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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그해우리는 이나은 작가 코스모폴리탄 기고글 [지긋지긋하지만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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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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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사랑한 거 아니고, 그저 그런 이별한 거 아닌’ 최웅과 국연수의 여름을 소환한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최우식과 김다미의 보석 같은 대사를 빚어낸 이나은 작가가 드라마 곳곳에 숨겨둔 니체의 ‘영원회귀’ 이야기를 직접 해독한다. 사랑은 결국 반복되고 고통 역시 되풀이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또 한 번 사랑할 용기를 내자고 우리를 북돋우며.


지긋지긋하지만 또 너야 

친구의 사랑 이야기는 늘 그 사람으로 끝이 났다. 대화 중에 연애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그 사람과의 기억을 꺼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거나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를 8년. 이별하고도 꼬박 8년 동안 그 친구의 이야기에는 늘 그 사람이 따라다녔다. “이 노래 걔가 정말 좋아하던 건데…” 입을 떼던 친구가 멈칫했다. 우리의 표정을 읽곤 입을 다물며 멋쩍은 듯 슬며시 웃었다. “그치. 나도 이러는 내가 지겨운데, 너희는 얼마나 지겹겠어.” 사실 지겹다기보단 궁금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그 사람을 떠올리는지 말이다. 친구는 매 순간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지난 연애가 떠오르면 너무나 생생하게 그 시절로 돌아가 그 사람 앞에 서 있게 될 뿐이라고. 궁금했다. 그들에게만 뭔가 특별한 게 있어 남다른 사랑을 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걸까.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요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난 두 사람은 평범한 연애를 했다. 적어도 우리 시점에서는 그랬다. 여느 커플처럼 수없이 싸웠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오는, 한없이 멀어졌다 한없이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커플이었다. 그렇게 싸우고도 저렇게 다시 만나면 또 좋을까, 신기하듯 바라보면 친구는 마치 큰 비밀을 알려주듯 속삭였다. “사실 우리한텐 특별함이 있거든. 뭐랄까, 헤어져도 분명 우린 계속 다시 사랑할 거라는 믿음?” 그게 무슨 말이냐 물으면 친구는 그저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두 사람은 ‘진짜’ 헤어졌다. 친구는 더 이상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지나도록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을 때, 친구는 어김없이 그 사람의 이름으로 운을 뗐다.


영원회귀. 같은 우주가 무한히 처음으로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

최근 종영한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한 장면, 도서관에서 최웅이 국연수에게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손에 들고 하는 말이다. “영원회귀. 같은 우주가 무한히 처음으로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속에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무한히 반복하며 살아간다는데, 시간의 영원성에 대한 사유가 더 궁금해져서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그 말처럼 최웅과 국연수는 1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사건을 반복한다. 열아홉, 유치하게 티격태격 싸우는 것부터 그러다 서로에게 속절없이 빠져드는 것까지. 10년이 지나 다시 만난 스물아홉의 시간에서도 둘의 시간은 돌고 돈다. 이제는 서로를 향한 애증만 남았을 법도 한데 다시 처음과도 같은 그 감정에 빠져들어버리고 만다. 두 사람 다 이별의 고통에 심장이 찢겨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 불구덩이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니체는 영원회귀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인과관계가 아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둥근 고리로 표현했다. 겨울이 끝나면 어김없이 봄의 새싹이 돋아나듯, 똑같은 것은 똑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되돌아온다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영원회귀로 좋은 것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까지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고 인생의 고통과 권태를 말하는구나 싶었는데, 아래 이야기를 접하고 나자 영원회귀를 말하는 그의 생각이 다시 새롭게 와닿았다. 니체는 당시 열렬하게 사랑했던 루 살로메에게 여러 번 청혼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리고 살로메는 니체의 절친과 함께 도망쳤다. 극심한 실연의 고통에 빠진 니체는 위궤양을 얻은 동시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를 단숨에 써냈다고 한다. 니체가 내게 처음으로 인간답게 다가온 순간이랄까. 그렇지. 이런 대단한 영감은 역시 실패한 사랑에서 얻는 거지. 사랑의 관점에서 니체의 책을 다시 읽자 ‘사랑의 고통이 반복되는 걸 이렇게도 표현해낼 수 있구나’ 싶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드라마에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빌려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묘사할 수 있었고 말이다.
 

과거는 무시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 속에 더 단단히 갇힌다고 해요

친구의 사랑 이야기가 생각난 건 그래서다. 니체의 책을 읽고, “나는 가끔 그 사람이 떠오르면 다시 그 사람 앞에 서 있게 된다”는 친구의 말을 다시 곱씹어봤다. 그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 아니냐는 나의 물음에 친구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도 고통스럽다고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아. 그만큼 말도 안 되게 좋은 기억도 있으니까.” 드디어 뭔가 놓치고 있던 걸 찾은 기분이었다. 이별의 고통이 클수록 상대와의 모든 기억을 봉인해버리기 급급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다시는 그런 고통 겪지 않을 거야. 다시는 그런 사랑 하지 않을 거야. 새로 올 사랑은 이것과는 분명 다를 거야’ 하는 다짐 속에서, 나는 또다시 반복되는 사랑을 몇 번이나 놓치고 있었던 걸까? 나는 지나간 사랑의 고통을 아직도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그 친구가 과거에 단단히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과거에 갇혀 있는 건 지난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회피하던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야말로 누구보다 용감하게 반복되는 고통에 맞서 끊임없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그해가 있다고 해요. 그리고 우리에게 그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니체는 말했다. 루 살로메를 향한 사랑의 고통이 끝없이 반복된다 해도, 황홀했던 그 사랑의 기쁨 또한 반복해서 느낄 수 있다면 지금의 고통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고 “한 번 더!”를 외칠 수 있다고. 자칫 허무주의로 빠지기 쉬운 이 ‘영원회귀’의 개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인간 고유의 감정인 ‘용기’ 때문이라고. 다가올 기쁨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 말이다. 드라마 속 최웅과 국연수는 10년 만에 돌아온 재회의 순간을 용기 있게 붙잡고 또다시 ‘사랑’을 택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렸을 적 대단한 스타였던 한 가수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20년 전 사랑했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꼭 붙잡고 싶었다는 한 남자의 다짐이 이뤄낸 결과였다. 그리고 내 친구도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물론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과. 이 모든 게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은 과거의 인연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은 결국 반복된다. 새로운 얼굴로 둔갑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로. 하지만 반복되는 고통이 두려워 피하거나 무시하려 애쓴다면, 끊임없이 같은 시간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넘기지 못한 순간은 결국 다른 형태로 다시 되돌아온다. 어차피 돌아올 순간이라면, 고통에 맞서 “한 번 더!”를 외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선택 아닐까? 


https://www.cosmopolitan.co.kr/article/65280


글을 참 잘쓴다 글 너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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