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주워오겠다던 그의 발길이 향한건, 반대 방향이었다.
우리의 의문에 찬 시선을 올곧이 받아내던
그의 입술이, 잠시 꾹, 다물렸다.
뒤돌아선 그가, 한 발, 땅을 문지른다.
곧이어, 다른 한 발이 땅을 차오른다.
땅먼지가 훅, 일며,
반대쪽 발이 곧바로 앞을 내지른다.
상처입은 발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푸른 밭을 바람보다 빠르게 질러가는
타닥 타닥 뛰어가는 발소리.
언제나 느릿느릿,
쏟아지는 비도 피할 줄을 모르던 그가,
달린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그리고,
날아오른다.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마치 한 마리 짐승이 된 것 처럼.
모두가 돌아가려 했던 그 길을 서슴없이,
뛰어넘는다.
이런 것쯤,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건너편에 착지한 사내는
터덜터덜, 걸어가 모자를 집어든다.
다시 이 쪽을 향하는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물었었다.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 돼있는거.
-확실해.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나는 그를 바라본다.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구씨.
땀투성이 티셔츠를 걸쳤을 뿐인,
그저 농가에서 한량처럼 일하고, 술만 먹던 그 사내.
나처럼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보였던 남자.
하지만.
지금 나는 알 수 있다.
그는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모자를 손에 쥔 그가 숨을 들이마신다.
공기를 폐에 가득, 팽팽하게 채운 그가,
다시, 달린다.
마치 동면에서 깨어났다는 듯이.
생명력으로 가득 차서.
그가, 달려온다.
지긋지긋한 중력에서 벗어나듯이,
그렇게 날아온다.
있는 힘껏,
전력을 다해서,
나의 앞으로.
나의, 마음으로.
단 한 순간도 뗄 수 없는 시선으로
나는 어쩌면 이 순간 그를,
추앙하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