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youtu.be/V7RRe5VEB1k
산의 머리맡에는 시경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떠나리
산은 시경의 이 구절에 책갈피를 끼워놓고
항상 머리맡에 두었다.
왕이 아니면 죽음뿐인 삶을 사는 그는
자식을 떠나보내고
온 마음 다 해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고도
죽을 수 없다.
왕이 되며 절대 도망치지 않으리라 맹세한 산은
항상 머리맡에 떠나고 싶다는 말을 두었었다.
왕이어야만 하는 그가
어디에도 떠날 수 없는 왕이
사랑하는 여인과 떠날 수 없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부디 곁에 있어달라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했다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잊으면 그만일 것을
잊을 수 없었다.
춥고도 시린 마지막이었다.
왕이
감히 사랑을 하여
그런 왕의 사랑을 받는
궁녀는 또 어떠한가
미천한 신분이지만 영특하게도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던 궁녀는
왕을 사랑해버렸다.
사랑하여 사랑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밀어내고 밀어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절 놓지 않았으면 했다.
그를 보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모든 게 뒤바뀐다.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빼앗기는 삶은 어떠한가
함께 하는 순간들만큼은 행복했음에도
자신을 잃어가면서 그를 온전히 가지지 못함에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으면
얼마나 사랑했으면
애초에 사랑하지 않는 것을 바랄까
결국 사랑만이 남은 여인이 할 수 있는 건
그 사랑하는 마음만은 지키기 위해
지키기 위해
숨기는 것이었다.
궁녀가 감히
왕을 사랑하여
그 누구보다 사랑을 했던 이들에게
이들에게 사랑은 어찌 이리 어려운가
- 산, 떠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