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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서사가 '나빌레라'를 입체적이고 공감 가득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4월 19일 방송된 tvN '나빌레라' 9화에서는 이채록(송강 분)이 양호범(김권 분)에게 자신의 오해를 사과했다. 앞선 방송에서 양호범 일행이 알츠하이머로 길을 잃은 심덕출(박인환 분)을 도우려는 모습을 오인하고 언성을 높인 것에 대한 사과였다.
이채록을 괴롭히던 양호범을 지켜봐왔던 시청자는 혼란에 빠졌다. 이채록에겐 못되게 굴더니, 심덕출을 도우려는 모습은 이질적이기만 하다. 그러나 두 양호범 모두 똑같은 한 사람이다. 그만큼 입체적인 캐릭터란 뜻이다.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지만, 또 다른 이에겐 싫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나빌레라'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두 이렇게 입체적일 뿐,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무조건 '악'인 빌런이 '나빌레라'엔 존재하지 않았다.
심덕출의 큰 아들 심성산(정해균 분)도 그렇다.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에, 심덕출의 발레 도전을 가장 크게 반대한 것도 심성산이었다. 그러나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일찍이 사회에 뛰어들고, 그러면서 장남으로서 집안 중대소사를 모두 책임지고 관여하게 된 사연을 갖고 있었다.
이 밖에도 많은 인물이 각자의 속사정과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채록에게 무거운 부담을 안기는 것 같았던 기승주(김태훈 분)지만, 사실 제자를 너무 사랑한 스승이었다. 막내아들 심성관(조복래 분)은 의사라는 직업을 박차고 나와 부모를 실망하게 했지만,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휩싸인 인물이었다.
또한 초반과 달리 '빌런'에서 '조력자'로 변모한 캐릭터도 있다. 이채록은 처음엔 심덕출의 도전을 반대하고 심술부렸지만, 이제는 심덕출의 조력자가 됐다. 자식이 최우선이었던 최해남(나문희 분)도 이제는 남편의 꿈을 누구보다 응원한다.
물론 주목할 만한 빌런이 없다는 것은 직관적이고 자극적 흥미가 떨어진다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흔한 악당 소재가 주는 진부함과 다른 재미를 노릴 수 있다.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군상을 빌런이자 동시에 조력자로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악역을 내세운 스토리보다 좀 더 복잡한 구조로, 더욱 탄탄한 작품성을 내포한다.
여기에 현실과 꼭 닮은 입체적 서사는 작품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시청자에게 캐릭터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들었다. 결국 시청자는 서사를 따라가며 캐릭터 하나하나에 동화되고, 애정을 주게 된다. 이는 작품 몰입도를 높이고 극대화된 감동에 젖어 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