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진 조명탄] 마음의 빚 ‘주고받기’
(중략)
오랜만에 꼬박꼬박 챙겨 본 드라마에서 그런 오묘함을 재확인하게 돼 반가웠다. 처음엔 전혀 사전정보 없이 제목(‘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만 보고 범죄자들을 일상으로 만나는 나의 직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청하기 시작했는데, 극의 재미가 있어 끝까지 챙겨 보게 된 드라마다.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 실존 인물을 그렸는데 주인공을 영웅시하지 않는 이야기 전개가 좋았다. 주인공은 국내에서는 아무도 걸어 보지 않았던 길을 힘들게 걸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마음의 빚을 진다. 그가 가장 큰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는 그의 직속 상사에게 쑥스러운 감사를 전할 때 상사는 말한다. 자신한테 진 빚 이미 다 갚았다고, 자기한테가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상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악의 최정점에 있는 연쇄살인범의 마음을 읽는 일을 일상적으로 해야만 했던 주인공은 트라우마가 심해지면서 한때 그 일을 떠나려고 마음먹는다. 그는 사직서를 썼고 “좀 쉬면서 마음을 추슬러 보자”는 상사의 말에 다시는 그 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러나 어떤 피해자의 어머니로부터 뜻밖의 감사인사를 들은 일을 계기로 그는 결국 마음을 돌린다. 차마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악인으로 인해 비정하게 딸을 잃고 쉽지 않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 어머니는, 딸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해 노력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트라우마를 견뎌 낼 힘을 얻은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기꺼이 돌아간다.
드라마를 보고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라는 시를 새삼 떠올렸다. 시인이 들으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를 내 마음대로 ‘다자간 마음의 빚 주고받기의 오묘함’을 그린 시로 이해한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중략)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중에서)
생명이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듯 비스듬히 서로에게 기꺼이 기대고 기댈 자리를 내주고, 서로 마음의 빚을 지고 또 빚을 갚고자 애쓰는 것. 그게 우리 삶이 아닐까.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m/20220317/1/BBSMSTR_000000100134/view.do
(중략)
오랜만에 꼬박꼬박 챙겨 본 드라마에서 그런 오묘함을 재확인하게 돼 반가웠다. 처음엔 전혀 사전정보 없이 제목(‘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만 보고 범죄자들을 일상으로 만나는 나의 직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청하기 시작했는데, 극의 재미가 있어 끝까지 챙겨 보게 된 드라마다.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 실존 인물을 그렸는데 주인공을 영웅시하지 않는 이야기 전개가 좋았다. 주인공은 국내에서는 아무도 걸어 보지 않았던 길을 힘들게 걸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마음의 빚을 진다. 그가 가장 큰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는 그의 직속 상사에게 쑥스러운 감사를 전할 때 상사는 말한다. 자신한테 진 빚 이미 다 갚았다고, 자기한테가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상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악의 최정점에 있는 연쇄살인범의 마음을 읽는 일을 일상적으로 해야만 했던 주인공은 트라우마가 심해지면서 한때 그 일을 떠나려고 마음먹는다. 그는 사직서를 썼고 “좀 쉬면서 마음을 추슬러 보자”는 상사의 말에 다시는 그 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러나 어떤 피해자의 어머니로부터 뜻밖의 감사인사를 들은 일을 계기로 그는 결국 마음을 돌린다. 차마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악인으로 인해 비정하게 딸을 잃고 쉽지 않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 어머니는, 딸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해 노력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트라우마를 견뎌 낼 힘을 얻은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기꺼이 돌아간다.
드라마를 보고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라는 시를 새삼 떠올렸다. 시인이 들으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를 내 마음대로 ‘다자간 마음의 빚 주고받기의 오묘함’을 그린 시로 이해한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중략)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중에서)
생명이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듯 비스듬히 서로에게 기꺼이 기대고 기댈 자리를 내주고, 서로 마음의 빚을 지고 또 빚을 갚고자 애쓰는 것. 그게 우리 삶이 아닐까.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m/20220317/1/BBSMSTR_000000100134/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