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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신문기자>에서 고요하고도 단단한 얼굴로 영화의 색깔을 만들어낸 심은경은 tvN <머니게임> 기획재정부 5급 사무관 이혜준 역을 통해 부정의한 거대 집단에 맞서는 용기 있는 개인의 초상을 보여줬다. tvN 제공
tvN <머니게임>의 기획재정부 5급 사무관 이혜준(심은경)을 보면서 계속해서 뇌리를 떠나지 않은 단어는 ‘단단함’이다. 지방대 출신의 이 젊은 여성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스스로 학비를 벌어 대학에 간 뒤 행정고시를 패스해 ‘흙수저의 기적’으로 불려온 듯하다. 그러나 똑같이 시험을 치르고 들어간 공무원사회는 남성 중심, 학연 중심 사회이고 다시 부딪히는 건 편견의 벽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담백하고 깔끔하다. 다른 이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이 가진 소신과 능력을 믿는다. 상사에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할 말을 한다. 웬만해선 큰 소리를 내는 법도 없다. 그저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할 일을 해 나간다.
정부가 지분을 가진 은행의 부도 문제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에 맞서는 과정에서 그의 일관된 태도는 인상적이다. 그것은 나아가 부패한 조직에 대한 소리 없이 강한 저항이 된다. 마지막 회에서 기획재정부 장관 허재(이성민)는 마치 시청자의 마음을 대신하듯 그에게 말한다.
“자네는 시종일관 흔들림이 없어.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어떻게 그렇게 단단해질 수 있나?”
그때 16회 내내 차분했던 이혜준의 얼굴은 처음으로 무너져 내린다.
“두려워서요.”
그는 불그스름해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고백한다.
“우리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저를 놓을 수가 없어요.”
드라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시청자는 그의 단단함 안에 그처럼 커다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0살 때 아역배우로 연기 시작해 여유 없이 불안했던 슬럼프 겪어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
‘신문기자’로 독보적 캐릭터 구축
‘머니게임’의 공무원 이혜준도 심은경만이 만들 수 있는 캐릭터
어눌한 걸음에 담백한 표정으로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실천
■ 담담하고 단단하게
배우 심은경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아역 배우 출신이다. 2003년 열 살 때 <대장금>으로 데뷔해 <단팥빵>(2004)에서 ‘헥토파스칼 킥’을 날리던 그는 <황진이>(2006), <태왕사신기>(2007) 등에서 주인공의 아역으로 사랑받았다. 이후 할머니 같은 사투리 욕 신공을 선보인 <써니>(2011), 70대 할머니와 영혼이 바뀐 인물을 능청스럽게 연기한 <수상한 그녀>(2014) 등 코미디 영화를 크게 흥행시키며 이름을 알렸다.
심은경은 한국 영화에서 드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며 영화를 원톱으로 이끌 수 있는 그 나이대의 희귀한 여성 배우였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대체로 밝고 과잉된 코미디 연기, 혹은 장르 영화의 콘셉추얼한 연기에 한정되어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 돌연 독립영화 <걷기왕>에 출연해 경보를 하는 엉뚱한 여고생을 연기하기도 했고, 2016년 <조작된 도시> <특별시민>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 종종 기존과는 다른 연기를 선보였지만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심은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 영화 <신문기자>(2019)에서부터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의 얼굴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오던 심은경이 아니었다. 단지 외모가 성숙해지고 일본어를 사용한다는 점 말고도 모든 것이 달랐다. <신문기자>는 믿을 수 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정부 권력과 언론의 유착, 여론조작 문제 등 사회 현실에 관심이 없다면 지루할 법한 사회파 영화다. 여기서 심은경의 고요하고도 단단한 얼굴은 영화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그는 웃음기를 싹 뺀 채 도우토신문사의 4년차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 에리카를 연기한다. 요시오카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신규 대학 설립 계획서를 받고 일본 내각정보실의 실체를 파헤친다. 그는 지금껏 사회파 영화에서 많이 보아온, 정의를 외치는 젊고 패기 있는 여기자가 아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내면에 굳은 심지를 가진 인물이다. 총리 측근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을 꽃뱀 취급하는 남성 기자들에게 다가가 당당히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방금 그 말 성희롱입니다”라고 태연히 말하고, 비리를 밝히려다 죽음을 맞은 공직자의 딸에게 달라붙는 기자들에게 “당신이라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라고 대신 따져준다. 그는 그렇게 고요하고도 집요하게 미디어의 존재 이유가 불분명해진 세계에서 집단의 불의에 저항하는 개인으로서, 직업인인 기자로서 용기 있게 진실을 찾는 행동을 해 나간다.
요시오카의 겉으로 드러나는 담담함 역시 커다란 두려움을 누르고 서 있다. 기자였던 아버지가 정부에 반하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죽음에 이르렀고, 자신 역시 두려움을 딛고 그의 길을 가고 있다. 심은경이 본래 가진 느리고 어색한 몸짓을 감추면서 단단한 표정을 만들 때, 그것은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내면의 두려움을 누르고 용기 있는 행동을 감행하는 개인의 초상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낸다.
<머니게임>(2020)의 이혜준은 심은경식 ‘담담함과 단단함’의 완결판이다. 이혜준은 누가 봐도 <신문기자> 속 심은경의 많은 부분을 이식해온 캐릭터다. 다만 <머니게임>의 심은경은 더 나아간다. 그는 단지 담담하고 소신 있는 사회파 작품의 젊은 전문가 여성 캐릭터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혜준은 요시오카가 그랬듯 기본적으로 남성 중심의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비주류의 젊은 여성이다. 그러면서도 ‘괜찮은’ 여성 캐릭터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화려하고 센 언니도, 상냥하고 차분하기만 한 여성도, 차갑다가 가끔 따뜻한 내면을 드러내는 ‘츤데레’도 아니다.
이혜준은 오직 지금의 심은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어리보기 같고 여리지만 나설 때는 확실히 나서고 심지가 굳은 성격은 <써니>의 나미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제야 진지한 역할을 만난 그는 <걷기왕>의 만복처럼 뛰는 것을 참고 걸을 줄 안다. 기본적으로 약간 느린 템포를 가진 듯한 그는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다소 어눌한 걸음걸이로 걷는다. 열정적이지도 주눅 들지도 않은 담백한 표정과 담담한 말투, 곧고 단단한 심지를 가졌다.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하면서도 일을 잘한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맞서는 용기를 가졌으며, 조직이 자신의 정의와 다른 일을 할 때 공무원으로서,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윤리를 지키고 해야 할 말은 용기 내어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써니’의 발랄한 청소년 역할도 심지 굳은 성격 마찬가지였지만
현재 심은경은 ‘걷기왕’ 만복처럼 뛰는 것을 참고 걸을 줄 알아
성인이 된 배우 심은경의 얼굴엔 어른이 되면서 커진 두려움 딛고
자신의 길 걷는 자의 용기가 보여
■ 두려움을 딛고 홀로
10세 때 연기를 시작해 이제 26세가 된 심은경은 최근 인터뷰에서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한동안 “여유 없이 내적으로 불안한” 시기를 보냈다.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걷기왕>을 촬영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남들보다 모든 것이 느린 만복을 연기하면서 굳이 빨리 달리려만 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을 발견해나가며 나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고, 비로소 연기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심은경이 두려움을 딛고 자신의 길을 걸어 만난 캐릭터는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제 <써니>와 <수상한 그녀>의 발랄하기만 한 청소년이 일본에 건너가서야 비로소 자신의 재능과 에너지를 다른 각도에서 알아봐줄 판을 만났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머니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채이헌(고수)은 이혜준에게 말한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 사무관 같은 사람이 하나둘 조직에 들어오면 언젠간 달라지겠죠.”
“저 같은 사람요?”
“감히 저항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 포용력 있고 당당한 사람.”
그는 부정의한 거대 집단에 맞서는 용기 있는 개인의 초상으로, 그중에서도 기억할 만한 단단함을 가진 젊은 여성의 얼굴로 이제야 홀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담담하고도 단단한 얼굴은 분명 어른이 되면서 커지는 두려움을 가슴에 품은 채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 용기를 낸 자의 얼굴이다.
이로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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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news.v.daum.net/v/20200327163419689
일본 영화 <신문기자>에서 고요하고도 단단한 얼굴로 영화의 색깔을 만들어낸 심은경은 tvN <머니게임> 기획재정부 5급 사무관 이혜준 역을 통해 부정의한 거대 집단에 맞서는 용기 있는 개인의 초상을 보여줬다. tvN 제공
tvN <머니게임>의 기획재정부 5급 사무관 이혜준(심은경)을 보면서 계속해서 뇌리를 떠나지 않은 단어는 ‘단단함’이다. 지방대 출신의 이 젊은 여성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스스로 학비를 벌어 대학에 간 뒤 행정고시를 패스해 ‘흙수저의 기적’으로 불려온 듯하다. 그러나 똑같이 시험을 치르고 들어간 공무원사회는 남성 중심, 학연 중심 사회이고 다시 부딪히는 건 편견의 벽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담백하고 깔끔하다. 다른 이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이 가진 소신과 능력을 믿는다. 상사에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할 말을 한다. 웬만해선 큰 소리를 내는 법도 없다. 그저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할 일을 해 나간다.
정부가 지분을 가진 은행의 부도 문제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에 맞서는 과정에서 그의 일관된 태도는 인상적이다. 그것은 나아가 부패한 조직에 대한 소리 없이 강한 저항이 된다. 마지막 회에서 기획재정부 장관 허재(이성민)는 마치 시청자의 마음을 대신하듯 그에게 말한다.
“자네는 시종일관 흔들림이 없어.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어떻게 그렇게 단단해질 수 있나?”
그때 16회 내내 차분했던 이혜준의 얼굴은 처음으로 무너져 내린다.
“두려워서요.”
그는 불그스름해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고백한다.
“우리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저를 놓을 수가 없어요.”
드라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시청자는 그의 단단함 안에 그처럼 커다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0살 때 아역배우로 연기 시작해 여유 없이 불안했던 슬럼프 겪어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
‘신문기자’로 독보적 캐릭터 구축
‘머니게임’의 공무원 이혜준도 심은경만이 만들 수 있는 캐릭터
어눌한 걸음에 담백한 표정으로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실천
■ 담담하고 단단하게
배우 심은경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아역 배우 출신이다. 2003년 열 살 때 <대장금>으로 데뷔해 <단팥빵>(2004)에서 ‘헥토파스칼 킥’을 날리던 그는 <황진이>(2006), <태왕사신기>(2007) 등에서 주인공의 아역으로 사랑받았다. 이후 할머니 같은 사투리 욕 신공을 선보인 <써니>(2011), 70대 할머니와 영혼이 바뀐 인물을 능청스럽게 연기한 <수상한 그녀>(2014) 등 코미디 영화를 크게 흥행시키며 이름을 알렸다.
심은경은 한국 영화에서 드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며 영화를 원톱으로 이끌 수 있는 그 나이대의 희귀한 여성 배우였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대체로 밝고 과잉된 코미디 연기, 혹은 장르 영화의 콘셉추얼한 연기에 한정되어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 돌연 독립영화 <걷기왕>에 출연해 경보를 하는 엉뚱한 여고생을 연기하기도 했고, 2016년 <조작된 도시> <특별시민>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 종종 기존과는 다른 연기를 선보였지만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심은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 영화 <신문기자>(2019)에서부터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의 얼굴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오던 심은경이 아니었다. 단지 외모가 성숙해지고 일본어를 사용한다는 점 말고도 모든 것이 달랐다. <신문기자>는 믿을 수 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정부 권력과 언론의 유착, 여론조작 문제 등 사회 현실에 관심이 없다면 지루할 법한 사회파 영화다. 여기서 심은경의 고요하고도 단단한 얼굴은 영화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그는 웃음기를 싹 뺀 채 도우토신문사의 4년차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 에리카를 연기한다. 요시오카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신규 대학 설립 계획서를 받고 일본 내각정보실의 실체를 파헤친다. 그는 지금껏 사회파 영화에서 많이 보아온, 정의를 외치는 젊고 패기 있는 여기자가 아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내면에 굳은 심지를 가진 인물이다. 총리 측근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을 꽃뱀 취급하는 남성 기자들에게 다가가 당당히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방금 그 말 성희롱입니다”라고 태연히 말하고, 비리를 밝히려다 죽음을 맞은 공직자의 딸에게 달라붙는 기자들에게 “당신이라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라고 대신 따져준다. 그는 그렇게 고요하고도 집요하게 미디어의 존재 이유가 불분명해진 세계에서 집단의 불의에 저항하는 개인으로서, 직업인인 기자로서 용기 있게 진실을 찾는 행동을 해 나간다.
요시오카의 겉으로 드러나는 담담함 역시 커다란 두려움을 누르고 서 있다. 기자였던 아버지가 정부에 반하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죽음에 이르렀고, 자신 역시 두려움을 딛고 그의 길을 가고 있다. 심은경이 본래 가진 느리고 어색한 몸짓을 감추면서 단단한 표정을 만들 때, 그것은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내면의 두려움을 누르고 용기 있는 행동을 감행하는 개인의 초상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낸다.
<머니게임>(2020)의 이혜준은 심은경식 ‘담담함과 단단함’의 완결판이다. 이혜준은 누가 봐도 <신문기자> 속 심은경의 많은 부분을 이식해온 캐릭터다. 다만 <머니게임>의 심은경은 더 나아간다. 그는 단지 담담하고 소신 있는 사회파 작품의 젊은 전문가 여성 캐릭터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혜준은 요시오카가 그랬듯 기본적으로 남성 중심의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비주류의 젊은 여성이다. 그러면서도 ‘괜찮은’ 여성 캐릭터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화려하고 센 언니도, 상냥하고 차분하기만 한 여성도, 차갑다가 가끔 따뜻한 내면을 드러내는 ‘츤데레’도 아니다.
이혜준은 오직 지금의 심은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어리보기 같고 여리지만 나설 때는 확실히 나서고 심지가 굳은 성격은 <써니>의 나미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제야 진지한 역할을 만난 그는 <걷기왕>의 만복처럼 뛰는 것을 참고 걸을 줄 안다. 기본적으로 약간 느린 템포를 가진 듯한 그는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다소 어눌한 걸음걸이로 걷는다. 열정적이지도 주눅 들지도 않은 담백한 표정과 담담한 말투, 곧고 단단한 심지를 가졌다.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하면서도 일을 잘한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맞서는 용기를 가졌으며, 조직이 자신의 정의와 다른 일을 할 때 공무원으로서,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윤리를 지키고 해야 할 말은 용기 내어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써니’의 발랄한 청소년 역할도 심지 굳은 성격 마찬가지였지만
현재 심은경은 ‘걷기왕’ 만복처럼 뛰는 것을 참고 걸을 줄 알아
성인이 된 배우 심은경의 얼굴엔 어른이 되면서 커진 두려움 딛고
자신의 길 걷는 자의 용기가 보여
■ 두려움을 딛고 홀로
10세 때 연기를 시작해 이제 26세가 된 심은경은 최근 인터뷰에서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한동안 “여유 없이 내적으로 불안한” 시기를 보냈다.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걷기왕>을 촬영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남들보다 모든 것이 느린 만복을 연기하면서 굳이 빨리 달리려만 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을 발견해나가며 나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고, 비로소 연기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심은경이 두려움을 딛고 자신의 길을 걸어 만난 캐릭터는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제 <써니>와 <수상한 그녀>의 발랄하기만 한 청소년이 일본에 건너가서야 비로소 자신의 재능과 에너지를 다른 각도에서 알아봐줄 판을 만났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머니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채이헌(고수)은 이혜준에게 말한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 사무관 같은 사람이 하나둘 조직에 들어오면 언젠간 달라지겠죠.”
“저 같은 사람요?”
“감히 저항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 포용력 있고 당당한 사람.”
그는 부정의한 거대 집단에 맞서는 용기 있는 개인의 초상으로, 그중에서도 기억할 만한 단단함을 가진 젊은 여성의 얼굴로 이제야 홀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담담하고도 단단한 얼굴은 분명 어른이 되면서 커지는 두려움을 가슴에 품은 채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 용기를 낸 자의 얼굴이다.
이로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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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news.v.daum.net/v/20200327163419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