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얘긴 아닌데 그냥 매우매우 스압주의 될 것 같아서 후기카테에 남겨봄...
당연한 얘기지만 안본 덬들한테는 ㅅㅍ주의...
내연모 나덬이 진짜 좋아하는 로코라 얘기 나오면 열심히 ㅊㄹㅇㅊㄹㅇ 영업하는데 정작 나는 복습한 지가 좀 돼서, 봄에 봐야지 봐야지만 하고 있다가 후루룩 다시봤는데, 문득 아 내가 이 드라마 이래서 좋아했었지 하는 것들을 새삼 느껴서 그냥 감상글 겸 글로 써보고 싶어졌음.
사실 나덬은 누가 나한테 이 드라마 어떠냐고 물어보면 좀 취향 탈 수도 있다고 얘기하는 편임. 이유가, 정치 소재라기엔 너무 파워로코인데, 그렇다고 또 막상 정치적인 얘기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데 그게 큰 갈등이 없고 순한맛이란 말이야. 남여주에게 여/야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있지만 그게 어떤 심각한 정치적인 사안을 둘러싼 갈등ㅡ그리고 그로 인한 로맨스의 위기ㅡ으로 이어지지는 않거든. 근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점이야. 이 드라마 첫 장면부터 엔딩 장면까지 서로 너무너무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얘기를 하거든. 정치든 연애든 공통적으로. 결국 그게 가능하려면 서로 상식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상대에 대해 절실히 이해하고 그 마음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러려면 (어떤 양상이든)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단 말야. 이 드라마는 그걸 남녀의 사랑을 토대로 보여줬지만 그게 인류애 비슷한 거라도 말이야.
아마 현실에서 보수 집권여당 남의원과 (극)군소야당 당수 여의원이 연애를 한다 그러면 다들 정치적 연막이라 그럴 거란 말이지. 도대체 저렇게 가치관이 달라서야 서로 어떻게 사랑하겠느냐 의문을 가질 거라고. 둘이 데이트하다 졸라게 싸우겠다 그럴 거야. 물론 드라마적으로 이에 대한 완충장치를 어느 정도 깔고 시작하기는 해. 김수영은 집권여당 공천 받은 의원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정치 입문할 때 진보 야당 어딘가에 입당해도 딱히 이상해보이지는 않았을, 상당히 진보적인 사람이었고, 본인 스스로는 왔다갔다 파라고 주장하며 좌든 우든 모두까기 하는 인간이기도 함. 물론 김수영이란 인물의 그런 면면을 '상식' 과 '합리성' 으로 그려내기는 하는데, 남주를 통해 멋진 보수의 모델을 그려내려는 시도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게 럽라상으로는 일종의 완충장치이기도 했단 거야. 물론 김수영이랑 노민영도 졸라게 싸우긴 하지... 정치 얘기 하다가 의견 안 맞는다고 싸우는 건 기본이고 밥 먹다가도 싸우고 탕수육 부먹이냐 찍먹이냐로도 싸우고 티비채널도 안 맞고 뭐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맞는 게 하나도 없어 보임.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 정작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걸 확인했을 때이기도 하거든. 김수영은 룸사롱 골방에서 야합하는 구태적폐 정치인들에게 호기롭게 술잔을 집어던진 노민영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걸 보게 돼.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생각하고 정치 때려치울 각만 재고 있던 자신과 달리 온몸이 깨져나갈 걸 알면서도 끝내 부딪히고야 마는 계란을 본 기분이었을 거야. 자기가 부서져도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가 믿는 가치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그게 아무렇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은 본인도 두렵고 무섭고 흔들리고 울면서도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런 건 용기가 아니라 치기나 객기라고 생각했을 법한 김수영은 처음으로 그 열정을 믿어보고 싶어져. 자신과는 다른 사람인데, 동시에 그래서 이상형이기도 한, 그런 점에 속수무책으로 반하게 돼.
김수영을 만나기 전 노민영은 자신의 여성성을 완전히 거세하고 철저히 정치인이자 보리의 보호자로 살겠다는 강박 비슷한 게 있어보여. 싫든 좋든 미운정 든 남자 앞에서 술 먹고 무장해제되어 안 하던 얘기들도 꺼내놓고 배시시 웃고 애교섞인 모습 좀 보인 게 뭐 별거라고 여자로서의 노민영을 보였다고 생각해서 추태로 여기기도 하고, 옆에서 이모가 연애해라 결혼해라 염불을 외어도 본인은 여자로서의 삶은 딱히 제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금처럼만 살면 됐다고 씁쓸하게 웃어. 들이대는 김수영한테 설레고 흔들리면서도 절대로 넘어가선 안된다고 연애감정 자체를 차단하려 노력해. 근데 김수영은 이런 노민영에게 본인을 좀 돌아보라고 말해준단 말이야. 네 감정을 들여다보라고. 본인의 행복도 중요하다고, 내가 먼저 행복하지 않고서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하는 건 위선일 수 있다고.
노민영은, 일견 자기만 잘난 줄 알고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남들한테 독설 퍼붓고 모두까기 하는 사람이 실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지키며 자랐다는 걸 알게 돼. 아무도 자길 사랑해줄 사람이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애틋하게 돌보는 방법이, 조금 과한 자기애를 갖는 거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회가 말하는 보편적인 가족 형태에 부합하지 않는 독특하고도 확장된 가족관계(이모할머니-이모-조카-삼촌)이기는 해도 그런 가족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노민영과 달리 김수영은 정말 온전히 혼자라는 걸. 그렇게 자기만을 사랑해온 사람이 처음으로 그 지평을 넓혀 한 여자를 사랑하려고 한다는 걸.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려기보다는 그저 서로 터치 말고 갈길 가자고 주장하던 사람이 이제 타인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기 위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타인의 삶과 그가 가진 가치관과 정치적 입지 같은 것들을 이해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걸 말야.
이게 단순히 연민에 그치기엔 너무 무거운 감정이거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는 거 말이야. 그래서 노민영은 그런 김수영을 깊이 사랑하고, 나와 사사건건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정치생명까지 다 걸 각오를 해. 물론 자기가 가진 거 다 거는 건 김수영도 마찬가지긴 한데, 아무튼 나는 초선, 군소야당, 여성의원인 노민영이 결국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걸었다는 게 참 멋있었어. 정치인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여자인 노민영이 처음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고, 그게 결국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김수영식 정치론과 맞닿은 부분이기도 하니까. 끝내 노민영이 사퇴를 하는 건 일견 조카 보리와 연인 김수영(의 자폭을 막기 위한)을 위한 결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거 본인을 우선으로 생각할 줄도 알게 되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결정이거든. 노민영은 그동안 자신의 가족들, 언니가 남긴 동료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대의를 위해 본인의 삶은 철저하게 억누르고 무시했잖아. 그리고 그 '본인' 의 바운더리에 본의 아니게 가장 가까운 조카가 함께 얽혀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진보당 국회의원 이모를 둔 탓에 학원 하나 맘대로 못 다니는, 이모가 그렇듯 제 욕망과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애어른으로 자라나는 조카가. 그제서야 노민영은 정치인으로서의 제 삶에 함께 희생되던 조카의 눈물을 들여다봐. 연인 김수영이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자기를 지켜주려하는 걸 그렇게라도 막아. 그 모든 게 노민영의 행복도 지키는 길이니까.
드라마 끝까지 가보면 이 두 사람은 여/야 의원인 걸 떠나서 고대룡/노민화의 관계 때문에도 찐으로 로줄인 게 되는데, 정작 그건 두 사람의 사랑에 엄청나게 심각한 장애가 안 되는 것도 그냥 너무 내연모다운 부분이라 약간 웃기기도 하고(나쁜 뜻 아님, 그냥 뭐든 심각하게 안 푸는 특징이)... 사실 소재나 설정 자체가 얼마든지 무겁게 가려면 무겁게 끌고갈 수 있었거든. 정치적인 사건 빵빵 터지고 로줄서사 터지고 두 사람은 갈등하고 눈물 쏙 빼면서 헤어지고 만나고 말이야. 근데 그냥 참 일관되게, 담담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 첫 마음을 기억하고 진심을 다해서 노력하면서 살자, 라는 얘기를 하거든. 정치적으로도 언젠가 순수했던 그 초심을 기억하며 진심을 다하면 그게 좋은 정치를 하는 거라고 설파하면서. 그 얘길 하려고 정말 환장의 짝꿍 같은 두 남녀가 어떻게 지지고 볶으면서 서로를 사랑하는지 거기에만 집중하거든. 나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 되게 좋았어.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다시 보면서도 그래서 좋더라. 누군가에겐 조금 슴슴한 드라마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하고 싶은 얘기를 뚝심있게 해내는 그런 면이 좋았던 거 같아. 드라마가 내내 사랑스럽고 봄냄새 폴폴 나는 건 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