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통해 느끼는 감정과 푸는 방식에 집중"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우리는 지구 내부보다 태양 내부 물질 분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최근 잔잔한 호평 속에 종영한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속 한 대사다.
28일 서면으로 만난 '가족입니다'의 권영일 PD는 이 대사를 다시 한번 언급하며 "친한 친구, 연인이 좋아하는 것들은 묻자마자 대답이 나오는데 어머니가 좋아하는 책, 아버지가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엔 선뜻 답이 튀어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 같은 타인과 타인 같은 가족이 오해를 극복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는 것이 드라마의 기회 의도였는데 시청자들이 많이 공감해 주셔서 어느 정도 부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동안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지도 못했던 가족의 비밀을 마주했을 때 과연 나라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게 되었을지,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 가며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간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전통적인 가족상이 해체되는 요즘이지만, 가족은 여전히 우리 존재의 기원이라고 권 PD는 강조했다.
권 PD는 "차별에 대한 상처, 다르면 안 된다는 강요, 무조건 너를 위한 것이라는 모순된 사랑, 이 모든 고정관념이 가족에서 시작됐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도 가장 아름다운 화해도 결국은 가족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삶이 가족보다 중요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내 존재의 기원인 사람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가족입니다'는 정통 드라마의 문법을 따라가면서도 초반 비밀을 풀어나가는 구조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면적으로 그려내며 차별화했다. 그러다 보니 초반 스퍼트와 비교해 중반부터 다소 늘어졌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에 권 PD는 "소재와 갈등을 극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부분으로 활용했지만 사건들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푸는 방식에 더 집중했다"며 "8부까지 모든 사건이 터지고, 그 이후부터는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각 인물의 감정과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가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묵혀둔 각자의 사연은 쌓이고 쌓여 눌러 붙어있었죠. 그 떨어지기 힘들었던 상처를 힘들게 떼어 내는 과정은 망설임 없이, 반대로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은 좀 더 천천히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본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은 오래 걸리니까요."
권 PD는 호연을 보여준 배우들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우리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배려심이 깊어요. 그 배려가 연기로도 표현돼 배우들은 끊임없이 연기하고 있었어요. 본인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연기까지 끌어 올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름다운 배우들이었습니다."
김지석이 연기해 주목받은 찬혁이라는 인물이 왜 꼭 필요했는지도 물었다. 찬혁은 가족 밖 인물이지만, 가족에 관해 가장 잘 아는 독특한 캐릭터다.
권 PD는 "찬혁은 우리 드라마를 친절하게 읽어주는 사회자, 구겨져 버려진 쓰레기통 속 종이를 하나하나 꺼내어 펼쳐 읽어주는 상담가였다"며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같이, 혹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성장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권 PD는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가족극이라면 다음에 또 한번 작업해보고 싶다"며 "요즘 같은 시대 가족극은 소통 또는 대화를 얼마나 잘 녹여내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와 현시대 가족의 가장 다른 점은 소통의 부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