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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리뷰) 2521 백이진 감정선에 대한 고찰(부제: 관계의 라벨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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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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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알다가도 모르겠는 백이진의 감정선을 첫 화부터 쭉 따라가보고자 쓰는 글임. 궁예와 주관적 해석이 가득하고 당연히 내 의견이 틀릴 수 있음! 뇌절 가득함! 피드백/반박 대환영임! 영양가 없는 주저리 글임!


10화까지 백이진의 감정은 크게 3단계로 나뉨.


1. 아가페적 애정의 시작(2-8화)

2. 혼돈기(9화)

3. 자각 ~ing(9화 후반부~)


시작하기 전에 우선 사람 사이의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짚고 넘어가야 함. 앞으로 이 행위를 "라벨링"이라고 부르겠음.


세간에 돌아다니는 고백 필승법? 좋아하는 사람 꼬시는 방법? 중에 그런 거 들어본 적 있을 거임. 일단 고백을 하고 다른 어떤 행위도 하지 마라. 너의 마음을 알려주되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마라. 상대가 너를 친구나 지인이 아닌 연애가 가능한 대상으로 보게 만드는 게 첫번째다. 개인적으로 일리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함. 일정치 이상의 인간적인 호감이 있다는 가정 하에?


그런데 이게 비단 연애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님. 우리는 살면서 선후배, 친구, 사제, 상사와 부하직원 등 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감. 그리고 이 사람에게 어떤 호칭을 붙이냐에 따라 관계에 대한 내 접근 방식이나 기대치가 달라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거임. 그게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관계에 붙는 이름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럼.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이런 말도 들어본 적 있을 것임. 정상인이 아닌 비장애인, 미혼이 아닌 비혼, 낙태가 아닌 임신중절. 무언가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지가 무의식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임. 나 자신이 정상인일 때보다 비장애인일 때 장애인을 바라보는 태도가 보다 평등할 거란 건 당연하지 않겠음? 이건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퇴사하면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라거나, 우리 이제 사귀는 거야? 라는 식으로 관계를 재정립하는, 다시 말해 "라벨링하려는" 시도가 어딜 가나 존재하는 것임. 이름을 다시 붙이는 것만으로 내 감정과 사고 회로는 바뀌게 되어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전략이 통용되는 이유도 남/여사친에서 "나를 이성으로 보는 사람"이 되는 순간 사람의 사고 회로는 좋든 싫든 그쪽으로 팽팽 돌아가게 되기 때문임.



1. 아가페적 애정의 시작


이제 초반부의 백이진을 보도록 하겠음. 골때리지만 귀엽고 보다보면 기분 좋아지는 동네 동생, 2화 엔딩 전까지 백이진은 나희도를 딱 그렇게 대함. 말투도 유죄인간 백이진 특성상 스윗하긴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건조하고. 희도가 풀하우스 다시 그려서 돌려줄 때라던가 화장실 수학문제 풀어줄 때라던가ㅋㅋㅋㅋ 그렇게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유쾌하게 희도를 대하며 자기 삶을 살던 백이진은 2화 엔딩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인생이 ㅈ되기 시작함. 물론 좋은 의미로.


https://gfycat.com/PracticalMildKob

"앞으로 나랑 놀 때만,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지는 거야."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시만 행복하자.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삶이 가장 숨막히고 깜깜해 보일 때 저렇게 말해주는 사람에게 어떻게 감기지 않을 수 있단 말임? 나희도 너어는 진짜...ㅠㅠㅠ 백이진 책임져야 된다 진짜ㅠㅠㅠㅠ

이때 이진이 표정을 보면 깜깜하던 시야가 확 밝아지는 느낌+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동시에 있음. 백이진은 이때 알았을 거임, 어떤 식으로든 자기는 나희도라는 인간에게 단단히 매였다는 걸. 저 사람이 내 인생에 깊게 들어와 앉았다는 걸.


일반적인 경우라면 피 안 섞인 이성애자 남녀가 저렇게까지 깊게 본딩했다면 로맨틱한 관계로 이어지는 게 수순임. 아닌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런데 문제는 백이진의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데 있음. 단순히 취준을 한다거나 시험을 준비할 때도 연애는 뒤로 미루는 게 사람인데, 백이진은 지금 집이 망해서 가족이 뿔뿔히 흩어짐+빚이 어마어마함+대학 자퇴+동생은 고모네 얹혀살고 있음+장남인 내가 이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함의 콤보임. 백이진 인생 진짜 레전드 이런 상황에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백이진처럼 책임감 있는 타입에게는 무리한 일이었을 거임. 


더구나 희도는 고딩이며 백이진은 아기유교꼰대맨임. 설령 그런 감정이 들었다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회피했어야 하지 않겠음? 이렇게 이제 막 부풀어오르는 백이진과 나희도의 관계에서 로맨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세되게 됨. 그럼 갈 길을 잃은 이 깊은 유대와 애틋함은 어디로 가느냐? 수많은 펜칼단을 쳐돌게 만든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순수한 아가페적 서사가 바로 여기서 시작함. 개인적으로 우리 드라마가 이렇게 느린 호흡으로 메인 서사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던 데 이 성인미자 설정이 한몫했다고 생각함. 물론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정하셨겠지만ㅋㅋㅋ


그리고 나서 둘에게는 많은 일이 생김. 이진이 포항도 다녀오고... 희도 국대도 되고... 이진이는 생존해야 한다는 목적의식, 희도는 펜싱이라는 꿈이 확실해서 세상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유일한 내편인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더욱 깊어짐. 물론 백도가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는 게 근본적인 이유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이진이는 이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을 것 같음. 우선 세상 사는 게 너무 빡세고... 빚쟁이 피해서 포항 내려왔다가 동생한테 쿠사리먹고(ㅠ) 마음 다잡고 다시 서울 올라와서 고졸 출신 막내기자 노릇하는 게 쉬웠겠음? 이렇게 빡센 일상에 희도라는 한 줄기 숨구멍을 누리는 게 너무 소중해서, 그것만으로 넘치게 충분해서 이게 무슨 사인지 깊이 생각할 정신도 없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임. 거기다 타고난 덤덤충에 t형 인간이라 그런.. 관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에 깊이 파고드는 성격도 아닌 것 같고ㅋㅋㅋ 


나희도는 그냥... 나희도. 저 애가 나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힘이 생기는 소중한 존재. 이 정도가 8화까지의 백이진이 희도를 정의하는 문장임. 그래서 이미 자각해버린 희도 얼굴에 아이스크림이나 묻히면서(ㅋㅋㅋㅋ) 희도 속을 뒤집음... 그러다 희도가 덜컥 고백을 해버린 거임.



2. 혼돈기


jHclB.jpg

희도의 닥돌 고백 전까지 백이진은 정말 이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이 없음. 이 점이 확실히 드러나는 게 알콩달콩 씬인데, 처음 희도가 내 남자친구얌!^ㅁ^ 했을 때 백이진 표정이 살-짝 미묘하단 말임? 그러다 얘네 하는 꼴(커플키링, 알콩달콩, 3일차 연애 등)을 보고는 맘놓고 웃음. 나중에 희도가 자기 피하기 시작했을 때 보여준 다급하고 절실한 태도를 생각하면 이게 여유에서 나오는 짬바는 아닌 것 같고... 그것보다는 ㅎㅎ아휴 내가 이 고딩들 보고 별 생각을 다 한다ㅎㅎㅎ 정도로 이 상황을 단순하고 가볍게 받아들이려는 시도라고 봤음. 


거기서 이진이가 자기 감정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서 로맨스적 요소를 발견했다면, 나중에 희도가 이진❤민영 스티커사진 보고 화낼 때 왜저래...? 라는 반응이 나올 수가 없었을 거임. 이미 자기가 상대방을 로맨스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 역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거든. 만약 그랬다면 '희도가 혹시 날...?' 정도의 반응은 나와 줬어야 정상임. 그러는 대신 백이진은 ㅋㅋㅋ나희도 졸귀ㅋㅋㅋ 정도로 알콩달콩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하는 걸 선택함.


그런데 희도가 고백을 해온 거임. 그리고 아직 라벨링되지 않은 채 백지로 남아 있는 관계를 백이진 앞에 디밀음. 여기에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냐고. 이때 대화의 일부를 옮겨와 보겠음.'


인절미가 니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고백 안 나왔어. 너니까, 너라서 나온 고백이야. 그래서 그 고백의 반은 니꺼라고.

-그래서, 니 계획이 뭐였는데. 뭐 이렇게 피하다가 영원히 피할 생각이었어? 그냥 우리 이렇게 멀어지길 바라면서? 넌 우리 관계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이 유죄fox인간은 아기고딩이 안절부절하다가 자기 좋아한다고 고백하는데 그거에 대한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게 아니라 "희도가 나를 피했다"에 꽂혀서 도리여 정색하고 화를 냄. 체육관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냉한 반응이라던가, 왜 자꾸 실망시키지? 멘트 같은 데서 백이진은 희도가 자기를 피한다는 데 정말 진심으로 상처받았다는 걸 알 수 있음. 진짜... 생각할수록 개골때림ㅋㅋㅋㅋ 우리 관계를 뭐라고 생각하냐니 그게 지금 고백받은 사람이 할 말이냐곸ㅋㅋ 이렇게 백이진은 희도와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서운함이 더 커서 좋아한다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함. 그러다 희도가 나 너 좋아하고근데질투하고열등감도느끼고돌아버리겠따고 급발진하니까 그제야 좀 당황하기 시작함. 그러더니 그래서 요즘 니가 실허! 하고 벽에 머리 박으니까 이제는... 부스스 웃음. 마음이 놓였다는 듯이.


왜 웃어? 나는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왜 웃는데?

-그래, 열심히 고민해라. 난 고민 끝났어. 해본 적도 없지만.


여기서 고민해본 적 없다는 말은 말 그대로 진짜 '해본 적 없다'는 뜻이라고 봤음. 백이진은 희도가 자기를 피한 게 자기가 뭘 잘못했거나 자기가 싫어져서가 아니라는 데 대한 안도감이 너무 큰 나머지 이 상황을 !나희도 하여튼 골때리고 귀여움!으로 마무리지은 거임. 마치 알콩이달콩이 때처럼. 백이진한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희도를 잃지 않아도 된다는 거니까.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희도 머리 슥 쓰다듬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


근데 나 방금 설레지 않았나?


백이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역설적으로 여기서부터 시작됨. 고민해본 적 없다고 대답하고 나온 다음부터. 나희도와의 관계에 로맨스라는 전에 없던 키워드가 등장하면서 사고의 물길이 새로 트이게 된 거임. 백이진 혼자였다면 절대 덧붙이지 않았을 키워드를, 희도가 들고 나와서 이진이 눈앞에 쾅쾅 못박은 셈임.

그러다 백이진은 희도네 집에 가게 됨. 언제나처럼 희도에게 도움을 받고 급한 불은 껐는데, 닫히고 조용한 공간에 단 둘이 있게 된 거임. 그리고 희도는 다시 "관계의 라벨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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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콩이와의 2주 연애가 사랑 경험의 전부인, 아직 세상 물이 덜 든 희도는 정의되지 않은 관계에 대해 순수하고 신선한 접근을 함. 무지개나 가위처럼 우리가 새로 이름을 만들어 붙이면 된다고. 그리고 되게 귀엽고 예쁘게 웃음...ㅋㅋㅋ 하지만 사랑이 뭔지 아는 백이진은 그렇게만은 생각할 수 없고... 그리고 여기서 백이진은 작품상 처음으로 희도를 상대로 나름의 급발진을 함. 희도 손목을 잡고 눈빛이 진지해진다던가... 이게 2화나 5화 때 손잡은 거랑은 좀 다른 결이라고 느꼈던 게 바로 직전에 백이진이 묘한 기류를 읽고 자리를 뜨려는 시도를 한 게 너무 고텐션이었기 때문임. 여기서 "무지개는 아니다" 라고 말하는 백이진은 좀... 자기통제가 잘 안 되는 상태로 보임. 생각하는 대로 말이 필터링 없이 나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신재경 장모님이 등판하심. 혼란의 백이진은 자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 줄 여러 얘기를 듣게 되는데, 이 대화에서 특히 중요한 얘기는 1) 희도와 각별하기 때문에 심판 인터뷰 따러 간 거냐? 2) 너 우리 희도랑 사귀니? 이 둘이라고 생각함.


1번 같은 경우는 더쿠에 분석글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고, 9화 엔딩으로 이어지는("너는 나를 항상 좋은 곳으로 이끌어.") 사고의 물꼬를 터 준 누가 봐도 중요한 질문임.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2번도 은근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하는 게, 희도랑 가깝게 지내는 게 어떤 '사귀는'.. 로맨스적인 관계로 해석될 수도 있구나를 새삼 일깨워줬다고 보기 때문임.

 

사실 고고성성 이후로 우리의 스윗리를끼리유교남 백이진은 그런 발상 자체를 거부해왔고, 같이 엮이는 태양고 애들 역시 희한할 정도로 희도와 이진이 관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음. 무슨 사이냐~? 하면서 놀려먹거나 진지하게 좋아하냐고 물어볼 법 한데도, 이진이 녹음 테이프를 희도가 듣고 있는 엄청난(ㅋㅋㅋ) 상황에서도 그냥 담담함. 난 이게 솔직히 제일 신기함ㅋㅋㅋ 원래 청소년기는 누가 누구랑 사귀는 이슈에 목숨걸고 달려드는 그런 시기 아닌가ㅋㅋㅋㅋ?? 어쨌든 이런 동화적일 만큼 순진한 환경 속에서 평화롭게(?) 머리를 비우고 지내던 백이진이 며칠 사이로 "나희도와의 로맨스"라는 키워드를 여러 차례 듣게 된 거임. 동시에 자신은 구해야 할 사람이 희도이기 때문에 인터뷰 따러 공항으로 달려갔다는 걸 자각하기도 했을 거고. 신재경과의 대화 끝무렵에 백이진 표정은 정말... 정말 복잡해 보임.



3. 자각 ~ing


그 이후 다시 돌아온 백이진은 어딘가... 각성했음. 원래도 유죄인간이었던 놈이 이제는 무기징역감 멘트를 폭격마냥 들이붓기 시작함. 다큐 촬영차 희도를 만난 자리에서 백이진의 만행:


1) 예쁘게 하고 왔네?

2) 나가라면 나가는 거지 뭐, 우리 둘만 있자.

3) (선수님 어느 쪽 얼굴이 더 예뻐요?) 왼쪽이요.


그리고 심하게 다쳤으면 그 새끼 죽여버릴 거야... 등등... 우리 사이는 가윟ㅎㅎ무지갷ㅎ히히 웃기당ㅎㅎㅎ 이러고 있는 고딩 마음을 오지게 심란하게 함. 사실 평소에 유림이한테 하는 거랑 비교해봐도 그렇고 태도가 갑자기 큰 폭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백이진 내부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건 확실해 보임. 그런데 나는 이게 백이진이 이 고딩을 꼬셔보겠다거나(...) 어떤 관계의 변화를 원해서 이러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음. 그동안 보여준 백이진의 꼿꼿한 도덕관념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백이진에게 나희도가 너무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임.


생각해보자. 나한테 작고 소중한 시드머니가 있음. 이걸 불려서 집도 사야 되고 노후대비도 해야 되는데 딱 한 군데에만 투자할 수 있다네? 그러면 이걸 저평가 가치주나 파생상품 같은 고위험 고수익군에 넣을 수 있겠음? 절대 아님. 손 달달 떨면서 적금 들어야 함. 백이진에게 나희도와의 관계가 딱 이런 상황임. 할 일은 많고 앞길은 험난한데 의지할 수 있는 데가 희도밖에 없음. 말하자면 백이진이라는 나무가 뻗어야 하는 가지는 수십 개나 되는데 뿌리가 나희도 딱 하나인 거지.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그 관계를 두고 모험을 할 수가 없음. 최대한 보수적으로, 현상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행동하게 되어 있음. 희도가 자기 피할 때 백이진 반응을 보면 알 만하지 않음? 얘한테 지금 가장 두려운 건 희도를 잃어버리는 거고, 지금까지의 관계로도 백이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에 충격을 줘서 얘가 날 좋아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변화를 꾀하는 모험을 할 상황이 아님. 더구나 희도가 고딩인 건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럼 얘는 대체 다리에서 고백을 왜 했느냐? 고백 씬 대사는 대충 이럼.


맞다, 넌 무지개 아니라고 했잖아. 너 아직 대답 안 했어, 무지개 아니고 뭔지.

-사랑.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나희도. 무지개는 필요 없어.

날 사랑한다고?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뭐, 니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랑은 관계 없는 일이야. 난 니가 뭘 하든,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너 자체를 사랑하고 있고. 이 고백으로 니가 좀 더 행복해진다면 난 바랄 게 없어.

바랄 게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래?

-그렇던데? 너한텐.


https://gfycat.com/UnfitWholeElectriceel


희도는 체육관-희도 집-다리 위에서 3번에 걸쳐 백이진에게 관계의 라벨링을 요구함. 자기는 이미 무지개라고 정의 땅땅 내려놨으면서 동시에 이진이의 대답을 굉장히 궁금해함. 그리고 이진이는... 그 요구를 들어줌. 나는 이게 어른이라지만 아직 스물 셋밖에 안 먹은 백이진의 일종의 객기였다고 생각함. 


보면 희도 집에서와는 달리 백이진의 태도가 굉장히 여유있고, 생각정리가 전부 끝나서 나름 결론까지 낸 사람의 확신의 찬 표정임. 희도 집에서의 감정통제 안 되는 사람과는 꽤 차이가 있음. 나는 나희도를 사랑하고, 희도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하니까 솔직하게 말해주겠지만, 그래도 우리 관계는 그대로일 거라고 자신하고 있는 거임. 그동안 서로를 지탱해온 그대로. '너한테의 사랑은 바랄 게 없다'는 말은 관계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변하는 건 없을 거라고(자기가 이 관계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고 봄. 한 마디로 관계의 라벨링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임. 자기도 언어의 마법에 휩쓸려서 자각해버린 주제에!


그리고 예상대로 이후의 백도 관계는 절대 이전과 같지 않음ㅋㅋㅋ 아무리 개인이 현상유지라 생각한다 해도 사랑이라고 이름붙여진 감정이 전과 같을 수 있겠음? 10화 바다 씬도 그렇고, 앞으로 2420 때 상처받는 전개도 그렇고, 그냥 100% 아가페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자꾸 생기고 있고 또 생길 거라고 확신함. 그리고 반대로 그렇게 찢어졌을 때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근거도 사랑이라는 정체성일 거고.



4. 마무리


사실 남주 감정선에 대해 이렇게까지 깊은 고찰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작감이 다소 불친절했다는 뜻이라ㅋㅋㅋ 덕질하고 분석글 쓰는 입장에서는 재밌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좀 아쉬웠던 것도 사실임. 백이진 입장에서 혼자 고민하는 씬이라던가.. 여튼 요소 하나만 더 넣어줬으면 이렇게까지 의견이 갈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음. 미자성인의 관계 연출이 위험해 보인다는 지적 역시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봄. 그런데 뭐 백이진이 고딩 킬러라거나(...) 둘의 관계가 변질돼서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흐린다거나(...) 하는 평에 대해서는... 동의가 잘 안 됨. 백이진이 진짜 선넘는 행동을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여전히 백도 관계는 희도의 무지개에 훨씬 가깝기 때문에ㅇㅇ 결국 남은 6화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지금 상황이 온전히 설명력을 가질지가 갈릴 거라고 생각함.


히야 똥 잘 쌌다ㅋㅋㅋ 마무리 어떻게 하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백도 서사는 진짜 오타쿠의 심금을 울리는... 평론가분들 말마따나 작가님의 역량이 터져나온 레전드 서사라고 생각함. 빨리 남은 6화 풀려서 엔딩 봤으면 좋겠다가도 영원히 종방 안 했으면 좋겠기도 함ㅋㅋㅋ 끝까지 잘 달려서 내 인생드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임. 태양고 5인방 행복해라 짱슴슴 갓드 가보자고~~~!~!~!


*아니 중간에 글씨 크기 존나 뒤죽박죽이네ㅋㅋㅋ큐ㅠㅠ 미안하다 어케 고치는지 아는 덬 있으면 헬프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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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후기(리뷰) 2521 이 리뷰 나만 이제 봤나 화장실 35 22.03.09 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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