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한 JTBC 드라마 <괴물>, 다른 장르물과 차별화된 요소·이야기 설계도 탄탄
[이현파 기자]
*주의! 이 글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JTBC 드라마 <괴물>이 막을 내렸을 때, 시청자들은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시청률 때문이었다. 범죄물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높은 시청률(자체 최고 시청률 6.0%, 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했지만, '이런 작품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라는 공감대가 모였기 때문이다. <괴물>은 종영과 동시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후, 단숨에 국내 시청 1위를 차지하면서 아쉬움의 근거를 증명했다. 5월 13일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는 'TV 부문 최우수 연기상(신하균)', 드라마 작품상, 극본상(김수진 작가)을 수상하면서 3관왕으로 올라섰다.
'경기도 문주시 만양읍'이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진 미제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괴물>의 기본적인 틀이다. 물론 서울 외곽, 시곡 마을의 살인 사건을 다룬 수사물은 많았다. 그러나 <괴물>은 다른 장르물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살인범의 정체를 예상보다 빠르게 공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결코 '범인 찾기'라는 과제에만 함몰되지 않았다.
'만양 정육점'에 모이는 친구들 사이에는 유사 가족 같은 우애가 있지만, 일말의 긴장감이 흐른다. 드라마 전반에 베여 있는 긴장감과 모호함은 <괴물>의 독특한 무기다. '아치 에너미'처럼 그려졌던 이동식(신하균 분)과 한주원(여진구 분)의 관계가 동료애로 바뀌는 과정 역시 재미다.
1막과 2막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야기의 설계가 탄탄하다. 서늘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연출, 최백호의 노래 역시 이 이야기와 조응한다. 신하균과 여진구 등 주연 배우를 포함한 출연진들의 연기는 이야기의 당위성을 끌어 올리는 힘이었다. '오지화' 역의 김신록, '강진묵' 역의 이규회, '유재이' 역의 최성은 등 시청자들에게 낯선 배우들이 포진했지만, 이들은 농도 짙은 연기력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이 드라마를 챙겨본 사람이라면, 오프닝에서 '괴물'이라는 로고를 인물의 얼굴에 띄우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시청자가 괴물의 정체를 추리하도록 유도한다. <괴물>은 인간 군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무엇이 괴물을 만드는가' 묻는다. <괴물>의 인물 중 상당수는 한 번씩 괴물과 인간의 경계선에 선다. 재개발에 혈안이 되어 동식을 살인범으로 매도하는 만양 주민들, 동식을 타박하는 국밥집 주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골 민심' 따위를 발견할 겨를이 없다.
이 작품에는 공인된 괴물이 몇 명 존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괴물은 주인공 동식이다. 드라마 초반 시청자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동식의 의미심장한 미소다. 그의 표정은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쌍둥이 남매를 잃고, 살해 용의자로 지목당했으며, 삶에서 큰 상실을 겪어 왔다. 극중 유재이의 대사처럼 동식은 '평생 혼자 끌어안은 슬픔이 너무나 큰 나머지 미쳐버린' 사람인 것. 그래서일까, 동식은 살인 사건을 뒤쫓는 과정에서 위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주인공 한주원(여진구 분) 역시 그와 다른 듯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괴물 같은 놈들 잡으려면 괴물이 되는 거 말곤 방법이 없어요" - 동식
언뜻 이 드라마에는 절대 악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연쇄살인범 강진묵(이규회 분) 뿐만이 아니다. 경찰청장을 꿈꾸는 경찰청 차장 한기환(최진호 분), 문주시 재개발을 꿈꾸는 정치인 도해원(길해연 분), JL 건설의 대표 이창진(허성태 분)이 그렇다. 이들은 살인 사건을 은폐한 가해자인 동시에, 인간의 생명을 '재개발의 변수'로 환산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절대 악을 잡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의되지 않는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논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부소장 아돌프 아이히만은 평범한 모습의 사내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는 '자기 내부의 악'에 대해 무지했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범죄가 악마적인 존재에 의해 일어난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을 때 , 사유하기를 거부할 때 괴물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괴물과 인간의 경계를 만드는 것은 '사유'의 유무다. 이 드라마에도 사유하지 않았기에 탄생한 괴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한기환은 자신이 숨긴 음주 뺑소니 범죄를 '작은 실수'라고 말한다. 해원은 아들 박정제(최대훈 분)의 허물을 감싸기 위해 분투하다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그들은 자기 행동에 관용을 베푸는 과정에서 괴물이 되었다. 물론 그 반대편에도 해선 안 될 일을 한 동식과 주원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속죄 의식과 양심을 간직했기에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차이는 크다. <괴물>은 이 대조를 통해, 시청자에게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무거운 이야기에서 만양 정육점의 왁자지껄한 술자리는 숨을 돌리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 순간의 이완이 보여주듯,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역시 놓지 않고 있다. 가해자의 악랄함보다 '남은 이들의 고통'에 집중했다는 것 역시 미덕이다. 동식과 재이, 방주선의 가족 등 가족을 잃은 날에 잡힌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괴물>은 피해자의 고통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고, 사건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살인자에게 이해와 동기, 서사를 붙여주면 안 된다'는 오지화(김신록 분)의 대사가 더욱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괴물>을 연출한 심나연 PD는 <괴물>을 준비하면서 <비밀의 숲>(2017), <시그널>(2016) 등의 장르물을 교과서처럼 여겼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괴물>은 그들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http://naver.me/5rsmVICH
좋은기사 같아서 같이 보려고 가져왔어!
괴복치들이 하고싶은 말 여기 다 있어 ㅋㅋㅋㅋㅋ
[이현파 기자]
*주의! 이 글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JTBC 드라마 <괴물>이 막을 내렸을 때, 시청자들은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시청률 때문이었다. 범죄물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높은 시청률(자체 최고 시청률 6.0%, 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했지만, '이런 작품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라는 공감대가 모였기 때문이다. <괴물>은 종영과 동시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후, 단숨에 국내 시청 1위를 차지하면서 아쉬움의 근거를 증명했다. 5월 13일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는 'TV 부문 최우수 연기상(신하균)', 드라마 작품상, 극본상(김수진 작가)을 수상하면서 3관왕으로 올라섰다.
'경기도 문주시 만양읍'이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진 미제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괴물>의 기본적인 틀이다. 물론 서울 외곽, 시곡 마을의 살인 사건을 다룬 수사물은 많았다. 그러나 <괴물>은 다른 장르물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살인범의 정체를 예상보다 빠르게 공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결코 '범인 찾기'라는 과제에만 함몰되지 않았다.
'만양 정육점'에 모이는 친구들 사이에는 유사 가족 같은 우애가 있지만, 일말의 긴장감이 흐른다. 드라마 전반에 베여 있는 긴장감과 모호함은 <괴물>의 독특한 무기다. '아치 에너미'처럼 그려졌던 이동식(신하균 분)과 한주원(여진구 분)의 관계가 동료애로 바뀌는 과정 역시 재미다.
1막과 2막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야기의 설계가 탄탄하다. 서늘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연출, 최백호의 노래 역시 이 이야기와 조응한다. 신하균과 여진구 등 주연 배우를 포함한 출연진들의 연기는 이야기의 당위성을 끌어 올리는 힘이었다. '오지화' 역의 김신록, '강진묵' 역의 이규회, '유재이' 역의 최성은 등 시청자들에게 낯선 배우들이 포진했지만, 이들은 농도 짙은 연기력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이 드라마를 챙겨본 사람이라면, 오프닝에서 '괴물'이라는 로고를 인물의 얼굴에 띄우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시청자가 괴물의 정체를 추리하도록 유도한다. <괴물>은 인간 군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무엇이 괴물을 만드는가' 묻는다. <괴물>의 인물 중 상당수는 한 번씩 괴물과 인간의 경계선에 선다. 재개발에 혈안이 되어 동식을 살인범으로 매도하는 만양 주민들, 동식을 타박하는 국밥집 주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골 민심' 따위를 발견할 겨를이 없다.
이 작품에는 공인된 괴물이 몇 명 존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괴물은 주인공 동식이다. 드라마 초반 시청자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동식의 의미심장한 미소다. 그의 표정은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쌍둥이 남매를 잃고, 살해 용의자로 지목당했으며, 삶에서 큰 상실을 겪어 왔다. 극중 유재이의 대사처럼 동식은 '평생 혼자 끌어안은 슬픔이 너무나 큰 나머지 미쳐버린' 사람인 것. 그래서일까, 동식은 살인 사건을 뒤쫓는 과정에서 위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주인공 한주원(여진구 분) 역시 그와 다른 듯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괴물 같은 놈들 잡으려면 괴물이 되는 거 말곤 방법이 없어요" - 동식
언뜻 이 드라마에는 절대 악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연쇄살인범 강진묵(이규회 분) 뿐만이 아니다. 경찰청장을 꿈꾸는 경찰청 차장 한기환(최진호 분), 문주시 재개발을 꿈꾸는 정치인 도해원(길해연 분), JL 건설의 대표 이창진(허성태 분)이 그렇다. 이들은 살인 사건을 은폐한 가해자인 동시에, 인간의 생명을 '재개발의 변수'로 환산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절대 악을 잡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의되지 않는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논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부소장 아돌프 아이히만은 평범한 모습의 사내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는 '자기 내부의 악'에 대해 무지했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범죄가 악마적인 존재에 의해 일어난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을 때 , 사유하기를 거부할 때 괴물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괴물과 인간의 경계를 만드는 것은 '사유'의 유무다. 이 드라마에도 사유하지 않았기에 탄생한 괴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한기환은 자신이 숨긴 음주 뺑소니 범죄를 '작은 실수'라고 말한다. 해원은 아들 박정제(최대훈 분)의 허물을 감싸기 위해 분투하다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그들은 자기 행동에 관용을 베푸는 과정에서 괴물이 되었다. 물론 그 반대편에도 해선 안 될 일을 한 동식과 주원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속죄 의식과 양심을 간직했기에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차이는 크다. <괴물>은 이 대조를 통해, 시청자에게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무거운 이야기에서 만양 정육점의 왁자지껄한 술자리는 숨을 돌리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 순간의 이완이 보여주듯,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역시 놓지 않고 있다. 가해자의 악랄함보다 '남은 이들의 고통'에 집중했다는 것 역시 미덕이다. 동식과 재이, 방주선의 가족 등 가족을 잃은 날에 잡힌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괴물>은 피해자의 고통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고, 사건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살인자에게 이해와 동기, 서사를 붙여주면 안 된다'는 오지화(김신록 분)의 대사가 더욱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괴물>을 연출한 심나연 PD는 <괴물>을 준비하면서 <비밀의 숲>(2017), <시그널>(2016) 등의 장르물을 교과서처럼 여겼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괴물>은 그들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http://naver.me/5rsmVICH
좋은기사 같아서 같이 보려고 가져왔어!
괴복치들이 하고싶은 말 여기 다 있어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