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키지 못한 약속
희도가 1년 전 이진과 함께 왔던 언덕 공원에 혼자 서서 눈 내리는 야경을 내려다본다
1년 전 오늘. 행복한 이진과 희도가 마주 서 있다
희도가 이진의 품에 안긴다
이진이 희도를 번쩍안고 빙글 돌다가 함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본다
이진은 뒤에서 희도를 끌어안고 외투 안에 쏘옥 넣는다
두 사람 너머로 반짝이던 색색의 불빛들도 행복해 하는 희도와 이진의 모습도 점점 회색 빛으로 물들며 조금씩 조금씩 흐려진다
# 시작한 곳에서 맞이한 이별의 순간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희도가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희도가 확 굳어진 얼굴로 걸어와 대문을 열고 나온다
희도의 빨간색 캐리어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당황한 희도가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백이진!"
빨간색 케리어를 끌고 가던 이진이 멈춰선다
하지만 선뜻 돌아서지 못한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희도를 돌아본다
희도의 두 눈이 슬픔으로 물든다
"미안해하고 원망하면서 서로 갉아 먹는거... 그거 그만하고 싶어. 우리... 서로한테 중요한 사람이잖아"
이진은 차마 희도를 쳐다보지 못한다
"할 수 있어? 헤어지는거"
"이미 하고 있었어. 우리"
희도가 왈칵 고이는 눈물을 참는다
이진과 희도는 물기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나 너 여기서 처음 만났어. 여기가 우리 끝이네"
희도는 힘겹게 눈물을 참고 이진의 간절한 눈빛은 그런 희도를 향해있다
"그런가봐"
이진의 두 눈에 슬픔이 짙어진다
희도는 눈물이 흐를까봐 서둘러 계단을 올라간다
혼자 남겨진 이진은 후두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희도가 캐리어를 끌고 마당을 가로지르다 죽을 힘을 다해 눈물을 참고 있다
희도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막 눈이 흩날리기 시작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결국 눈물이 터지고만다
자취방으로 들어온 이진은 불도 켜지 앉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힘없이 주저 앉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믿기지 않는듯 그는 그저 멍하기만 하다
그는 밀려오는 슬픔과 아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 헤어진 백도와 후회하는 희도
이진과 희도는 격앙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희도 뒤쪽에서 오토바이가 달려오자 이진이 습관처럼 희도를 안쪽으로 밀어넣고 천천히 손을 뗀다
이진은 희도를 바라보지만 희도는 이진의 눈길을 피한다
희도가 기억을 떠올린다
이진의 상처받은 눈빛이 떠오르자 희도의 얼굴이 후회와 자책의 눈물로 얼룩진다
# 꿈 속에서 만난 희도의 그리움에 괴로운 슬픈 이진
자취방에서 이진이 몸을 웅크리고 미간을 찌푸린채 잠을 자고 있다
이진은 바닷가에 있는 빨간 공중전화 부스 앞에 서 있다
희도가 바나나맛 우유를 봉지에 가득 담아들고 이진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이진은 그런 희도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눈부신 햇살 속에서 희도가 긴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햇살보다 환하게 웃고있다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른 이진은 희도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그리고 그녀를 꽉 안아준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듯 아무데도 보내지 않겠다는듯 그렇게 희도를 품에 안고 있다
이진이 꿈에서 깨어나는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벚꽃 아래 마지막 작별 인사
이진이 터덜터덜 힘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는데 저멀리 희도가 이진의 캐리어를 꼭 붙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 이진의 얼굴엔 안도감이 스쳐간다
하지만 이내 슬픈 눈물이 왈칵 차오른다
이진은 뒤돌아서서 힘겹게 울음을 삼킨다
애타게 이진을 찾던 희도는 그 뒷모습을 발견한다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이진의 뒷모습을 보고 희도의 눈에도 왈칵 눈물이 고인다
이진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리고 희도를 돌아본다
이진의 슬픈 눈빛엔 아픔이 가득하다
희도와 이진은 눈물이 고인 두 눈에 서로의 모습을 오래도록 담아본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길엔 연핑크색 벚꽃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피어있다
이진이 감정을 누르며 천천히 희도를 향해 다가온다
희도는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서서 이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진이 희도 앞에 멈춰선다
이진도 희도도 서로를 보며 따스하게 미소 짓는다
희도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다
이진은 왈칵 솟구치는 감정을 힘겹게 누른다
희도의 운동화 끈이 풀려있다
"신발 끈...!"
이진이 희도 앞에 앉아서 그녀의 운동화 끈을 정성스럽게 묶어준다
"뛰어 다니느라고... 슬리퍼 신으면 화내니까"
그 말에 이진은 일어나지도 못한채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린다
희도도 눈물이 터지고야만다
이진이 눈물을 닦아낸다
이진이 깊게 숨을 내뱉고 마음을 다잡으며 일어나 희도를 안아준다
희도는 이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서럽게 흐느낀다
그 모습에 이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희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는다
희도와 이진은 서로를 꼭 안고 그렇게 마지막을 함께 한다
# 앵커 이진과 금메달리스트 희도
"나희도 선수. 반갑습니다. 금메달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앵커님도 잘 지내셨나요?"
희도와 이진은 뭉클하고 벅찬 눈빛으로 화면 속의 서로를 마주본다
과거. 두 사람은 운동장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치고 희도는 술에 취해 잠든 이진에게 '오늘 면접 떨어짐. 건들이지 마시오'라는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전기 심판기의 그린라이트 아래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경주의 들판에서 서로에게 펜싱 칼을 대보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이어폰을 나눠끼고 앉아있기도 했다
희도는 이진과 '고유림 매국노'라는 낙서를 함께 지웠고 이진의 품에 안겨 새해를 맞이했다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듯 희도와 이진의 눈빛이 아련해진다
희도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도 피어난다
"니가 어디에 있든 니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때 보자"
이진이 벅찬 감정을 애써누른다
# 안녕. 백도
25살의 이진이 터널 끝에서 고개를 떨구고 서 있다
"너를 너무 오래 이 곳에 세워두었어. 백이진"
25살의 이진이 21살의 희도를 돌아본다
눈물이 고인 이진은 희도를 향해 웃어준다
곧 눈물이 쏟아질 것같은 희도도 웃고 있다
이진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희도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주위의 푸르른 나무들이 희도와 이진을 감싸고 있다
"고마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어. 안녕. 백이진"
"안녕. 나희도"
두 사람은 다이어리에 남긴 서로의 진심을 전한다
이진이 희도에게 웃어보이고 다시 한 번 희도의 모습을 두 눈에 담는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서 걸어간다
희도가 홀가분한 미소를 짓고 돌아서서 터널로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