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땐 천하를 호령하였고 모두가 두려워한 만인지상이었으나
나이가 들고 점차 치매 노인이 되어
기억력을 잃고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말년의 왕
그리고 모함을 당해
그런 노망나고 신경질적인 왕에게
목숨이 달린 판결을 내맡기게 된 주인공 궁녀
시덥잖은 일 앞에 왕은 두통과 짜증 속에서 어지러워하며
부당한 판결로 주인공의 목숨을 빼앗아 치우려 하나
남자 주인공인 세손이 보위를 위해 몸을 사려야 할 시기에
목숨을 걸고 왕에게 군주의 자격을 논하며 막아서서
최후의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어냄
주인공은 벼랑 끝에서 간신히 얻어낸 기회 속에서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펼쳐내어
왕 앞에 독대한 전기수가 되어 생애 마지막 각오로
영빈의 죽음이 있던 날에 지나간 일들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그림을 그리듯이 장소와 풍경들 하나하나 차분하게 붓글씨 써내려가듯 들려줌
평소 실제 눈앞에 있는 대상조차 온전히 분간하지 못하고
현실과 환상을 헤메던 왕이었으나
어지럽게 뒤섞인 탁한 의식 속에서도
눈을 감고 이야기를 들으며 그날 그때의 공간이
머릿속에 점차 선연히 되살아나 떠다니고 맴돌기 시작
그 안에서 자신이 그날 슬픔을 한탄하며 내뱉었던 혼잣말을
토씨 하나 틀림없이 궁녀의 입을 통해 다시금 들으며
그때의 가슴 아픈 마음과 똑같은 감각을 그대로 또 한 번 느끼게 됨
이 얼음이 차다 한들 내 마음보다 찰까...
어지러움과 슬픔과 추억과 회한이 뒤섞인 혼미한 의식 속에서
왕은 용의 눈물을 흘림
눈을 감고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던 왕은 조용히 눈을 뜬다
결국 주인공이 진심을 담아 간절히 들려준 이야기에 당시의 기억을 되찾고
눈이 뜨인 노왕은 잠시간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주인공의 죄 없는 사실과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고 치하함
주인공은 풍전등화의 처지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8화 中 여범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