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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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얘, 손바닥에 올려는 봤어요?
아니?
-산책은.. 시켜줘 봤어요?
그럴리가.
-제가, 고슴도치에 대해 공부해 봤는데요. 고슴도치랑도 친해질 수 있대요. 진짜로 친해지면, 만질 수 있게 뾰족한 가시를 다 눕혀 준대요.
야, 밥 주고 똥 치우는 것만으로 충분히 귀찮아. 그리고 어차피 니네가 곧 데려갈 텐데, 뭐.
-그래두, 여기 있는 동안은 친해지면 좋잖아요.
*
저어기, 저기 저 불빛 정체가 뭔줄 알어?
-알게 뭐야.
저게, 오징어 배다. 참 고단한 불빛인데. 멀리서 보면 꼭 바다에 알전구 켜놓은 것처럼 예뻐.
-
감리씬 오징어 내장 손질만 수십년을 했어. 근데 지겹지도 않은가, 오징어를 젤로 좋아해. 못 잡순지 한참 됐지만.
-혹시 동정심 유발할 작전이면 그만 두시지,
치료비는 내가 낼게. 대신 부탁이 있어.
-뭔데?
임플란트 비밀로 해줘. 그냥 다른 싼 치료법이라고, 둘러대달라고.
-그건 곤란해. 의사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야. 환자에게 정확한 치료 계획을 고지할 의무가 있어.
아, 그래, 그러면 금액이라도 다시 얘기해주라. 차액은 내가 낼테니까, 할머니한테는 치과가 할인해주는걸로 하기로 하고.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 본인이 안한다잖아.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주변을 챙기는 데 인생을 바치신 분이거든. 자기를 돌보고 스스로에게 베푸는 법을 모르셔.
-그렇다고 아픈걸 참아? 이기적인 발상이네.
이기적이라ㄴ.. 난 할머니처럼 이타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젊어서부터 자식들 위해 안해본 일이 없고, 지금도 부담주기 싫어서 저러시는 건데, 그걸 이해 못해?
-어, 이해 못해. 미련하고 답답해.
왜이렇게 삐딱하게 굴어?
-그쪽이야말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이렇게 까불어,
-부모가 진짜 자식을 위하는 일이 뭔지 알아? 아프지 말고 오래 사는거야.
-그깟 돈 몇 푼 물려주려고 아픈 걸 참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챙기는 거라고. 알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아, 괜찮아요.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렇지도 않기는.
*
할머니. 근데 나 할머니한테 섭섭해, 아들이 준 용돈 봉투는 넙죽넙죽 잘 받으면서 내 돈은 왜 안받어? 나는 뭐, 남이라 이거야?
-니, 물베락 또 맞고 싶나?
마지막 발언은 취소.
-니가 달아 준 저 종소리가 참~ 듣기 좋다니.
예, 좋은 소리 실컷 들으셔. 좋~은 경치도 많이 보고. 좋은 것도, 좀 잡숫고.
-
할머니, 누가 그러는데 부모가 진짜 자식을 위하는 일은 아프지 않는 거래.
*
저녁 잘 먹었습니다.
-아휴, 내야말로 서울도 델다주고. 고맙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는데. 밥부터 얻어먹었네요.
-응, 무슨 일을 하든 밥부터 먹어야제? 그보다 더 중한 일이 어데 있다고.
그러니까요, 밥 먹는 게 제일 중한데. 저한테 이를 뽑으라 그러시면 어떡해요.
-
이 아픈 게, 참 그래요. 눈에 잘 안 보이니까 자기 자신 아니면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거든요. 자식들도 잘 모르고.
-
치과 다시 오세요. 돈을 다 안 받을 수는 없고 재료값만 받을게요. 대신 비밀 지키셔야 돼요, 절대 공진에 소문나면 안 돼요. 저 이렇게 일하다가는.. 진짜 치과 문 닫아야 된단 말이에요.
-아, 그래믄서 왜 내한테 이래 해 주나?
오징어 제일 좋아하신다면서요?
-아휴...
저희 엄마는 순대를 제일 좋아했어요. 그냥, 그걸 드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게 다에요.
*
아유, 어떻게 그렇게 치과에 갈 생각을 다 했어, 이쁘게에~ 고집두 센 양반이~
-응, 치과 선상이 엊저녁에 우리 집에 다녀갔싸.
치과가 집으로?
-싸게 해 준다고. 저, 괜히 생고생하지 말고 치과로 오라데. 갸가 영깽인 줄만 알았더니 아이더라. 겉으로만 막 쌩, 하지? 속은 막 그냥 물러 터졌싸. 아, 사는 동안에, 애가 마이 말랐을 끼야.
*
닮았다, 둘이. 이 고슴도치 꼭 치과 같애. 둘 다 뾰족뾰족 가시 돋친 게. 얼굴도 좀 닮았나,
-아, 짜증나 진짜.
미안해.
-뭐야, 바로 사과를 해? 어울리지도 않게.
그동안 내가 너에 대해 잘 모르면서, 너무 심하게 말했어. 나도 모르게 함부로 판단했나 봐. 미안.
-하지마, 무섭게 왜 이래.
치과가 안다녀갔으면 아마 감리씨 치료 안 받았을 거야. 고맙다.
-아, 그야 뭐. 뭐, 그냥 두면 찝찝하니깐. 나 결과적으로 돈도 벌었구, 나 공진 바닥 돈 싹싹 긁어모아서 서울 갈거야. 그 생각 변함 없으니까 착각 하지마.
그래, 아주 부자 돼라.
4화
*
젠틀한 환자가 너무 좋아. 비용 상관없이 날 믿고 맡긴대.
-돈이 많은가 봐, 아까 보니까 죄다 명품이더라.
그래? 진짜, 저런 여유는.. 경제력에서 나오는 건가?
-그건 좀 슬프지 않아?
*
-생각해 보니 보라가 머리를 기른 적이 없구나,
/-네에~ 걔는 보통 딸같지가 않잖아요. 아휴, 다른 애들은 죄다 엘사 드레스 입고 렛잇고~ 부르는데 저 혼자만, 태권도복에 개다리춤. 하,
/-두고 봐, 그런 애들이 크게 된다.
*
벌써 취한 거야? 어느 정도 마시는 줄 알았더니.
-안취했어. 그냥, 기분이 뭉게뭉게한 느낌?
좀있으면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시겠네.
-절대, 함부로 취하지 않아.
왜?
-싫으니까. 풀어지는 거, 약해지는 거. 솔직해지는 거. 취할 거 같을 때는, 이렇게 손을 꼭. 쥐고 있으면 돼.
피곤하게 산다. 손도 작은 게.
-나 왜 이러지? 원래 안 이러는데.
가만보면 본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애.
-나 그 쪽이 좀 신기한가 봐. 서로 환경이 너무 다르잖아. 남극에 사는 펭귄이 북극곰을 만나면 이런 기분이려나,
거기는 둘 다 무지하게 춥거든,
-아, 그치. 음, 극과 극은 통하니까.
-그 날, 공진에 덜컥 왔던 날. 우리 엄마 생일이었어. 사람이 죽고 나면, 생일은 없어지고 기일만 남는 게 참 슬퍼. 엄마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게 좀. 흐릿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우리 엄마 살아 계셨으면 그 날 환갑이었다? 그럼 내가 진짜, 여행도 많이 가고 진짜 비싼 가방도 많이 사줬을 텐데. 아니다, 그냥. 밥 한 끼 같이 먹었어도 너무 좋았겠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 여행을 왔었어. 공진으로.
-나 진짜 미쳤나 봐. 아, 나 취했나 봐. 얼굴 너무 뜨거운 거 같애. 열이 좀 나는 거 같기도 하고. 나 얼굴 빨개?
뜨겁다, 너무.
1,2화 좋은 대사들 정리했던 슼글 많이 좋아해줘가지고 3,4화도 해봤어
울드 대사들 남겨두고 싶은 게 많아서 내 개인만족으로 해봤는데 공진단들한테도 만족스러웠으면 좋겠구...
어쩌다보니까 몇몇 짤은 우리 카테에서 가져오기도 했는데 혹시 문제있으면 말해줘!
다 끝내고보니까 5화가 세시간도 안남았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