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적인 재생능력 탓에 죽지 못하는 남자와 왜곡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연쇄살인마의 대결. 심지어 두 남자는 불법 장기 매매를 통한 신체 이식 탓에 시공간을 넘는 초월적인 힘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커넥트>는 미이케 타카시를 위한 맞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어울리는 소재다. 신체 훼손과 극단적인 폭력, 그 와중에 신랄한 유머와 그로테스크한 쾌감과 같은 미이케 타카시의 주특기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미이케 타카시 감독은 한국에서 처음 시리즈를 연출한 경험이 마치 신인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는 소감으로 운을 뗀다. 영화감독의 시리즈 진출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일본감독이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에 연출을 맡은 건 상징적인 부분이 있다. 심지어 그 결과물의 일부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스크린을 통해 공개된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각본을 쓰고 촬영할 땐 캐릭터와 이야기에 빠져 무아지경이 된다”는 미이케 타카시 감독에게 국경과 플랫폼을 초월하여 작품과 ‘커넥트’ 되는 비결을 물었다.
- 동명의 한국 웹툰을 원작으로 한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연출을 맡았다. 연출 제안을 수락한 계기가 있었나.
= 나는 항상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판단을 믿는다. 제작사가 나를 믿고 제안을 주었다는 건 내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몫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거니까. 제안 자체가 기쁜 일이었고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의지가 보였다. 게다가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라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원작 웹툰을 봤는데 완전히 새로웠다.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웹툰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흥미로웠다. 나는 일본의 출판만화가 삶의 일부인 세대인데 핸드폰으로 스크롤을 하면서 보는 방식 자체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림이 굉장히 심플하다. 스크롤의 속도에 맞춰야 해서 그런지 이야기도 구성도 굉장히 심플했다. 심플해서 도리어 강렬하게 느껴지는 구성이다.
- 한국의 현장에서 한국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했다. 여러모로 도전이었을텐데.
=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재미있었다. 나는 리스크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도전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즐거웠다. 오래전 <쓰리, 몬스터>(2004)의 한 꼭지를 연출한 적 있으니 이번이 두 번째 신작으로 만드는 신인이라는 각오로 임했다. 막상 경험한 현장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아마 촬영 현장은 국경을 초월하여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에 미세한 차이를 느낀 건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확히 전달되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말이 안 통하니까 한국의 스태프와 배우 모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를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각적으로 캐치해주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우리에겐 대본이라는 지도와 숙련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을 수 있었고 굉장히 편안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현장이었다.
- 그로테스크 미학의 대가의 현장에서 꿈과 희망이라니. 왠지 낯설다. (웃음)
= 이해한다. 많은 오해가 있다. (웃음) 나는 폭력으로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내 작품들을 보고 나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폭력과 기괴함은 그 자체를 소비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차라리 도구에 가깝다. 폭력은 중독이다. 한번 힘을 주기 시작하면 발을 떼기 힘든 가속 페달 같다고 할까. 대개는 폭력이나 힘을 휘두르는 쪽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적을 물리치는 기분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는 걸 보면 자연스럽게 응원하기 마련이다. 그 에너지에 휩쓸리면 더 큰 자극, 더 큰 폭력을 상상한다. 손으로 때렸다가 돌로 때렸다가 칼로 찌르게 되는 거다. 자극이 커질수록 쾌감도 커진다. 하지만 나는 맞는 쪽이 더 궁금하다. 맞고 쓰러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더 알고 싶다. 극 중에서도 주연보다 조연에 더 애정이 간다. 그 조연이 정해진 연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마시는 순간을 상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어쩌면 그 조연배우가 느낄 행복의 순간을 전달하는 일이다.
- <커넥트>에는 그러한 바람이 반영되어 있다. 동수(정해인)는 초현실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소극적이며 방어적이다. 3부까지는 동수의 고통 퍼레이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에 시달린다.
= 맞다. 동수는 굉장히 흥미로운 캐릭터다. 남루한 영웅이라고 할까. 누구라도 가지고 싶어 할만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겁이 많아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고독에 시달린다. 그런 인물이 자신과 연결된 진섭(고경표)을 통해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고통을 견뎌낸 끝에 상대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점점 단단해진다. 너무 많은 고통을 느끼는 남자와 타인에게 고통을 주며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남자가 초현실적으로 연결되어 점점 가까워진다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눈을 빼앗기고 신체가 절단되고 사람이 죽는 건 그저 장르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표현일 뿐이다. 이런 극단적인 표현 이면에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인간적인 고뇌가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있다. 원작을 보며 기발하고 기괴한 소재보다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남자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고, 내 식대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 원작의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해석했나.
= 우선 원작 웹툰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 처음 볼 때 30화 넘게 한 번에 봤는데 어떤 결연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매주 독자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에서 치열하게 작품을 그리는 건 생명을 불태우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런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원작자가 봐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길 바라며, 원작의 에너지를 최대한 영상에 담아내고자 했다. 솔직히 나는 스스로 좀 게으른 사람이다. 다행히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서 자극을 받는 건 즐기는 편이다. 사람들 사이의 에너지를 충돌시키고 작품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태어난다고 믿는다.
- 감독님의 팬이라면 표현 수위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떤 기준이 있었나.
=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번도 그런 걸 의식하고 작업해본 적이 없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폭력을 좋아하지도 않고 폭력을 아름답게 그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 관심사는 폭력 뒤에 남겨진 인간이다. 내가 장면을 만드는 방식은 오로지 캐릭터와 상황에 집중하는 거다. 캐릭터에 몰두하다 보면 내가 의식하고 감각 하는 세계가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한계를 그어본 적도 없고 어디까지 가보자고 목표를 정한 적도 없다. 장면의 수위나 표현 정도는 뒤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커넥트> 역시 이야기와 상황, 캐릭터에게 가장 좋을 장면들이 필연적인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수위가 얼마나 높고 낮은지는 사후적인 잣대에 불과하다.
- 순간에 집중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첫 시리즈 연출작인데 영화와는 접근방식이 달랐을까. 영화감독이 연출한 적지 않은 시리즈들이 그러하듯 어쩌면 6부작 구성은 300분 남짓의 긴 영화 한 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마찬가지다. 연출 할 땐 그런 걸 딱히 의식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갈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다. <커넥트>를 영화처럼 받아들이고 관람할지, 시리즈의 연장에서 이야기할지는 오직 관객(혹은 시청자)의 몫이다. 어쩌면 이건 프로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하면서 연출해본 적이 없다. 스스로 현장에서 얼마나 즐거운지가 중요하다. 나는 이번 작품을 통해 전에 없이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충분히 느꼈다. 이후의 운명은 겸허히 기다릴 뿐이다.
- 시리즈인가, 영화인가 하는 건 어쩌면 창작자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구분하는 건 사후적인 분류에 불과한 걸지도 모르겠다.
= 영화의 경계를 묻는 질문은 당연하다. 생각해보면 몇 년 전 칸영화제에서부터 OTT 플랫폼의 영상물이 영화인가 하는 질문이 시작됐다. 높은 완성도의 작품이 나왔지만 그때 칸영화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지난 몇 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온 스크린 섹션이 생겼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각자 가정에서 4K 이상의 화질과 5.1채널의 음향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동안 우리가 영화라는 틀로 집착해왔던 것들이 극장 바깥에서도 가능한 세상이 온 거다. 한편으론 지금 태어난 세대에겐 OTT 플랫폼이 당연한 것이 되어 이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변화를 받아들일 시기가 왔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3화까지 공개됐다. 앞으로 이어질 4,5,6화에 대한 힌트를 준다면.
= 캐릭터도 상황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가속도가 붙는다. 자신의 능력을 저주하던 인물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본격적인 대결을 펼쳐나간다. 그 외에도 예상을 뒤엎는 부분이 많다. 어떤 방식으로든 여러분의 예상을 기분 좋게 배신할 것이다. 12월에 공개될 때까지 관심 가지고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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