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마자 ‘이건 먹힌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아마도 넷플릭스 시청자들의 관심을 손쉽게 사로잡을 것이다. <부산행> <킹덤>에서 이어진 K좀비 불패 신화를 쓸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징어 게임>이 그랬듯) 흥행과 작품성, 완성도는 대부분 별개의 그래프를 그린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개별 작품으로서보다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훨씬 흥미롭고 유효하다. K좀비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 현상과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제목만 보고 깜박 속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은 당연히 학교를 무대로 벌어지는 좀비물일 거라 생각했다.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지우학>에선 학교 바깥 이야기도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학생들이 편으로 뭉쳐 탈출을 도모하는 사이 바깥에선 자식들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벌어진다. 좀비 바이러스는 학교 바깥에도 퍼져 효산시 전체를 공황 상태에 빠트리고 카메라는 병원, 국회, 광장과 골목 등을 보여주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덕분에 꽤 빠른 전개처럼 다가왔던 속도가 종종 발을 잡히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입체적으로 다양한 사연을 보여준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반대로 서사가 산만하게 흩어지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산만하고 다양하게. 하이틴물과 좀비를 결합한 <지우학>의 톤은 자신이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대상을 닮았다.
학교 안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일 거라는 착각은 장르에 대한 선입견 탓이다. <부산행>이 기차 안으로 무대를 좁혔던 것처럼 크리처 장르는 대개 공간을 축소, 한정하는 걸 선호한다. 제작비 등 여러 현실적인 여건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최소한 두 가지 정도는 눈여겨봄직한 결과로 이어진다. 우선 축소, 선택된 무대 자체가 곧 현실을 압축한 상징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SF나 판타지, 크리처물처럼 상상을 기반으로 한 장르의 경우 이야기의 무대 혹은 무대의 구성이 곧 메시지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산행>을 예로 든다면 칸칸이 나뉜 열차의 구조는 한국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다. <#살아있다>의 고립된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상징성이 곧 메시지라고 해도 좋겠다. 다음으로 이렇게 선택된 무대를 폐쇄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격리된 공간에서 행동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비유하자면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가 된다. 주인공 무리의 구성은 사회의 압축이며 각 인물들은 개인적인 특성보다 집단의 대표성을 우선한다. 중립적인 주인공, 전형적인 나쁜 놈, 이기적인 인물, 조력자, 사회적 약자와 희생양 등 특정 집단의 대표성을 띠기 때문에 개성(혹은 복잡한 변화의 여지)은 옅어지고 스테레오타입으로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지우학>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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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은 링크 가서! 글 엄청 좋고 대부분 다 공감되는 것들이라 들고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