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의 캐릭터 세상 13 - <멜랑꼴리아> 지윤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매우 강력하다. 편법과 탈법은 물론 불법까지 불사하며 견고하게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해 나가는 세력에게 일말의 양심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 가당치도 않다. 그들이 강력하게 자기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기득권이 되고 싶은 대중의 욕망이 그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대 담론으로 부상한 ‘공정’이 ‘내로남불’이라는 이상한 신조어와 결합하여 회자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만의 세계’로 편입될 수만 있다면, 기회와 과정이 어떠하든 무슨 상관이랴. 사정이 이러하니 ‘기득권과의 전쟁’이 발생한다 해도 그들이 패배할 리는 없어 보인다.
교육은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기득권 세력으로 편입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 물론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로 인식되었던 때도 있었다 . 이런저런 명분의 자율형 사립고 등이 신흥 명문사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고교 평준화 정책의 근간이 흔들렸고 ,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
기득권 세력은 자녀들의 ‘학종 ’, 그러니까 학생부 종합 전형에 필요한 논문이나 실험보고서 작성을 위해 품앗이처럼 인맥을 공유한다 . 고등학생이 편법으로 대학 실험실을 이용하고 , 대학원생들의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 불법으로 시험 문제를 빼돌려서라도 전교 상위권 석차를 유지한다 . 서울 강남권에 파다한 명문대 입시 관련 부정행위 소문들이 사실로 드러나도 그저 잠시 시끄러울 뿐 ,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의 무능력을 탓하는 한숨 소리만 높아질 뿐이다 .
그런데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교육 현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교육 철학을 강조하는 교사가 있다. ‘수학예술영재학교’로의 전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편법과 탈법, 불법이 난무하는 ‘아성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멜랑꼴리아>의 수학교사 지윤수(임수정)다. 수학 성적이 명문대 입시를 좌지우지하는 교육 현실에서 각종 수학경시대회 최다 입상자 배출이라는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되었지만, 그는 전교 1등이 아니라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전교 꼴찌 백승유(이도현)를 주목한다. 명문대 입시 도구가 아니라, 수식의 아름다움과 증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학문으로서의 수학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윤수는 백승유와 함께 늦은 밤부터 동이 틀 새벽 무렵까지 칠판 가득 수식을 써내려가면서 교사로서의 존재감을 만끽하며 설렌다. 지윤수는 선배가 자살한 이후 공황장애에 시달렸던 백승유가 수학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다만, 수학을 매개로 선생님을 사랑하는 백승유와 달리 지윤수는 교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한다. 수학경시대회를 둘러싼 교내 비리와 맞서 이의를 제기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의 딸을 위해 시험 문제를 빼돌리던 교무부장 노정아(진경)에게 입시와 상관없이 수학을 가르치는 지윤수는 눈엣가시다. 지윤수에게 수학은 입시 도구가 아니라 “무한하게 꿈을 꿀 수 있고 자유롭게 생각의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예술과 다름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설픈 공정함에 대해 가르치지 마세요. 어차피 공정하지도 않은 사회에서 그런 가르침은 아이들을 세상 탓하는 루저로 만들 뿐이에요”라는 노정아의 왜곡된 교육관이나, “내 자식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고 싶은 그런 맘 안 들까?”라는 약혼자이자 교육부 기획조정실 행정사무관 류성재(최대훈)의 이기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
지윤수는 명문대 합격을 ‘ 절대선 ’ 으로 여기는 일그러진 교육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강조한다 . “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내 자식 사랑하는 거랑 남의 집 자식 피눈물 흘리게 하면서 내 아이 앞세우는 건 달라 !” 그러나 차별화된 교육을 통해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세력은 지윤수의 이상적인 교육 철학은 물론 인생까지 파괴한다 . 수학을 매개로 백승유와 정서적으로 교감했던 지윤수가 제자와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애정 행각을 벌인 교사로 낙인찍혀 해임되고 결혼마저 무산된 것이다 . 이렇게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득권 세력의 폭력에 인생이 망가진 채 세상에서 사라진다 .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멜랑꼴리아>는 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드라마이다. 지윤수는 교사 시절의 이상과 낭만에서 벗어나 “아무나 못 다니는 학원, 돈다발을 들고 가도 못 만나는 강사”로 돌아온다. 무방비 상태로 해임되었던 과거와 달리, 비영리 장학재단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입학사정관 매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창구임을 간파할 정도로 예리해진 그는 교육계의 기득권 세력과 맞서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다. 가장 이상적인 교사였던 지윤수가 입시 명문 수학클리닉이라는 사교육 시장의 강사가 되어 공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특혜와 비리를 폭로하는 상황이 실제 현실에서도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암튼 속은 시원하다.
어쩌면 지윤수는 편법과 탈법 그리고 불법이 일상이 된 교육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교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입시와 교육 비리가 현실과 동떨어진 사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서울 강남권에서 암암리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학교생활기록부 조작과 시험 문제 유출 등이 사실로 밝혀진 것만 해도 벌써 여러 건이기 때문이다. 국회와 교육부의 인맥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던 노정아가 백승유를 이용하기 위해 아성수학예술영재학교 수학교사로 특채하는 것처럼,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승패와 상관없이 교육 기득권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지윤수를 응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겠지만!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22902.html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매우 강력하다. 편법과 탈법은 물론 불법까지 불사하며 견고하게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해 나가는 세력에게 일말의 양심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 가당치도 않다. 그들이 강력하게 자기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기득권이 되고 싶은 대중의 욕망이 그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대 담론으로 부상한 ‘공정’이 ‘내로남불’이라는 이상한 신조어와 결합하여 회자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만의 세계’로 편입될 수만 있다면, 기회와 과정이 어떠하든 무슨 상관이랴. 사정이 이러하니 ‘기득권과의 전쟁’이 발생한다 해도 그들이 패배할 리는 없어 보인다.
교육은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기득권 세력으로 편입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 물론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로 인식되었던 때도 있었다 . 이런저런 명분의 자율형 사립고 등이 신흥 명문사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고교 평준화 정책의 근간이 흔들렸고 ,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
기득권 세력은 자녀들의 ‘학종 ’, 그러니까 학생부 종합 전형에 필요한 논문이나 실험보고서 작성을 위해 품앗이처럼 인맥을 공유한다 . 고등학생이 편법으로 대학 실험실을 이용하고 , 대학원생들의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 불법으로 시험 문제를 빼돌려서라도 전교 상위권 석차를 유지한다 . 서울 강남권에 파다한 명문대 입시 관련 부정행위 소문들이 사실로 드러나도 그저 잠시 시끄러울 뿐 ,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의 무능력을 탓하는 한숨 소리만 높아질 뿐이다 .
그런데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교육 현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교육 철학을 강조하는 교사가 있다. ‘수학예술영재학교’로의 전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편법과 탈법, 불법이 난무하는 ‘아성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멜랑꼴리아>의 수학교사 지윤수(임수정)다. 수학 성적이 명문대 입시를 좌지우지하는 교육 현실에서 각종 수학경시대회 최다 입상자 배출이라는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되었지만, 그는 전교 1등이 아니라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전교 꼴찌 백승유(이도현)를 주목한다. 명문대 입시 도구가 아니라, 수식의 아름다움과 증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학문으로서의 수학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윤수는 백승유와 함께 늦은 밤부터 동이 틀 새벽 무렵까지 칠판 가득 수식을 써내려가면서 교사로서의 존재감을 만끽하며 설렌다. 지윤수는 선배가 자살한 이후 공황장애에 시달렸던 백승유가 수학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다만, 수학을 매개로 선생님을 사랑하는 백승유와 달리 지윤수는 교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한다. 수학경시대회를 둘러싼 교내 비리와 맞서 이의를 제기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의 딸을 위해 시험 문제를 빼돌리던 교무부장 노정아(진경)에게 입시와 상관없이 수학을 가르치는 지윤수는 눈엣가시다. 지윤수에게 수학은 입시 도구가 아니라 “무한하게 꿈을 꿀 수 있고 자유롭게 생각의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예술과 다름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설픈 공정함에 대해 가르치지 마세요. 어차피 공정하지도 않은 사회에서 그런 가르침은 아이들을 세상 탓하는 루저로 만들 뿐이에요”라는 노정아의 왜곡된 교육관이나, “내 자식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고 싶은 그런 맘 안 들까?”라는 약혼자이자 교육부 기획조정실 행정사무관 류성재(최대훈)의 이기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
지윤수는 명문대 합격을 ‘ 절대선 ’ 으로 여기는 일그러진 교육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강조한다 . “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내 자식 사랑하는 거랑 남의 집 자식 피눈물 흘리게 하면서 내 아이 앞세우는 건 달라 !” 그러나 차별화된 교육을 통해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세력은 지윤수의 이상적인 교육 철학은 물론 인생까지 파괴한다 . 수학을 매개로 백승유와 정서적으로 교감했던 지윤수가 제자와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애정 행각을 벌인 교사로 낙인찍혀 해임되고 결혼마저 무산된 것이다 . 이렇게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득권 세력의 폭력에 인생이 망가진 채 세상에서 사라진다 .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멜랑꼴리아>는 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드라마이다. 지윤수는 교사 시절의 이상과 낭만에서 벗어나 “아무나 못 다니는 학원, 돈다발을 들고 가도 못 만나는 강사”로 돌아온다. 무방비 상태로 해임되었던 과거와 달리, 비영리 장학재단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입학사정관 매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창구임을 간파할 정도로 예리해진 그는 교육계의 기득권 세력과 맞서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다. 가장 이상적인 교사였던 지윤수가 입시 명문 수학클리닉이라는 사교육 시장의 강사가 되어 공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특혜와 비리를 폭로하는 상황이 실제 현실에서도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암튼 속은 시원하다.
어쩌면 지윤수는 편법과 탈법 그리고 불법이 일상이 된 교육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교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입시와 교육 비리가 현실과 동떨어진 사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서울 강남권에서 암암리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학교생활기록부 조작과 시험 문제 유출 등이 사실로 밝혀진 것만 해도 벌써 여러 건이기 때문이다. 국회와 교육부의 인맥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던 노정아가 백승유를 이용하기 위해 아성수학예술영재학교 수학교사로 특채하는 것처럼,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승패와 상관없이 교육 기득권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지윤수를 응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겠지만!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229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