 평가는 내 몫이 아니라서 이 직업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 간극 때문에 내가 더 이 일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위태로움 자체에 매혹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의 지금 이 순간을 ‘아주’ 오해하고 계속 믿고 사랑하면서 달려나갈 수밖에 없다. 셀라! (웃음)



https://naver.me/x7rTJQ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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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굿와이프>의 로펌 조사원을 시작으로 <킬잇>의 형사, <저스티스>의 검사를 거치며 주로 도시적인 마스크와 장신에 어울리는 전문직 여성을 연기했던 나나가 <글리치>에서 드디어 또래의 생태계에 착륙했다. 보편적인 청년을 묘사한 캐릭터인 홍지효(전여빈) 옆에서 온갖 반작용을 담당하는 허보라는 지효가 광기에 휩싸이자 외려 절묘한 현실감각을 발휘한다.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았을 만한 이상적 단짝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허보라의 행동파 기질은 학창 시절에 앞장서서 흉가 체험에 나서곤 했던 나나의 기세를 이어받은 것이고, 강단 있는 말투에 가려진 여린 마음과 조심성은 배우 스스로도 지키고 싶어 하는 자기다운 면모다. 덕분에 나나는 허보라를 연기하며 “한층 자유롭고 시원하고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부스스한 갈색의 히피 머리로 등장하는 <글리치>의 보라는 외양부터 개성이 강하다. 직접 아이디어를 더했나.
=보라가 늘 같은 목걸이를 하고 나왔으면 해서 먼저 제안했다. 특히 관심 갔던 건 보라의 몸을 뒤덮은 타투의 위치와 크기, 각각의 그림이 의미하는 내용이었다. UFO 추종자이면서 숨 쉬듯이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는 점이 문신에서도 디자인적 요소로 드러났으면 했다. 그게 보라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취향으로 느껴졌다.


-사라진 지효의 남자 친구 이시국(이동휘)을 찾아다니면서 결국은 지효와 보라, 두 여자 친구의 관계가 확장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관계성을 어떻게 바라봤나.
=오묘한 사이. 우정이라고만 정의하기도 조금 애매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오히려 가족 또는 로맨스에 가깝달까. 특히 보라에게 지효는 유일한 존재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마음을 연 사람이 지효였기 때문에 과거에 지효의 오해로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을 때 큰 상처를 받는다. 대본에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보라가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 지효와의 기억을 계속 되뇌며 살았을 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지효만 한 새로운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마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였을 테고.



-<글리치>는 사운드 믹싱의 완성도가 높고 배우들의 대사도 디테일하게 잘 들린다. 앞선 드라마들에서 전문직 역할을 소화할 때와는 또 다른, 나른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말투가 매력적이었다.
=상황에 따라 목소리와 말투가 많이 바뀌는 편인데 굳이 택하자면 원래 조금 느리게 말하는 편이다. <글리치>는 그동안 내가 참여한 작품들 중 후시녹음(ADR) 비중이 유독 많았던 작품이다. 촬영 끝나고 시간이 꽤 흐른 후 ADR 작업을 해서 처음엔 좀 헤맸다. 노덕 감독님이 “그새 보라가 너무 착해졌네. 얼른 다시 돌아와주세요”라고 자꾸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난다. (웃음) 아마도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톤을 새로 잡아나가면서 대사의 뉘앙스가 좀더 잘 다듬어진 부분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UFO까진 아니더라도 비현실적인 요소들에 관심을 가지는 편인가.
=어릴 때부터 유독 겁없는 애였다. 궁금증도 많아서 뭔가 기이하거나 신기한 현상이 있으면 친구들 앞에 나서서 해보는 쪽이었다. 예를 들면 분신사바라든가. (웃음)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작품인 법정 드라마 <굿와이프>, 그리고 이번 <글리치>를 놓고 보면 극중 제1파트너로 여성 캐릭터와 호흡할 때 생기는 특유의 활력이 있다. 강단 있고 명쾌해 보이지만 막상 상대와 관계가 친밀해지면 반전 매력처럼 여린 모습을 보여주는 면도 비슷하다.
=실제로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그걸 잃고 싶지 않다. 함께하는 배우와 이렇게까지 잘 맞는 느낌은 나도 <굿와이프> 이후로 처음 느꼈다. 그때 (전)도연 언니와 굉장히 편하고 즐거웠는데 이번에 여빈 언니랑 촬영하면서 여자들끼리 느끼는 감정이나 세세한디테일까지 공유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힘을 얻었다. 지효와 보라로서 7개월간 쭉 함께였다. 어릴 때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었는데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팀워크 속에서 혹시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언젠가부터 인간관계를 맺을 때 조심하는 게 습관이 됐다. <글리치> 촬영장에선 여빈 언니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이끌어주고 촬영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줬다. 지금까지도 그게 너무 고맙다.


-능청스러운 청년 민원왕 구세라를 연기한 드라마 <출사표>(2020)로 K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여자우수상을 받았을 때, 수상 소감에서 평소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역할을 너무나 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연기에 욕심이 생겼나.
=애프터스쿨 시절에는 회사에서 시켜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했다. 나는 나대로 불만이 많았지. (웃음) 그런데 어쨌든 자꾸 피드백을 받다보니 오기가 생겼고, 마음 잡고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모든 게 너무 재밌어졌다. 오디션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순간도 기억하고 있다. 그 무렵 <굿와이프>를 만났다. 학창 시절에도 그다지 대단한 장래희망 같은 게 없었으니 이렇게까지 욕심이 나고 잘하고 싶은 건 살면서 연기가 유일한 셈이다. 다만 앞으로는 좀더 신중하게 내 마음도 잘 들여다보면서 작업하고 싶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뭐가 힘들고 뭐가 좋은지 요즘 점검해보고 있다.


-<글리치>에 이어 10월26일 개봉하는 영화 <자백>에서 극중 살인사건의 피해자 김세희를 연기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유민호(소지섭)의 진술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설정이라 기대된다.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느낌으로 연기해야 해서 무척 큰 도전이었다. 모두 감독님의 디테일한 지시와 리허설이 있어서 가능했다. <글리치>도 <자백>도 결과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과정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만족스럽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내게는 정말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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