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갯마을 차차차’(극본 신하은, 연출 유제원)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는 홍반장 홍두식(김선호)보다 치과의사 윤혜진(신민아)다. 바닷마을 공진의 온갖 일을 도맡고 돌보는 두식은, 정해진 시급대로만 보수를 받고 본인의 삶이 놓인 의식주 관련 요소엔 크나큰 욕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루하루 행복을 쌓아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현실적 욕망이나 야망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이에 반해 혜진은 어렵게 공부해 치과의사가 된 만큼, 받는 높은 보수를 가지고 주거공간과 패션 등에 관련하여 높은 수준의 소비를 누린다. 그렇다고 치과의사로서 실력이 없다거나 직업적 소명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가슴 한 켠에 품고 자신의 의술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가격에 제공하며 무엇보다 환자를 인격적으로 대할 줄 안다.
즉, 능력있고 성실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도의 도덕적 자각을 갖춘,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하여 능력만큼 많이 벌고 소비하고 누리는 게 당연한, 이른바 현대인의 올바른 표상으로 우리가 실제적으로 이입하고 싶어하고 이입하기 좋은 대상이다. 자본주의의 변두리에 서식하며 주어진 것에 자족하고 있는 그대로 행복할 줄 아는 두식이 우리에겐 오히려 유니콘과 같은 인물인 것이다.
이토록 다른 존재가 서로 맞닥뜨렸다니. 한쪽은 현실에 다른 한쪽은 이상에, 더 구체적으로 한쪽은 자본주의의 중심에 다른 한쪽은 자본주의의 변두리에 존재하여 사실상 마주하기 어려운 두 인물이 드라마적 설정에 의해 마주하게 된 게다. 이 지점에 ‘갯마을 차차차’의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는데, 우리가 좀 더 익숙한 혜진의 시선으로 ‘신박한’ 두식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뜯어 보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 김선호가 해당 역할을 맡았다는 게 꽤나 적절했다.
배우가 이미 쌓아놓은 청량한 이미지가 아니었다면 초반부터 그리 관심을 둘 만한 유형의 인물은 아닌 까닭이다. 이곳 저곳 온갖 참견 다하고 제 잇속 하나 챙기지 못하면서 훈수는 또 훈수대로 양껏 둔다. 뿐인가, 몇 번 두지 않은 상대에게 말을 툭 놓칠 않나, 오지랖이 태평양이라 도움을 건네는 건 좋지만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쳐, 혜진으로서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진도, 시청자들도 시선을 둘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김선호의 역량이니까.
덕분에 공진의 홍반장, 두식은 우리에게 혜진과 동일한 높이의 시선에서 던지는 염려 어린 의문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저렇게 살아도 생활이 유지가 될까, 그는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일까, 가지각색의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 보아서는 게으른 사람이 아닌데 성실하고 육체 건강한 청년이 외진 바닷마을에 삶의 터전을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때마침 등장하는 두식이 ‘월든’이란 책을 손에 든 장면, 그야말로 ‘갯마을 차차차’의 꿍꿍이에 단단히 걸려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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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단순하고 자연친화적인 삶 속에서 부의 창출이 아닌 부의 나눔을 선택하여, 홀로 잘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잘 사는 세계를 추구하는 삶, 어쩌면 자본주의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는 이러한 삶이 바로, ’갯마을 차차차’가 두식의 존재에 담뿍 담으려 노력하는 바이리라. 이제 남은 관건은, 아직은 바닷가 위의 구두처럼 어색하게 구는 혜진과 우리를 두식이 얼마나 설득하고 매혹할 수 있느냐다. 여기에 ‘갯마을 차차차’의 성패 여부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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