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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나저씨 나저씨만큼 따뜻한 감상문 보고 갖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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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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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긴 하지만 드라마 다 떠올라서 좋다

https://www.facebook.com/1133641776/posts/10221673738769438/?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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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행은, 결코 사람 사정 봐가며 오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불행은 쓰나미처럼 줄줄이 닥치죠. ‘눈 위에 또 내린 서리’라는 뜻의 사자성어 ‘설상가상’은, 그 불행을 직접 당한 이에겐 심장을 후벼파는 벼락과도 같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부모는 많은 빚을 남기고 죽었고, 장애가 있는 할머니는 의지가 되기는 커녕 돌봐야할 의무입니다. 상속 포기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아이는 죽은 부모의 빚을 그대로 떠안았습니다.

다니던 학교는 중퇴했고, 사채업자는 매일 같이 찾아와 아이를 두들겨 팹니다. 그 와중에 아이는 사채업자를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고, 정당방위가 인정 되었으나 사람들은 아이를 그저 ‘사람 죽인 년’으로 혐오할뿐.

아이가 어른이 되자, 죽은 사채업자의 아들이 찾아와 아비를 대신해 어른이 된 아이를 때리고 돈을 뜯어갑니다. 아이의 월급은 110만원. 매달 아이가 갚아야 할 돈은 120만원. 이보다 더 절망스러운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2.

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야기입니다. 저 끔찍한 불행의 주인공 ‘이지안’은 그래서 온몸으로 불행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음울한 인간으로 자라죠. 하지만 이건 드라마니까, 주인공은 아저씨 ‘박동훈’을 만나게 되고 이런저런 사연에 휘말리면서 점차 치유되어 갑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저 유명한 엔딩신에서, 박동훈과 악수를 나눈 다음 뒤돌아 선 이지안은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마지막 대사.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라는 말에 지안은 ‘네. 네’라고 두번 대답하고, 시청자는 마침내 끝난 지안의 고난에 마음을 놓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드라마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이야기, 그러면서 관계를 맺는 이야기, 그러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니까, 모든 이야기가 흘러흘러 결국 등장인물들은 평온을 되찾습니다. 비록 굵은 상처가 남은 삶이지만, 그들은 ‘이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죠.

드라마의 담담하기 이를데 없는 이 엔딩이 많은 이를 감동하게 한 것은, 그 작은 평온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다들 공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3.

드라마니까, 결국엔 평온에 이르는 반전이 있을 걸 아니까, 일상 속 지안의 불행은 참혹하게 묘사됩니다. 폭력, 채무, 따돌림, 가난, 외로움. 그 신산한 지안의 삶은 동훈의 일상과 얽히면서 조금씩 회복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안의 ‘현실적인 문제’를 동훈이 직접 해결한 것은 없군요. 하나하나 따져볼까요? 지안의 오랜 빚은 도준영 대표의 뒷통수를 쳐서 마련한 돈으로 지안 스스로 갚았습니다. 꼬인 사건을 해결할 녹음 화일은 광일이가 전해줬네요. 모든 일이 끝난 뒤 지안의 일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삼안 E&C의 회장님이구요.

물론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준, 지안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동훈의 배려였지만, '객관적으로' 동훈이 지안에게 딱부러지게 해준 것은 없네요. 지안을 회식에 끼워준 것, 할머니에게 맛있는 고기 반찬을 대접한 것, 요양원으로 떠나는 할머니를 업어주고 모범 택시를 대절한 것 모두, 따지고 보면 일회성의 일들입니다. 심지어 지안의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찾아간 동훈은 빚을 갚아주긴커녕 실컷 두들겨 맞기만 하고 돌아오죠.

4.

그러면 동훈은 실제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말만 거창한 허풍꾼이었던 것일까요. 정서적인 의미에서도, '실무적인 의미에서도'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동훈은 지안이 가지고 있던 수 많은 문제 중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동훈은 지안의 ‘일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해결했습니다. 해결도 해결이지만, 중요한 것은 해결의 '방법'입니다. 동훈은 지안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제도’의 품안으로 지안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지안의 할머니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서요.

지안의 일상 속 불행을 생각해봅시다. 갚아야 할 많은 빚과 그로 인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채권자의 폭력은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가장 힘든 고통은 고통의 반복이라는 것. 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지안이, 자리보전하고 있는 할머니의 이불을 질질 끌어 화장실 앞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여러번 반복되는 것에 눈길이 갔습니다.

어쩌면 지안의 일상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아니었을까요. 돈을 빼앗아가고 때리는 광일이는 증오할 수나 있지요. 자신을 왕따시키고 무시하는 회사 정규직들은 외면할 수나 있지요. 사랑하기에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기에 끝없이 반복되어야 하는 고통. 저는 지안의 그 이불끌기가 그 상징 같아 보였습니다.

5.

아이러니 하게도, 동훈은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본인의 지위, 본인의 돈, 본인의 노력 어느 것 하나 동원하지 않습니다. 할머니를 자신의 돈으로 요양원에 입원시키지도, 주말마다 찾아와 할머니를 돌보지도 않습니다. 동훈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제도를 지안에게 소개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지하철에서, 돈이 없어서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쫓겨났고, 그래서 자기가 돌봐야 한다는 지안에게 동훈은 어이 없다는 듯이 말합니다.

“... 손녀는 부양 의무자 아냐. 자식 없고 장애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돈을 못 내서 쫓겨나. 아, 혹시 할머니랑 주소지 같이 돼있냐? 하아... 주소지 분리해. 같이 사는데다가 네가 소득이 잡히니까 혜택을 못 받는 거 아냐. 주소지 분리하고, 장기요양 등급 신청 해.”

이야기를 들으며 휘둥그래 커지는 지안의 눈. 상상도 못한 해결책의 존재. 그 모습이 안타까운 동훈은 말합니다.

”...그런 거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냐...”

지안에게는 막대한 빚도, 부모의 부재도, 장애를 가진 할머니도, 살인의 과거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멀쩡히 존재하는 제도의 도움마저도 받을 수 없는, 그것도 몰라서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철저히 '제도 밖'이 사람이었다는 점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지안에게 동훈은 손을 내밀고, 제도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동훈이 소개한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보호 아래에서 지안이의 할머니는 비로소 안식을 찾습니다.

6.

이제 결론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나의 아저씨'는 절절한 선율의 주제가로도 유명했었지요. 드라마의 메인 주제가는 노래합니다.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라고요. 저는 생각해봅니다. 이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은 우리 가슴 속에 품은 선한 마음 아닐까요? 잠들지 않는 꿈은 그 선한 마음들이 모여 만든 선한 제도이구요. 부모를 잃은 아이가, 부양할 이 없는 장애 노인이, 경제적으로 몰락한 사람이 그 모든 간난고초를 혼자 겪지 않게 하기 않기를 바라는, 별처럼 빛나는 선한 마음들이 모려 함께 꾸는, 영원히 잠들지 않는 꿈.

현실의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의 아저씨’가 되기 위해 그의 할머니를 업어주거나, 빚장이를 찾아가 돈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하거나, 장례식에서 내내 함께 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내 몫의 월급에서 장기요양보험료를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누군가에게 ‘나의 아저씨’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예산의 삭감에 분노하고, 장애인 고용 의무 확대를 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 정책이라 비난하는 이들에 반대하며 연대하는 것. 그것이 현실의 박동훈,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아저씨’가 되는 길일 것입니다.

이지안 이전의 수 천년 동안, 수많은 이지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지안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돕고 싶어하던 수많은 박동훈이 있었습니다. 그 별 같은 마음들이 모여 잠들지 않는 꿈을 꾸게 했고, 그 세월들이 모여 사람을 돈으로 사고 팔지 않는 세상, 장애인을 수용하고 학살하지 않는 세상, 아동 노동이 금지된 세상, 재산과 학력에 상관 없이 평등한 투표권을 갖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답게 빛나는, 별같은 사람들이 써내려간 역사의 끝자락에 우리가 서있습니다. 여기에 선 우리의 의무는, 또 한 명의 박동훈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거창하지 않게.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월급의 일부를 헐어 장기요양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누군가에게 '나의 아저씨'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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