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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t from @siwoorain_
・・・
(중략) 내겐 <우리들의 블루스>를 각별하게 보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제주도 출신으로서 느끼는 호기심이다. 네이티브 입장에서 사투리 고증부터 해보자,라는 심사가 있음도 부인하진 못하겠다. 사투리뿐이 아니다. 지역의 정서를 배우가 얼마나 품고 있는가도 살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에서 고두심은 ‘디폴트값’이자 ‘넘사벽’이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섬의 공기를 온몸에 휘감고 들어앉아 있다. 그런 고두심을 논외로 하고 바라볼 때, 나의 주의를 끄는 인력의 상당량은 이병헌이 연기한 동석에게서 나온다. 뭐랄까. 리얼리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준달까. 단순히 있을법한 인물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리얼리즘이 아니라, 캐릭터에 새겨진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게 리얼리즘이란 걸 보란 듯 증명해 내고 있어서 내내 놀랍다.
제주 토박이 만물상 동석은 트럭에서 산다. 트럭에서 먹고, 트럭에서 자고, 트럭에 몸을 실어 섬들을 오간다. 한 사람이 살아온 습성은 행동을 통해 전해지기 마련. 몸빼 입고 엇박자 손뼉 치며 호객행위 하는 동석의 외침이 찰지다. “골라! 골라! 골라!” 비닐봉지에 물건을 날렵하게 욱여넣는 그의 모습은 오일장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제주 삼춘’의 그것이다. 다른 만물상에게 물건을 산 단골 어르신들에게 동석이 펄쩍 뛰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제주도에는 ‘괸당문화’라고 해서 가까운 이웃의 일이라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는 카르텔이 있다. 이 괸당문화는 도민을 결집시키는 미덕으로 평가받지만, 외부인에겐 폐쇄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녀들이 서울에서 온 영옥(한지민)을 미덥지 않게 여기는 건 이 괸당문화와 무관치 않다. 어르신들에게 동석이 ‘부애(화)’ 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그는 하루 매상을 올리지 못해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차 끌엉(차 끌고), 배 탕(배 타고) 하루 십만 원 벌이가 안 돼도 기어 와신디(왔는데)” 그 의리를 어르신들이 져버려서 서운한 것이다. 감정 표현이 투박해서, 솔직하게 내지르는 외에는 도리가 없는 사람의 내면을 동석은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이때 동석을 통해 발화되는 이병헌의 제주 방언이 상당하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그는 언제고 “영어를 말하는 것과 영어로 연기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방언이라고 다를까.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과 사투리로 연기하는 건 질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제주 방언은 전국 8도에서 유일하게 ‘자막’이 요구되는 외계어 같은 면이 있다. 그런데 이병헌은 이 고난도 사투리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와중에 생활 밀착형 연기까지 한다. 지역색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에선 언어에 사실감이 실리지 않으면 모든 게 거짓말처럼 보이곤 하는데, 이를 밀도 있게 소화한 이병헌의 연기로 인해 동석은 한층 더 현실감을 입는다.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런 점에서 동석은 <해피투게더>의 서태풍, <그것만이 내 세상> 조하의 먼 친척뻘이다. 세기말 방영된 <해피투게더>에서 이병헌은 기존의 ‘열혈남아’ 이미지에 반하는, 백치미 줄줄 흐르는 2군 야구선수 태풍으로 분해 뭇 여성들로부터 “오빠 이런 사람이었요?”라는 놀라움을 내지르게 했다.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결핍은 있을지언정, 뭔가 특출함이 있다거나 ‘포기를 모르는 정대만’ 같은 근성을 지니기 마련인데 태풍은 마지막 순간까지 평범한 동네 오빠의 모습으로 드라마를 질주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토록 ‘멋’을 접어둔 건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현실 밀착형 인물이라면 <그것만이 내 세상>의 조하도 만만치 않다. 잘나가던 WBC 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동네 백수. 전단지 돌리며 사는 생활인을 표현하기 위해 “티셔츠 경계선 따라 새까맣게 팔을 태우는 데 신경썼다”는 배우의 세심함은 조하를 조금 더 현실에 착지해 있는 인물로 보이게 했다.
엄연히 말해 배우 이병헌을 키운 8할은 촉촉한 눈빛으로 대변되는 서정성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의 배우인생을 더욱 흥미롭게 매만지고 있는 것은 어깨에 힘 뺀 연기들이다. 카리스마를 배반하는 허술함을 앞세워, 이병헌만큼 희비극을 톱니바퀴처럼 조율해 내는 배우는 드물다. 그 연장선에서 생리현상을 주체할 수 없어 바지춤을 붙잡고 종종거리는 <광해>의 하선이 나왔고, 허겁지겁 삼킨 라면이 너무 뜨거워 퉤 뱉어내는 <내부자들>의 안상구가 나왔다. (후략)
#퍼스트룩에쓴칼럼입니다 #이병헌 #우리들의블루스 #퍼스트룩
https://img.theqoo.net/yTZCC
#Repost from @siwoorai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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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내겐 <우리들의 블루스>를 각별하게 보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제주도 출신으로서 느끼는 호기심이다. 네이티브 입장에서 사투리 고증부터 해보자,라는 심사가 있음도 부인하진 못하겠다. 사투리뿐이 아니다. 지역의 정서를 배우가 얼마나 품고 있는가도 살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에서 고두심은 ‘디폴트값’이자 ‘넘사벽’이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섬의 공기를 온몸에 휘감고 들어앉아 있다. 그런 고두심을 논외로 하고 바라볼 때, 나의 주의를 끄는 인력의 상당량은 이병헌이 연기한 동석에게서 나온다. 뭐랄까. 리얼리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준달까. 단순히 있을법한 인물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리얼리즘이 아니라, 캐릭터에 새겨진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게 리얼리즘이란 걸 보란 듯 증명해 내고 있어서 내내 놀랍다.
제주 토박이 만물상 동석은 트럭에서 산다. 트럭에서 먹고, 트럭에서 자고, 트럭에 몸을 실어 섬들을 오간다. 한 사람이 살아온 습성은 행동을 통해 전해지기 마련. 몸빼 입고 엇박자 손뼉 치며 호객행위 하는 동석의 외침이 찰지다. “골라! 골라! 골라!” 비닐봉지에 물건을 날렵하게 욱여넣는 그의 모습은 오일장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제주 삼춘’의 그것이다. 다른 만물상에게 물건을 산 단골 어르신들에게 동석이 펄쩍 뛰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제주도에는 ‘괸당문화’라고 해서 가까운 이웃의 일이라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는 카르텔이 있다. 이 괸당문화는 도민을 결집시키는 미덕으로 평가받지만, 외부인에겐 폐쇄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녀들이 서울에서 온 영옥(한지민)을 미덥지 않게 여기는 건 이 괸당문화와 무관치 않다. 어르신들에게 동석이 ‘부애(화)’ 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그는 하루 매상을 올리지 못해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차 끌엉(차 끌고), 배 탕(배 타고) 하루 십만 원 벌이가 안 돼도 기어 와신디(왔는데)” 그 의리를 어르신들이 져버려서 서운한 것이다. 감정 표현이 투박해서, 솔직하게 내지르는 외에는 도리가 없는 사람의 내면을 동석은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이때 동석을 통해 발화되는 이병헌의 제주 방언이 상당하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그는 언제고 “영어를 말하는 것과 영어로 연기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방언이라고 다를까.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과 사투리로 연기하는 건 질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제주 방언은 전국 8도에서 유일하게 ‘자막’이 요구되는 외계어 같은 면이 있다. 그런데 이병헌은 이 고난도 사투리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와중에 생활 밀착형 연기까지 한다. 지역색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에선 언어에 사실감이 실리지 않으면 모든 게 거짓말처럼 보이곤 하는데, 이를 밀도 있게 소화한 이병헌의 연기로 인해 동석은 한층 더 현실감을 입는다.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런 점에서 동석은 <해피투게더>의 서태풍, <그것만이 내 세상> 조하의 먼 친척뻘이다. 세기말 방영된 <해피투게더>에서 이병헌은 기존의 ‘열혈남아’ 이미지에 반하는, 백치미 줄줄 흐르는 2군 야구선수 태풍으로 분해 뭇 여성들로부터 “오빠 이런 사람이었요?”라는 놀라움을 내지르게 했다.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결핍은 있을지언정, 뭔가 특출함이 있다거나 ‘포기를 모르는 정대만’ 같은 근성을 지니기 마련인데 태풍은 마지막 순간까지 평범한 동네 오빠의 모습으로 드라마를 질주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토록 ‘멋’을 접어둔 건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현실 밀착형 인물이라면 <그것만이 내 세상>의 조하도 만만치 않다. 잘나가던 WBC 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동네 백수. 전단지 돌리며 사는 생활인을 표현하기 위해 “티셔츠 경계선 따라 새까맣게 팔을 태우는 데 신경썼다”는 배우의 세심함은 조하를 조금 더 현실에 착지해 있는 인물로 보이게 했다.
엄연히 말해 배우 이병헌을 키운 8할은 촉촉한 눈빛으로 대변되는 서정성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의 배우인생을 더욱 흥미롭게 매만지고 있는 것은 어깨에 힘 뺀 연기들이다. 카리스마를 배반하는 허술함을 앞세워, 이병헌만큼 희비극을 톱니바퀴처럼 조율해 내는 배우는 드물다. 그 연장선에서 생리현상을 주체할 수 없어 바지춤을 붙잡고 종종거리는 <광해>의 하선이 나왔고, 허겁지겁 삼킨 라면이 너무 뜨거워 퉤 뱉어내는 <내부자들>의 안상구가 나왔다. (후략)
#퍼스트룩에쓴칼럼입니다 #이병헌 #우리들의블루스 #퍼스트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