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제자이자
나를 좋아하는 아이였고
나(여자)를 좋아하는 것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였는데.
그 날 내가 술 마시러 안 갔으면 안 죽지 않았을까, 죽더라도 죽을 때 내가 옆에 있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집에 오라고만 하지 말고 집에 데려갈걸.
그 달달한 술 혼자 마시게 하지 않고 같이 한 잔 마셔줄걸.
그 아이가 말하는 사랑을 금지된 것, 이라 말하고
나를 좋아한 사람들은 결혼했다고 말하지 말걸.
이미 자신에 대해 수백수천번 생각하고 본인을 상처냈을 아이에게
한 번 더 들여다 보라고 하지 말걸.
그 아이에게 앞으로 시간이 많다고 했던 말조차
미치도록 후회됐겠지.
애초에 자유라곤 없었던 삶을 살았던 주제에
교단에 서서 허세 가득하게 한 헛소리 한 마디가
내 학생에게는 깊게 남을 줄 몰랐던 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겠지.
그리고 내가 가르친 자유를 찾아 영영 떠나버려서
나는 내가 가르쳐왔던 모든 것들과 가르칠 모든 것들을 다 부정하고 싶었겠지.
내가 본 그 아이의 마지막 얼굴이 울던 모습인데
나 때문에 울던 모습인데
그때 함께 울어주지 못해서
나는 그 아이가 떠난 뒤에 혼자 몇날 며칠을 울었겠지.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까진 아니어도 남들보단 두려운 게 적었었는데
그 아이가 떠난 뒤엔 모든 것이 두려워져서
세상과 연을 끊어버릴 수밖에 없었겠지.
너에게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다고 말하지 말걸.
딱 한 번만 내 손을 잡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네가 딱 하루만 더 살기를 원한다고 말할걸.
그 아이에게 했던 모든 말과 그 아이에게 하지 못했던 모든 말이 지구 자신을 찔러버려서
나는 세진이가 떠난 뒤 지구의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