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 아니옵니다, 산이옵니다"
산이는 늘 바라왔는지 모르겠다
제 아비인 사도 세자를 잃고 나선 줄곧 자신에게 니 애비는 죽은 사도 세자가 아니다 너는 그러면 역적의 자식이 되어 보위에 오를 수도 없다며 강제로 잊혀지게끔 함구령을 내렸던 왕이시었거늘
그럼 저를 따로 보아주시던가
영조는 말끝마다 죽은 사도 세자를 닮으면 아니된다며 혹여라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바에 어긋난 행동을 할려치면 북풍보다 매섭게 절 다그치곤 하려니
저는 그를 아비라 부를 수도 없고
저는 또한 아비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도 없어
산이는 계속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는 그저 산이옵니다
해서,
'너는 나를 죽이려 태어났구나' 끔찍한 원수를 보듯 했던 사도 세자를 사랑하였으나 그 마음 두려워 감추었고
'지 애비와 똑같은 놈, 똑같은 놈이야' 먼저 떠난 아들의 자식임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시면서 또 저에게서 그의 닮은 구석만 찾아내 날선 눈빛으로 나무라던 영조를 사랑했으나 원망하였는지도
그리하였는데,
어느덧 매병에 걸려 차츰차츰 왕의 모습을 잃어가던 제 할애비가 말하길 너를 위한 너만을 지킬 약조를 하였다 한다
자신의 피와 목숨으로 맞바꿀 터이니 바라건데 제 아들만은 살려달라 아버지께 간청하였고 할애비는 왕으로서 그리하마 승낙하였노라고...
누구와의 약조냐 물으니 용음이 들리기를,
"네 애비, 나의 아들, 사도 세자"
세손은 저 한마디에 적어도 가슴 한켠에 돌처럼 눌러져 있던 한줌 한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싶다
임금이 저를 살리고자 한다며 제 아비의 목숨을 앗은 건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아비가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셨구나
여전히 내 할바마마가 대의란 말로 나의 아버지를 죽이셨던 것도
나의 아버지는 제 속이 많이 아팠다는 걸로 나를 매몰차게 대하셨던 것도 변할 수는 없겠지만
알고보니 나는 두 분의 짙은 사랑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구나
저는 이제 더이상 주저하지 않고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 말할 수 있고
저는 이제는 더는 원망섞인 마음 한점 없이 나의 할아버지 영조를 나의 드높고도 너른 푸른 하늘이셨도다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산아, 이제 네가 새로운 조선의 왕이다>
왕으로서 죽었노라 물러난 이,
왕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이,
그들의 손자였고 아들이었던 세손은
가족들의 약조를 가슴에 품고 산이란 이름으로 왕이 되었다
어도를 걸어가기 직전 비로소
산이는 아비를, 할머니와 할애비를 되찾았다.
휘영청 달 밝은 밤,
앞으로 너희의 대낮의 시간은 물론 어스름한 달빛의 시간조차도 편히 쉴 수 있도록 약조하마,
또한 그렇게 이 나라 온 백성의 어버이가 되려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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