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었다는 거 잊지마”
끝까지 착했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는 에필로그까지 ‘일흔의 덕출이 그랬듯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말로 응원을 남겼다. 덕출과 채록의 재회로 행복하게 끝났는데도 그 마지막이 아쉬운 건 ‘나빌레라’ 속 등장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채록아”라는 덕출(박인환)의 다정한 부름은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불러 모았다. 27일 방송된 최종회는 케이블, IPTV, 위성을 통합한 유료플랫폼 시청률에서 수도권 기준 평균 4.0%·최고 5.3%를, 전국 기준 평균 3.7%·최고 4.8%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또 남녀 2049 시청률은 수도권 기준 평균 1.5%·최고 2.2%를, 전국 기준 평균 1.8%·최고 2.6%를 기록해 케이블과 종편 포함 동 시간대 1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닐슨코리아 제공)
‘나빌레라’의 세계에선 성장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주인공 덕출은 나이와 신체, 그리고 악화되어 가는 알츠하이머를 극복하며 채록(송강)과 2인무를 완성했다. 채록은 이런 덕출을 통해 발레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주했다. 두 주인공뿐 아니라 덕출의 장남인 성산은 사회가 정해준 길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딸 은호의 꿈을 있는 그대로 응원해준다. ‘나빌레라’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호범 역시 지난 상처를 뒤로하고 다시 축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 날아올랐다.
‘나빌레라’는 배우들에게도 전환점이었다. 송강이 좋아서 보기 시작했다가 박인환에게 빠져들었다는 말은 박인환이 심덕출의 매력을 200% 끌어냈음을 증명한다. 대중들에게 박인환은 그간 드라마 속 주인공의 아버지로 익숙했던 배우였다. 그런 그가 전하는 심덕출의 꿈은 진정성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주름진 얼굴로 마음까진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토록 청춘처럼 느껴졌던 건 박인환이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나빌레라’는 박인환의 재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송강 또한 이번 작품을 계기로 배우로서 눈도장을 단단히 찍었다. 넷플릭스 ‘스위트홈’과 ‘좋아하면 울리는’을 통해 빛을 본 그였지만 훤칠한 외모로 인해 20대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더 앞서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박인환과의 브로맨스를 담백하게 소화해내며 채록만의 이야기도 섬세하게 표현했다. 날아올랐냐는 덕출의 말에 채록이 환한 미소로 답하는 장면은 배우 송강이 성장한 순간이기도 했다.
날아오른 이가 어디 이들뿐이랴. ‘나빌레라’로 울고 웃던 시청자들도 남모를 곳에 품어왔던, 아니 간직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자신만의 날개를 다시 꺼냈다. 인생 드라마라는 평가에 걸맞게 ‘나빌레라’는 대사 하나하나가 주목받았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열심히 하는데, 잘 될 거야. 그냥 널 믿고 해 봐”라는 어떤 대가도, 의도도 없는 응원이 TV 너머의 우리에게도 필요했다는 걸 보여준다. 채록에게, 은호에게 건네는 덕출의 한마디에 마음이 울었다면 이 또한 당신의 성장이라 할 수 있겠다.
논란 없이 흘러가는 게 이상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근 국내 드라마는 선정성과 폭력성을 앞다투어 드러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 진정 치정과 잔인함인지 분간이 안 갈 만큼 그렇지 않은 드라마를 고르기 어려운 지경에 흘렀다. 이때 나타난 ‘나빌레라’는 한 줄기 빛이었다. 막장이 난무하는 드라마 속에서 ‘나빌레라’의 이야기는 다소 심심하게 보였을 순 있겠지만 순수하기 그지 없었다. 시청자들은 이 순수함에 호응했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자극이 아니라 온기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거리 두기를 해야 했던 나날은 어쩌면 살갗이 닿는 온기를 그리워했던 시간이었을지도. 그러니 ‘나빌레라’의 이야기가 더욱더 반갑게 다가온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