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간=김무진 기자] 18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 사건
2002년 6월, 연주시 연쇄 살인 사건은 평온했던 연주의 한 시골마을 야산에서 시체 7구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끔찍한 살인 사건의 범인은 다름 아닌 해당 마을에 거주했던 금속공예가 도민석으로 암매장한 사체 중에는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부인 우모 씨의 것이 발견돼 사람들을 더 큰 충격에 빠뜨렸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주민 A씨는 "동네에 일이 생기면 마을 사람들이 (도민석에게) 가서 의논하고 상담받을 정도로 똑똑하고 인품도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인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도민석은 이처럼 계속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두터운 신뢰를 쌓는 영악한 면모를 보였다. 조금도 의심받을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한편 피해자들의 시신에서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목에는 올가미가 걸려 있었고 한쪽 발목에서는 영구적 손상이 발견 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피해자들의 양 엄지 손톱이 제거됐다는 것이다.
당시 도민석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첫 번째 피해자인 아내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의 피해자들과 일제히 관계가 없다는 점, 살인 뒤 시신을 같은 패턴으로 훼손해 암매장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도민석이 일종의 살인중독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접점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며 이 살인 행위 자체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려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2002년, 도민석은 자살했고, 여죄의 여부를 물을 수도 없이 연주시 연쇄 살인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그렇게 도민석은 잊히는 듯 했다. 그러나 도민석 자살 3개월 뒤, 아들 도현수가 새로운 살인 사건의 피의자 신분이 되어 도주함으로써 다시 한번 마을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도현수는 그렇게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2020년. 연쇄살인마 도민석의 사라진 아들, 도현수는 어디로 갔을까?
<김무진 기자 moojin@hanjoogan.com>
사혼의 구슬조각처럼 흩어진 기사 사진을 모아서 완성했다. 고라니 기사는 전체 타이핑이 있는데 이건 없는 것 같아서 찾아봤어.
직접 확인하고 싶으면 (티빙 기준 1화 25:40, 2화 25:12, 2화 1:02:04) 찾아보면 됨.
근데 이거 적느라 타임라인도 찾아봤는데
2002년 6월 10일, 도민석 장례식 - 2002년 8월 21일, 공범이 장영희에게 협박 전화를 함 - 2002년 8월 30일 양진태가 이장 사망 사실을 알게 됨
8화 조별과제에서 무진이 집 창문에 적은 타임라인, 그리고 16화에 촉촉형사님이 찾은 양진태 진술조서 내용을 종합하면 위와 같은 타임라인이 나옴.
첫 문장에 시체 7구는 무진이가 기사 잘못 씀 (정확히는 6구여야 함) 다들 해피설날 보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