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후기(리뷰) 구미호뎐 연아음 빨간우산 서사 빠진 부분이 내내 아쉬워서 상상력을 동원해 짜깁기해 본 그저그런 단편소설???
447 17
2020.12.15 18:27
447 17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 이 땅은 모든 산줄기의 근원이자 강줄기의 근원이라 하였다. 아음은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고 젖은 머리카락 한 올을 단정히 하였다.


듣던 대로구나. 산천초목이 푸른빛을 눈부시게 뿜어내는 곳. 이곳은 어찌 이리도 풍요롭단 말이냐.’


세상과 단절된 듯 오색찬란한 풍경에 아음은 가득 차오르려는 서러운 마음을 다독이고 이내 아름드리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백두대간의 주인이시여. 하해와 같은 자애로움으로 이 땅의 민심을 돌보소서. 타오르는 뙤약볕 아래 김을 매는 이들의 탄식을 들어주소서. 강줄기의 근원이시여. 가물어 갈라져 가는 땅에 물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비를 내리어 주소서.’


사특한 것이 아비의 몸을 차지하고 앉은 후로 종묘사직이 뿌리 뽑힌 나라. 비록 버려졌으나 이 나라 국왕의 딸로서 아음은 백성의 절규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절박한 마음으로 아음은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기우제를 지내었던가. 나무 뒤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리어 돌아가 들여다본 곳에 내관이 조심하라 신신당부하던 그것, 천년 묵은 여우가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린 것이라 비웃으며 겁을 주어 쫓아내려 여우가 벼락을 내리는 순간 아음은 알 수 있었다.


이 구미호가 백두대간의 주인이로구나.’


아음은 어찌하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골똘하였다. 비를 내려주십사 무릎을 꿇고 애걸하여 볼까 하였으나 어떤 성품을 가진 자인지 시험해 보고 싶기도 하였다. 하여 떨리는 마음을 천진한 웃음 뒤에 감추고 호기롭게 말을 건네었다.


내 부하가 되어라. 호의호식할 수 있게 해주마.”


이제껏 경박하고 추레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인간들만 보아왔던 산신은 적잖이 당황하여 잠시간 말을 잊고야 말았다. 삽살개 취급도 모자라 감히 산신에게 부하라니. 천 년을 살면서 이렇게 당돌한 인간은 듣도 보도 못하였다. 게다가 이렇게 작디작은 계집아이 주제에. 실소가 터졌다. 산신은 세상물정 모르는 계집아이의 머리통을 쥐어박아 산 아래로 내어몰았다. 그렇게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헌데 울며 산을 내려갔던 이 계집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활을 들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산신을 상대로 활시위를 당기는 것도 기가 찬데 지치지도 않는지 하루를 거르지 않고 찾아와 비를 내려달라 닦달하였다.


비를 내려 주면 너 또한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있겠느냐. 은혜도 모르는 머리 검은 짐승의 소원 따위 바람에 흩날리는 풀씨보다도 가벼운 것을.’


제 아무리 눈물콧물 쏟아내며 목 놓아 조아려봤자 순간뿐인 것을. 세상 믿을 것이 못 되는 것이 인심임을 산신은 모르지 않았다. 헌데 이 계집아이의 이 극성맞은 당당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쉬운 마음에 빌고 또 비는 자는 자고로 비루함 그 자체여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무섭게 으름장을 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외려 눈길 한 번 피하는 법 없이 한시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꾸하는 계집아이에게 산신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네 자신을 위함이 아닌 것쯤은 내 진즉 알고 있다. 너의 그 비단옷, 또한 내게 호의호식을 제안한 것만 보아도 네 집 곡식 창고가 비는 날 따윈 없을 터인데 무엇 때문이냐. 그 작은 발로 이 험한 산을 쉴 새 없이 오르는 그 지극정성은 무엇을 위함이냐.”

본디 인간은 홀로 살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의지하며 사는 존재이니 맹자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측은지심이 없는 자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으랴. 하여 자연 만물을 어진 마음으로 다스리는 너에게 나의 어진 마음 또한 통하기를 기대하고 또 기대하였을 뿐이다.”


한여름 불볕더위를 식혀주고 오곡백과 해갈하여 무르익게 하는 단비가 전국 방방곡곡 온 고을마다 온 논밭마다 골고루 내리었다.

산신은 행복에 겨워 뛰놀 계집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리어져 설풋 웃음이 났다. 비에 흠뻑 젖어 고뿔에 들면 아니 될 텐데 낯선 조바심이 들기도 하였다.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 이제 너도 더는 이곳에 오르지 아니 하겠지. 어린 것이 험한 산 오르기가 여간 어렵지 아니 하였을 테니 퍽 다행한 일이다.’


빗줄기 속으로 헛헛한 웃음이 섞여들던 그때 산신의 머리 위로 붉은빛이 드리워졌다.


이연! 비 오는데 뭐 하고 있어. 옷이 다 젖어버렸잖아.”


걱정근심의 짐이 모두 거두어진 맑은 눈동자, 그 해사한 웃음이 산신의 붉은 옷에 맺힌 물방울처럼 이연의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비를 내려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야.”

도롱이는 보았어도 이렇게 생긴 것은 처음 보는데. 궁중 사는 이들이 해를 가린다고 쓰던 것과 비슷한 것이냐.”

도롱이는 입고 벗기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라서. 이연 네 생각하면서 만들어 온 것이니 털 상하지 않게 잘 쓰고 다녀라. 비를 내려준 은혜에 비하면 더없이 하찮겠지만.”


여전히 당돌하고 여전히 목청 큰 아음에게 이연은 비로소 웃어보였다. 결코 하찮을 리 없었다. 이토록 귀한 답례품은 난생 처음이었다.


너는 나를 잊지 아니하였구나. 바라는 것을 얻어내고도 나를 찾아와 주었어.’


이걸 나에게 주고 나면 너는 이 비를 맞고 내려가겠다는 것이냐. 다 젖어 고뿔이라도 들면 어찌하려고.”


이연의 물음에 아음은 깜찍하게 웃어보였다.


그럼 다시 가져갔다가 맑은 날 내 잊지 않고 들고 올 테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알겠지?”


이연은 생각하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가리어야 해서, 해가 쨍쨍한 날에는 햇빛을 가리어야 해서, 매번 그렇게 아음의 손에 우산을 들려 보내야겠다고. 그러면 아음은 이 우산을 돌려주어야 해서 다음날 또 다음날 이 산을 오를 거라고.

목록 스크랩 (0)
댓글 1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에이지투웨니스×더쿠💜] 에이지투웨니스 더쿠에 첫인사드립니다🙌 글래스 스킨 에센스 팩트 2종 체험 이벤트 572 06.06 63,807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4,246,822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4,982,72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1,432,683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2,655,105
공지 잡담 확실히 예민한 덬들도 많긴 함 28 06.06 30,102
공지 알림/결과 💥💥💥💥💥요즘 싸잡기성글 너무 많아짐💥💥💥💥💥 15 06.06 29,045
공지 알림/결과 📺 2024 방영 예정 드라마📱 89 02.08 687,724
공지 알림/결과 📢📢📢그니까 자꾸 정병정병 하면서 복기하지 말고 존나 앓는글 써대야함📢📢📢 14 01.31 692,777
공지 잡담 (핫게나 슼 대상으로) 저런기사 왜끌고오냐 저런글 왜올리냐 댓글 정병천국이다 댓글 썅내난다 12 23.10.14 1,068,381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라마 시청 가능 플랫폼 현황 (1971~2014년 / 2023.03.25 update) 15 22.12.07 1,948,595
공지 알림/결과 ゚・* 【:.。. ⭐️ (੭ ᐕ)੭*⁾⁾ 뎡 배 카 테 진 입 문 🎟 ⭐️ .。.:】 *・゚ 151 22.03.12 2,971,788
공지 알림/결과 블루레이&디비디 Q&A 총정리 (21.04.26.) 2 21.04.26 2,210,437
공지 스퀘어 차기작 2개 이상인 배우들 정리 (4/4 ver.) 158 21.01.19 2,361,109
공지 알림/결과 OTT 플랫폼 한드 목록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티빙) -2022.05.09 237 20.10.01 2,395,200
공지 알림/결과 만능 남여주 나이별 정리 243 19.02.22 2,412,127
공지 알림/결과 ★☆ 작품내 여성캐릭터 도구화/수동적/소모적/여캐민폐 타령 및 관련 언급 금지, 언급시 차단 주의 ☆★ 103 17.08.24 2,381,825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영배방(국내 드라마 / 영화/ 배우 및 연예계 토크방 : 드영배) 62 15.04.06 2,629,483
모든 공지 확인하기()
32 후기(리뷰) 구미호뎐 시즌2를 바라며 상상해 본 이연과 어머니의 대화 그리고 연지아 운명에 대한 단상 7 21.01.25 446
31 후기(리뷰) 구미호뎐 이연 아빠가 들려주는 한국판 인어공주 이야기 5 21.01.08 468
30 후기(리뷰) 구미호뎐 어제 함박눈이 내려서 써 본 짧은 연지아 가족 이야기 4 21.01.07 440
29 후기(리뷰) 구미호뎐 환생 그 600년의 기다림, 이연만큼 아음이도 간절하지 않았을까... 매우 짧은 연아음 이야기 5 21.01.05 496
28 후기(리뷰) 구미호뎐 꽃과 나무와 바람이 전하는 연아음 연지아 이야기 7 21.01.03 717
27 후기(리뷰) 구미호뎐 시즌2를 간절히 기대하며 써 본 짤막한 연지아 이야기 7 20.12.31 344
26 후기(리뷰) 구미호뎐 임신, 출산, 육아 관련 단상들(연지아 이야기) 6 20.12.27 512
25 후기(리뷰) 구미호뎐 삼도천에서... 연아음 그리고 연지아 이야기 7 20.12.26 377
24 후기(리뷰) 구미호뎐 드라마의 모든 인외존재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해 본 상상... 이연과 삼신의 만남(연지아 이야기) 6 20.12.24 433
23 후기(리뷰) 구미호뎐 '사랑하는 지아에게'에 이어서 써 본 아음을 기다리며 보내는 이연의 짤막한 연서 10 20.12.22 355
22 후기(리뷰) 구미호뎐 '사랑하는 지아에게' 편지 형식으로 써 본 연지아 이야기 9 20.12.22 357
21 후기(리뷰) 구미호뎐 결혼 후 아빠엄마가 된 평범한 일상 속 어느 날의 연지아 이야기 8 20.12.21 474
20 후기(리뷰) 구미호뎐 연아음 상플을 끝내고 이제는 삭제씬이 너무 아까워서 써 본 연지아 이야기 17 20.12.20 707
19 후기(리뷰) 구미호뎐 경칩 고백 이후 재회까지의 연아음 이야기 16 20.12.19 739
18 후기(리뷰) 구미호뎐 여름, 가을을 지나 경칩 은행열매 고백 전 상상해 본 겨울의 연아음 이야기 6 20.12.18 441
17 후기(리뷰) 구미호뎐 아음을 만나기 전 이연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아음을 만난 뒤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 본 이야기 10 20.12.17 388
16 후기(리뷰) 구미호뎐 연아음 입덕부정기를 써보려 했으나 뭔가 실패한 스토리 9 20.12.16 568
» 후기(리뷰) 구미호뎐 연아음 빨간우산 서사 빠진 부분이 내내 아쉬워서 상상력을 동원해 짜깁기해 본 그저그런 단편소설??? 17 20.12.15 447
14 후기(리뷰) 구미호뎐 나의 세상, 나의 구원, 형에게 13 20.12.04 655
13 후기(리뷰) 구미호뎐 연아음 전사 소설 리뷰 12 20.11.07 583
  • 1
  • 2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