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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철이는 오늘 윤경이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줬어
평소에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남편도 아니고
만삭인 아내가 운동화끈 묶어달라 하는 걸 애 취급하고
결국 울어버린 아내의 감정을 호르몬 탓 하는 바보 철부지지만
그래서 늦어버렸지만
결국 바보 같이 또 두리안을 사들고 빗속을 뚫고 달려와서
두 사람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했어
늦을 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옆에서
욕도 먹고 머리도 뜯기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들의 아이,
자신들이 만든 새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 했지
출산의 고통을 머리 뜯기는 고통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통을 함께 나눴다고 해도 될까
그리고 분명 금철이는 윤경이가 아파하는 걸 보며
본인도 많이 아팠을 거야
윤경이는 금철이 머리라도 뜯을 수 있어서,
용기와 힘을 더 얻을 수 있었을 테고
아무리 뒤지게 패고 싶고 미운 남편이라도
윤경이가 출산을 앞두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보고싶었던 건 남편이었고
개새끼 잣 같은 새끼 욕을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드디어 눈 앞에 나타난 남편 얼굴을 보면
안도하며 울게 되는 게 사람이잖아
금철이가 두리안을 껴안고 빗속을 달려오는 동안 가장 두려웠던 건
아내와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불안
그리고 일이 어떻게 되든 자신이 그 순간에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었을 것 같아
그게 사랑이지 않을까
그 순간엔 내가 평소에 얼마나 좋은 남편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지
지금을 함께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이 중요했을 거야
윤경이와 금철이 모두에게
그래서 혜진이는
자기한테 홍두식이라는 멋진 남자 친구가 있어도
그 두 사람이 부러웠을 거야
중요한 순간에 함께하는 게 당연하고,
그래서 함께 했고
앞으로도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인생의 불꽃이 터지는 순간들을 같이 맞이할 사람들
두식이는 혜진이가 하고 싶어하는 건 다 해줘
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다가도
버킷리스트에 있는 일들이라고 하면
입이 댓발 나온 채로라도 다 들어주지
두식이는 혜진이를 행복하게, 웃게 해주는 일은 다 해줄 거야
배고플까봐 예쁜 고명 올린 잔칫국수도 만들어주고
언젠가 혜진이가 바깥에서 상처를 받고 돌아와 울면서 안기면
말 없이 안아주며 토닥여주고, 넋두리도 들어주겠지
그렇게 두식이는
혜진이의 취향, 마음, 사랑들을 담는 보석함이 되어줄 거야
하지만 그걸론 충분하지 않잖아
혜진이가 정말 바라고, 두식이와 함께 만들고 싶은 건
버킷리스트를 채워 나가고 퀘스트를 깬 것처럼 뿌듯해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일들을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자연스레, 시간이 흐를수록 익어가는 담금주 같은 마음,
언젠가 누군가의 삶에 중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그 일들을 '네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여기고 함께하는 마음
그 과정에서 망가지고 못난 모습을 보일지언정 그걸 두려워하기보다는,
함께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니까
두식이에겐 자신의 과거와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는 일이
그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겠지
자신에게조차 솔직히 드러낸 적이 없는 모습일 테고
그래서 스스로의 감옥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못나게 상한 모습인지조차 몰라서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아
하지만 두식이가 이걸 꼭 알았으면 좋겠어
자신이 혜진이의 실수, 술주정,
자식 일 앞에선 늘 제새끼 함함하는 고슴도치가 되어 남의 자식에게 상처주는 부모
그리고 혜진이의 인생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처들까지
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해해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준 것처럼
혜진이도 자신에게 그럴 거라는 것
북극에 사는 북극곰이
지구 반대편의 남극까지 달려가 펭귄에게 손을 내미게 만드는 건
펭귄이 수영하는 모습이 멋져서 따위의 이유가 아닐 거야
맨날 바다사자 잡아먹다가 먹은 크릴새우가 맛있어서도 아니겠지
낯선 땅에 도착한 자신에게
크릴새우를 건네는 펭귄을 사랑해서지
펭귄과 함께하기 위해 사는 곳을 북극에서 남극으로 바꿔버린 북극곰의 용기는
추위에 떠는 펭귄의 약한 모습을 보고 실망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펭귄을 자신의 큰 몸집과 따뜻한 털로 안아주는 마음이라는 걸
지금 홀로 떨고 있는 두식이가 꼭 기억하고
용기를 내주면 좋겠어
어서 와서 나를 안아주라고 큰 소리로 혜진이를 부르면 좋겠어
그럼 혜진이는 두리안 대신 크고 따뜻한 마음을 안고 달려올 거야
홍반장이 얼마나 망가져있을지를 두려워하면서가 아니라
내가 가기 전에 홍반장이 얼어 죽으면 어떡하나, 내가 홍반장에게 찾아온 가장 큰 추위를 함께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를 두려워하면서
그 길에 눈보라가 치고 바람이 거세게 불면 주저하고 멈칫하는 게 아니라
그 추위 속에서 떨고 있을 펭귄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안아주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겠지
그러니 두식이가
혼자 우는 건 조금만 하고
혜진이와 함께 울면 좋겠다
혜진이도 많이 울겠지
하지만 그건 혜진이가 두식이 때문에 불행하거나
두식이에게 실망해서가 아니라
두식이 안에 꽉 찬 고통을 함께 나누느라 흘리는 눈물일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이 같이 많이 울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울고 싶을 때 혼자가 아니고 싶어지고
서로의 울고 싶은 순간을 함께 못할까봐 두려워 뛰게 되고
그렇게 계속 더 애써서 삶의 불꽃들을 함께 태우겠지
그게 사랑이니까
후기(리뷰) 갯마을 못난 모습으로라도 함께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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