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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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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과 이야기 후 덕임은 산에게 간다.
- 진맥은 매일 받고 있겠지
- 예.
- 탕약은 잘 복용하고 있느냐
- 예, 신첩은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문후 여쭈로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 신첩이 잘못하였습니다.
자식을 잃은 사람은 저만이 아니지요.
실은 전하께서도 아파하시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았지요.
그럼에도 전하께 모질게 굴었습니다.
임금이시니 괜찮을 거라 여겼지요.
임금이라도 괜찮지 않으셨겠지요.
임금이시기에 더 괜찮지 않으셨겠지요.
덕임은 점점 왕 이산을 깊이 이해한다.
- 난... 괜찮다. 견딜 수 있어. 견디어야만 하고.
따뜻한 덕임의 말에 잠시 약해지지만 산은 왕이다.
왕은 견디어야만 한다.
- 너는 정말 괜찮은 것이냐?
어린 세자를 잃자마자 가장 친했던 동무마저 잃었지.
날 원망하진 않느냐.
네 동무를 구할 힘이 있으면서도, 구해주지 않았어.
그런 날 미워하지 않아?
산은 덕임이 자기를 원망하지 않는지 거듭 물어본다.
어찌할 수 없이 왕인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까
항상 덕임의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한 눈을 살핀다.
- 처음부터 그런 분이신 걸 알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이 그런 분이시란 걸.
평범한 사내의 삶은 상상조차 못해본
오직 제왕이 되기 위해서만 살아온 산을 안다.
덕임은 이제 완전히 알고있다.
- 전하,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피겠지요?
- 별당의 꽃나무를 말하는 것이냐? 그 나무는..
- 다시 필 것이옵니다. 언젠가, 반드시.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다시 괜찮아 지겠지요.
전하와 함께 꽃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전하께서 아직 동궁이시고 제가 궁녀였던 시절처럼.
모든 게 다 괜찮았던.. 그 여름날처럼..
덕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별당의 꽃나무에 꽃을 가득 피워놓고
임금의 삶을 모두 마친 산이 필부로 자신에게 올때까지
기다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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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임의 마지막 인사
산은 언제부터 머리 맡에 시경을 두었을까
마지막까지 그의 머리 맡에는 시경이 놓아져 있었다.
북풍이 휘몰아치는 어느 날
덕임의 손을 붙잡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왕으로서 감히 직접 그리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그는 계속해서
사랑하는 덕임과 떠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수레에 오르리'
항상 산이 직접 말했듯
산은 시경의 이 구절에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책갈피를 껴두고 계속 곁에 두었을까
쓰러지기 직전
소중한 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산의 뺨을 쓰담으며
덕임은 괜찮다고
전하께서는 강인하시다고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덕임이 산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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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를 잃어가는 덕임이 사흘간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숨을 겨우 붙어내고 있는 순간에도
산은 아니, 왕은 일을 하러 가야한다.
빈이 잘못되면 바로 내게 알리라는 것이 최선이다.
덕임이 사흘만에 드디어 눈을 떴다.
그리고 앞에 산은 없고 서상궁이 있다.
궁녀시절때처럼 마마님이라고 부르며
마마님이 마음이 굳건하신 분이라 참 좋았다고
마음 약했던 낳아주신 어머님을 이야기하며
굳건하신 마마님은 괜찮으실 거라 한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덕임의 바람 가득한 인사였다.
산에게도 마마님에게도 했고 동무들에게도 꼭 했어야할
덕임에게 이젠 시간이 너무 없다.
가장 먼저 산에게 인사를 했다. 마마님에게도 했다.
동무들에게도 어서 인사를 해야하는데.. 산이 왔다.
덕임이 정말 떠날 것 같다. 산은 너무 불안하다.
산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모두 제 탓인 것 같다.
덕임이 자신을 원망할 것 같다.
마지막 순간에 덕임은 진심을 말한다.
원망하지 않다고 미워하지 않다고
정녕 저를 아꼈다면, 다음 생에는 부디 모르는 척 옷깃만 스쳐 지나가달라고
여전히 덕임의 마음을 모르겠는 산은 너무나도 매정하게 들린다.
그리고 또 물어본다. 조금도 나를 연모하지 않았냐고
덕임은 직접 말하지 않았을뿐 이미 갖갖이 말과 행동과 선택으로 표현했다.
산은 아직도 모르는가
덕임은 산을 선택했다.
다만 산이 왕이었고 덕임은 궁녀였다.
산이 먼저 덕임을 원했고
덕임 또한 산을 원했으나 왕을 밀어내야했다.
이번 생에서는 결국 산을 전부 얻지 못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덕임은 다음 생에도 인연이 되어 달라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덕임은 이번 생에서 산의 옆을 선택했다.
그것이 내키지 않았다면 덕임은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일지라도 덕임은 산의 전부를 원했으나 결국 전부를 갖지 못했다.
덕임이 원하는 대로, 다음 생에서,
산과 인연이 된다면 그때는 덕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원하는 것을 전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산은 임금이 가장 잘 어울리지 않나
다음 생에도 그러지 못한다면 덕임은 너무 괴롭지 않을까
그러니 당신은 절 몰라야 그 괴로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다음 생에서도 임금이시고 저를 원한다면
덕임은 또 괴로운 선택을 해야할 수도 있다.
이번 생에 전부를 받지 못한 덕임은 끝내 연모한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당신을 선택했다 말한다.
마지막 순간 덕임은 진심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내내 작은 허세를 부리던 덕임에게 가장 적극적인 표현은 산의 뺨을 쓰담는 것이었다.
정말 마지막,
언제나처럼 산의 눈물을 닦으려 하는 덕임의 손이 속절없이 떨어진다.
덕임이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는 말을 들은 동무라면
마지막 말이 진정 사랑고백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 같다.
아마 산은 선택하는 삶에 관한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래서 산은 덕임의 선택이라는 것이 여전히 내 탓이고 그것이 덕임을 떠나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하다 한다.
왕은 미안하다 할 수 없다고 덕임에게 말했었는데
떠나가버린 덕임에게 산은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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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개인적인 해석이고 새벽감성에 혼자 메모장에 썼던 내용들이야.
처음엔 궁녀는 왕을 사랑하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끝내 덕임은 왕을 받아들이고 산을 기다렸구나 그렇게라도 산의 전부를 얻었구나 생각하게 됐어.
사무치게도 죽음 뒤에서야 이지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