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정이는 사랑을 갈구하던 '받는 여자'임
이건 약간 중의적 의미도 될 수 있는게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라는 뜻도 되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참수 당하기 직전까지 뭘 하지는 않고 그저 진돗개마냥 충성을 다하겠다 라는 수동적인 의미로도 보였어
그런데 그렇게 목숨같이 여기던 머리를 자른 후에(난 이걸 받는 여자로서의 상징이라고 봤음)태훈이에게 나는 이제 남자할래요 라고 말했다는 건
이제는 단지 받는 여자가 아니라 주는 사람으로,
자신이 목숨같이 여기던 것을 잘라내고 태훈이를 잘라내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의미로 봤어
그래서 나는 기정이랑 태훈이가 앞으로도 잘 해낼거라고 믿어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겪지만 그걸 함께 해나가는 사람을 얻었다는게
그리고 기정이 입장에서는 만에하나 태훈이랑 헤어지더라도 그 이후에도 받는 여자가 아니라 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거라는게 기정이의 해방같아
창희는 초반부터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자들에게 자기가 충분하지 못한 사람이라서 고민하고 고통받던 캐릭터임
오로지 평안한 안식을 원했고 다말증 환자 같다가도 혼자 있을 때 차분해진다던 창희가 결국 장례지도사의 길을 향해 간다는 건 그 장례지도사 자체가 창희의 결말이라기보다는 해방의 과정 중 하나라고 보였어
타인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죽음을 함께 해주는, 해내기 정말 힘든일을 함께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거잖아?
창희는 이렇게 자기가 추구하던 가치를 성취해내고 진정한 해방에 이른 것 같음
창희는 스스로를 가랑비 같은 팔자라고 했지만 나는 우산같은 팔자라고 해주고 싶어. 다른 사람에게 태풍을 피할 집까지는 되지 못해도 조금이나마 비를 덜 맞게 해주는 우산 같은 사람. 그래서 늘 옆에 두고 싶은 사람.
미정이는 채워지지 못해서, 단 한 번도 온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여겨서 스스로를 낮춰보고 불행했던 캐릭터임
그런데 구씨를 만난 이후로 미정이는 어쩌면 자신 또한 타인을 추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추앙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깨닫게 돼
그래서 구씨에게 나를 추앙해요 라고 말했다가 바로 내가 추앙해줄까? 라고 말을 바꾸지
미정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너무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야 그런데 구씨라는 성역을 만들고 온 마음을 쏟으며 자신을 처음으로 사랑스럽다고 여기게 돼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딱 한 사람에게 딱 한 번만 모든 의심 분노 미움 과 같은 감정을 버리고 아기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만든 이후에 자기 자신에게도 조금쯤 너그러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된 게 아닐까 싶었음
여기서 미정이의 해방이 시작된 거라고 봐 결국 미정이는 스스로를 해방으로 이끈 것이기도 해
그리고 구씨의 해방도 미정이의 해방과 떼어놓을 수 없지
구씨는 미정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방의 과정에 들어선 것 같아
구씨는 미정이와 닮은 점이 꽤 많아. 스스로를 비하하고 미정이보다도 훨씬 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
그런데 미정이의 추앙을 받고 또 미정이를 추앙하며 구씨의 마음 속에도 조금의 틈새가 생긴 거 같아
나는 구씨가 마지막에 현진이형에게 환대해주겠다고 한 게 미정이가 떠나버린 구씨에게 감기한 번 걸리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을 구씨가 현진이형에게 가지게 된 거라고 봤어
추앙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너그러운 마음, 또는 인류애 같은 것이 현진이형에게 든 거겠지
구씨에게 현진이 형은 꽤나 소중한 존재이기도 했지만 이건 이전의 구씨라면 하지 못했을 엄청난 변화라고 봤어
이전의 구씨라면 백사장에게 그랬듯 위악을 떨면서 오히려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을테니까
구씨가 현진이형에게 그랬듯 미정이도 전남친에게 어느정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돼
그리고 그렇게 너그러워진 둘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편안해보여. 이게 진짜 해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렇게 미정이는 채워지지 못했던 마음을 넘칠정도로 채우고 해방의 길로 들게 돼
물론 삼남매 모두 완전한 해방에 이르렀다 고는 말 못하지
기정이는 여전히 시댁이라는 큰 벽과 부딪혀야 할꺼고 창희는 편의점 사장으로서 일해야 하고 미정이도 구씨의 알콜중독과 그 직업을 바꾸기 전까지는 위태로울거야
근데 저게 다 해결된다고 해도 어떤 사람도 완전한 해방에 이를 수는 없어
조경선이 갑자기 천사가 된다해도 창희가 로또를 맞아도 구씨가 알콜중독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어도
하수구에 빠진 동전 하나에 기분이 나빠지는게 사람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힘들고 싫은 일들을 겪을테니까
근데 또 하수구에 빠질 뻔한 동전이 기적처럼 안 빠진 걸 보면서 금새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게 이 드라마가 말하는 해방이 아닐까 싶었어
이제 어떤 비포장도로에서도 해방의 길처럼 걷고 달리고 쉴 수 있는 게 염가네 삼남매라는 걸 보여준 엔딩이라고 봤어
사람의 힘으로 그리고 또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에 이른 모든 사람들을 추앙하게 되는 드라마였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