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처음 느껴보는 갈증이었다.
애비에게 버려진 채 쉰 주먹밥 하나를 손에 쥐고 살았던 어린 시절에도
결코 느껴본 적 없었던 끔찍한 허기.
그 허기의 근원이 육신인지, 혼인지, 구분도 할 수 없는 와중
세상 어디에서도 맛본 적 없는 달콤한 향이 났다.
두 눈 가득 담겨오는 마치 지는 해같은 타는 붉은 색.
내 자식의 몸에 담겨 있는, 아직은 온기를 담은 그것.
아아, 나는 그것을 원한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그것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원하면 원할수록,
이 온 몸과 마음을 채워오는 고통, 수치심, 죄악감.
수많은 검에 찔린 것보다도 더욱 아프게 나를 찔러오는 슬픔.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끔찍한 갈증.
제 자식의 시신을 품에 안고도,
그 붉은 피의 향이 향기롭고, 독처럼 중독이 될 듯 하니
그 타오르는 갈증만이 온 몸을 채워오는, 끔찍한 저주.
아아, 나는 이제 괴물이 된 것인가.
결국, 태어날 적부터 나를 따라다녔던 그 저주.
나는 그 저주에 잡히고 말았구나.
새까맣고 날카롭게 변한 괴물의 손.
이것은 내 손이다.
나는 단극을 검으로 찌른 그 장수의 목을 조른다.
죽이자.
죽이자.
그리고, 그 피를..
-안된다.
단극의 목소리.
싫다. 나는 지금 이 자를 죽이고 싶다.
단극에게 검을 꽂고, 우리를 배신한 이 자를 죽이고,
그리고 그 피를...
-진정한 괴물이 되고 싶으냐.
쿵.
단호한 단극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려온다.
고개를 들어, 단극을 바라본다.
손.
그 어릴 적처럼,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제는 나와 비슷한, 더이상 커다랗지 않은 주름진 손.
그가 나에게, 말한다.
-나와 함께, 가자.
아아.
당신은 아직도 나를, 사람으로 보십니까.
나를 그 날 거두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은 감히, 부하 따위에게 배신을 당하지도,
전장이 아닌 이 곳에서 검에 찔릴 일도 없이
어리석은 귀물의 옆에서,
당신의 마지막을 기다리지 않았을텐데.
-사람의 피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나무 껍질이 손으로 박혀온다.
그 아픔으로, 미칠듯이 날뛰는 갈증을 억누른다.
이를 악물고, 억누른다.
-그러겠습니다.
-백년이 지나도, 수백년이 흘러도, 넌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당장이라도 욕망으로 끊어질 거 같은 정신을 다잡는다.
당신이 내게 명하셨다.
당신이 내게, 그러라 하셨다.
나는 무조건, 당신의 말은 지켜야 한다.
나는 당신의 충실한 부하이기에.
그리고 나는 당신의,
아들이기에.
그러겠습니다.
아버지.
결코, 나는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겠다.
비록 괴물의 육신을 얻었다 하나,
내 비루한 혼마저 빼앗겼다 하나,
내 결단코, 괴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무 등걸에 기대, 이제야 그 고단한 싸움을 마치고 잠이 든 내 아버지.
내 아내. 나의 아이.
나는 돌로 그들의 영원한 잠자리를 쌓는다.
평안하시오. 부디.
나의 가족을 뺏고, 나의 혼을 빼앗아
다시 인간으로 돌아간 그 여인.
나의 업보는, 그 여인을 따를 것이다.
수많은 귀물들의 원한이, 나의 혼을 따라, 그 여인을 쫓겠지.
이제는 귀물 불가살이 아닌, 한낱 사람.
그 삶의 곳곳에 불행이 따라다닐 것이다.
수없이 죽임당하고, 다시 비참한 삶을 시작하겠지.
그러니.
-그 귀물들보다 내가 먼저, 너를 찾아내겠다.
2021년.
나의 이름은, 민상운.
지금 내 앞에 있는 곳은 이제 곧 무너질 아파트.
나는 15년 전, 나의 집이었던 그 곳을 찾아왔다.
엄마와 언니를 잃었던 그 곳으로.
-불가살을 죽일 방법을 찾아.
언니는 말했다.
나와 똑같은 얼굴.
하지만 언제나 알 수 없었던 너.
가족인 우리와 늘 떨어져 있으려 했던 너.
하지만 결국은 목숨을 걸고, 날 구해준 내 언니.
-꼭 살아남아.
언니, 나 살아남았어.
그런데 말야.
언니의 마지막 말이 기억나지 않아.
미안해. 미안해 언니.
그 때 흘리지 못한 눈물이, 슬픔이, 이제서야 흘러내려.
덜컥.
그 때,
그 날처럼, 누군가가 잠긴 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
겨울도 아닌데, 온 몸에 소름이 끼쳐온다.
북소리처럼 둥둥둥,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한다.
저 문 밖에, 무엇인가가 있다.
내가 평생을 걸고 도망쳐온, 무엇인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