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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단사랑 15화 리뷰이고 싶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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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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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15화 기준


15화 비극이 끝나갈 때


숨통을 옥죄는 손아귀, 명백한 살의가 담긴 눈빛. 단의 서슴없는 공격에 루나는 정말 죽일 거냐며 고통스러운 기색이 가득했어. 정말 그러려는 듯 손아귀와 눈빛을 절대 풀지 않은 단은 한편으로는, 대체 왜라는 외마디 절규를 뱉으며 스스로 품은 살의가 괴로운 것 같기도 했어. 서로 고통과 괴로움으로 가득한 찰나, 루나는 이 순간을 대비한듯 준수가 뒤에서 습격하지. 그러자 각목과 칼과 몸이 뒤엉키는 격투로 이어지고...단이 칼에 한번의 상해를 입었어. 물론 단은 상처를 입고도 물러서지 않았지, 다시 다가오는 칼날을 돌려 준수에게 내리꽂기 위해 갖은 완력을 다하는 순간, 딱!

천사와 인간의 난투를 더 지켜볼 수 없던 후가 둘을 갈라놓았어. 그리고 그 탓은 오로지 단의 몫이지, 같은 천사에게만 인간을 해하는 그 당장 소멸이라며 염려 가득한 훈계를 전할 뿐, 인간은 그 살의마저 관여할 수 없어. 그 불공평한 걱정과 엄함이 단에겐 와닿을지가 않아, 연인의 정해진 운명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로선 누굴 죽여서든 바꿔야할 빌어먹을 운명일 뿐이니까! 인간의 극한 감정을 내뱉는 단에게 그 육신의 이름을 부르며 후가 꾸짖자, 단은 어찌 됐든 자신은 없어지니 연서는 살리고 사라지겠다며 여전한 감정상태였어. 이 극단적인 감정 논리에는 어떤 설득력이 다가오는 것일까, 후가 질책을 더 이어가지 못했어. 그 설득력에 후가 잠시 상념이 많은 얼굴이고 단은 다친 몸으로 일단 물러가는 사이...슬며시 정신차리는 준수가 또 칼을 집었어. 그 시각, 연서는 순백의 알약을 한손 가득 움켜쥐었지! 이 모두를 상념속에서 헤아려 내다보는 후가...다시 한번 딱!

천사의 수명은 얼마일까? 강우, 노엘, 단 이들로 미루어 짐작하면 주변인일 때까지인 것 같아. 어떤 연유로든 인간사에 사사로운 마음이 생기고 섭리에 대한 의문을 품으면서, 결국은 소멸에 이르는 죄를 짓게 되었으니까. 후 역시도 수없는 시간과 천사와 인간을 아무 감흥없이 스쳐보낸 끝에 단의 끝없는 선함과 긍정을 만나서, 방관하는 주변인의 자세를 잃게 되었어. 사소한 생명을 살린 사소한 화인 동시에 기쁨으로 시작해서, 훤한 금기와 운명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불안과 답답함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려는 두 마음 앞에서 마침내 설득력을 받아들인 것 같았어. 각자 준비한 비극을 모두 알고 있는 혜안이 내놓는 답 하나, 마지막 찾은 섭리를 단에게 알리지, 끝까지 너답게 연서를 살리라며. 그리고 이 순간엔 끝이 있어 하루가 빛난다는 단의 말을 이해하는 것일까, 후의 마지막 표정에는 밝은 미소가 자리잡고 있었어. 같이 단죄 받는듯 무릎 꿇고 선배를 울부짖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단을 향해, 후가 그 눈부신 끝을 전했어, 같이 하늘로 돌아가고 싶었던 주변인의 작은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어느 천사의 마지막 손짓...딱!


극약을 쥔 손은 가슴팍에 대고 다른 손은 손수건을 꼭 잡은 연서가 극단적인 등가교환을 바라며 마지막 행동을 앞둔 순간, 후가 베푼 혜안의 손길로 인해 단이 늦지 않게 나타났어. 그리곤 연서 악력에 맞서는 힘으로 손안의 알약을 바닥에 내팽개치고...이로써 서로를 위해 각자 준비한 비극이 둘 다 불발로 끝나버렸어.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친다면 운명같은 닷새 이후의 상황과 시간이야. 딱 닷새까지만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낸 고전 이후의 모습은 어떨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대신 희생하려던 마음에 감동할까? ...아니더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극한으로 치달은 마음들은 감사와 감동을 느낄 여유같은 게 전혀 없었어. 연서가 미리 준비한 정황을 하나둘 따진 후 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격정 가득한 울분이고, 그 울분에 맞서 같이 감정이 격해지는 연서였어.

"네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
"그럼 어떻게 가만있어! 널 살릴 수 있다는데! 네가 안 사라진다는데!!"

거센 감정을 한번 훑어내고 나면 그제는 그 안에 담긴 서로의 마음이 서서히 와닿는 것 같았어. 특히 후를 잃고 온 단에겐 더없는 아픔이지, 자신을 위해서 후처럼 생명을 내놓겠다는 건. 너까지 이러면 내가 어떻게 사냐는 쓰라리고 서러운 아픔을 읊으며 연서에게 다가서는 단이었어. 쓰라린 마음이 흘리는 눈물처럼 피가 뚝뚝 흐르고, 어떻게도 살 수 없을 것처럼 연서앞에서 무너져내렸어. 쓰러진 단의 몸에서 피가 흥건한 상처를 발견한 연서는 놀라는 동시에 이성적으로 대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어. 그런 연서를 향해 단이 전하는 말은 나 때문에 죽지 말라는 절절한 마음 한 조각이지, 정작 자신은 죽어가는 형국에서 말야.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자, 연서는 점점 이성을 잃어가며 제발이라는 애원을 단에게 그리고 절대자에게 거듭거듭할 뿐이었어. 너를 지키기 위해 온 이곳에서 너를 내 품에서 잃어갈 줄이야, 삶과 죽음과 사랑이 핏빛으로 엇물린 채 연서의 품안에 있었어.


어찌 보면 비극은 비극으로 끝날 때 아름답기도 해. 미완으로 끝난 비극은...피투성이 바닥에 나뒹구는 알약이 목숨을 장난처럼 여긴 잔여물로 비칠 수 있고, 숭고한 희생이 아닌 먼저 도망치는 이기와 비겁일지도 모르거든. 제3자로 바로본 강우가 걱정과 충고를 섞어 전한 시각이 바로 저런 것이었고. 그에, 불발의 고통까지 겪는 당사자인 연서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든 아무 상관이 없어서, 단에게 남은 시간만을 위해 공연마저 포기할 뿐이야. 그리고 다른 당사자인 단이 이 대화를 듣고 있어서, 미완의 비극이 남긴 감정의 격전을 한번 더 치러야했어. 연서에겐 잘 보여주지 않던 등을 보여준 단은 그 음성 또한 드물게 냉랭했어, 연서의 춤과 삶을 희생당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이어온 자신의 노력을 외면하곤 공연을 포기하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 노력을 어떤 방법으로 행하다 이렇게 다쳤는지 강우에게서 들은 연서가 먼저 감정의 평정을 잃기 시작했어.

"나쁜 놈, 감동이라도 받을 줄 알았어? 하나도 안 고마워! 너 그러고 사라져버렸음 평생 원망하며 살았을 거야!"
"너도 죽으려고 했잖아, 누구 마음대로 목숨을 걸어! 그래서 내가 인간이 되면 너한테 고마워할 것 같아?"

둘은 여전히 감동과 감사를 느낄 여유가 없어, 사랑하는 이의 희생을 알아버린 당사자들에겐 실은 사치에 불과한듯 눈물기 욱여넣은 감정만 격앙되어 부딪힐 뿐이야. 연서는 괴롭게 부딪히는 감정을 한번 풀어내고 싶었을까, 왜 감동으로 받아주지 못하는지를 울먹이는 차분함으로 전하려고 했어. 살려달라고 한 나때문이니까, 자라지 못한 성우인 네가 이번엔 행복하고 씩씩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 속 깊은 이유와 짙어지는 눈물에 다가온 단의 손길과 품에서는 죽을까봐 무서웠고, 사라질까 무서운 눈물이 한없이 여리게 흘러내렸어. 여린 솔직함 앞에서 같이 솔직해진 단은 왜 고맙게 살아갈 수 없는지...선배도 없는 세상에서 너마저 잃고는 버티지 못하는 울음이 터져나왔어. 솔직한 눈물들속에서야 혼자 남겨져도 행복하기로 한 건, 남겨진 너를 위한 나의 이기적인 약속이었음을 깨닫고 있었지. 그리고 이 깨달음 안에 후의 희생이 함께함을 알게 된 연서는 자라지 못해 어리기만 울음을 끌어안고 같이 아파하고 슬퍼했어. 줄곧 슬펐겠지만 지금껏 참아온 단은 그 품에서야 쉴새없이 울음을 쏟아내고 있었어, 아직은 멀리 보낼 수도, 평화의 기도도 올릴 수 없는 슬픔만이 가득히. 그 슬픔에, 눈물에, 닷새 이후 거칠게 앓는 마음들이 아픔으로 한차례 정리되고 있었어.


오래된 존재를 위한 마지막 은총이었을까, 단의 짐작과 달리 후가 머물던 공간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어. 다만 손수건의 검은 깃털과 보고서는 평소 같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지, 이 공간에서 마지막을 미리 준비했다는 것을. 섭리의 의문을 품게 한 그들의 자격을 인정하며 기회를 대신 탄원해준 깊은 애정에 단 역시 애정과 그 이상의 존경을 전하며 후를 떠나보내고 있었어, 절대 잊지 않겠다 하며. 단이 마지막 시선을 거두고 나자 서서히 사라지는 그 공간은 오랜 아들같은 존재를 향한 한줌 애도는 아니었을까... 그리고 목메인 고마움으로 애도를 전하고 나온 연서는 마지막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을 위해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말자고 단과 다짐하고 있었어, 또 비극을 준비하는 일 없이 행복하게 보내자며. 바로 끄덕이는 고갯짓으로 답한 단은 연서의 등 너머에서는 슬픔이 남은 얼굴이었어, 함부로 애도를 마칠 수 없는 듯.


KCSYW


연서는 후의 선물이란 의미도 더해 허비할 시간이 일절 없는데, 강우는 공연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며 찾아왔어. 후가 강우도 헤아려 미리 전한, 살리는 일을 하란 계시를 해석한 발걸음이었지. 지옥같은 삶속에서도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두 사람의 진심이 하늘에 다다르는 기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마치 꿈꾸는 듯한 말을 남기고 돌아간 강우였어. 확실히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긴 한데, 춤을 어떻게 추면 어떻게 된다는 건지 연서에겐 애매모호하기만 해. 그에 단은 예언의 나무를 보여주고 떨어지는 나뭇잎도 잡지만, 예언이나 징조완 상관없이 나를 위해서 무대에 서달라는 요청을 할 뿐이야. 역시 천상을 통해서 벌어지는 일은 해석하기 나름이라, 생각들이 다 제각각이야. 하지만 중요한 건, 세명의 천사들을 통해 연서가 천상을 조금씩 엿보면서 감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하늘에 닿는 보고서, 예언이 내리는 나무, 마지막 기회..기적. 이를 통해 연서가 결정내린 감은, 무엇보다 단이 원하니 무대에 서고 그 대신 춤은 자신 있는 만큼 보고서로 마지막 기회를 잡아보고 싶은 거야. 물론 단이 쓰는 족족 태우는 상태임을 알려줘서 김이 팍 새고 말았지만. 그 괴팍한 성정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연서의 마음에서는 쉽게 비울 수 없는 의미 아닐까, 기적이란 건. 그와 반대로 단은 마음을 완전히 비운 모습이야, 연서가 공연하기로 해서 잔뜩 신날 뿐이거든. 그 이유라면, 집사가 천벌이라 칭한 준수의 사망으로 인해 루나까지 체포되었기 때문에 연서의 운명은 거의 바뀌었다고 여기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이제 행복하게 잘 마무리하면 되는데 연서가 무대에 오른다니 신나지 않을 수가 없지. 그렇게, 누군가가 꿈꾼 기적이란 한마디가 일으킨 파장처럼 웃음소리가 정원에서 끊이지 않고 있었어.


행복의 파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 공연을 앞둔 전날까지도. 미션으로 만난지 99일째..그리 긴 시간은 아닌데도 그사이 많은 시련과 대가를 치르고 다다른 행복인 탓일까, 최소 몇년은 함께 보낸 동반자의 느낌을 풍기는 둘이야. 그 시간 중 손수건 주문에서 처음 시작했던 마음을 연서가 알려주면, 감히 이연서와 춤을 췄다는 너스레로 그 마음을 받아주는 단이지. 처음의 고백만으론 만족할 수 없는 밤인지, 그날처럼 해보자며 연서가 손을 내밀었어. 그러면 겂없이 들이댔던 하룻강아지 천사가 지금은 그 춤의 경외를 속깊이 알고 있는 인간이 되어 멈칫거릴 뿐이고, 지팡이 신세였던 세계적인 발레리나는 그 남편을 먼저 품으로 끌어당기며 여유롭게 스텝을 옮겨가지. 그날같은 왈츠속에 그때는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이 마주한 채, 천사와 인간의 사랑이 행복으로 가득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현실의 시간 위에서 흐르고 있어. 시계, 예언의 나뭇잎, 달력, 손수건 이 모두가 현실의 시간을 명확히 알려주고 있는 천사의 인간의 마지막...행복한 밤이.

그들은 다짐한 대로 마지막 시간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어. 집을 나서는 걸음에 따라붙는 만감을 뒤로하고 그저 다녀오겠다는 평소와 같은 인사가 그랬지. 그리고 묘하게 신경 긁는 눈앞의 회장은 물론 보이지 않는 신도 무조건 감동시키겠다는 자신감이 마지막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고, 은근히 추잡하게 건네는 손길을 영구히 차단하기 위한 마무리도 자신있게 행했지. 비서가 아니라 남편이라며. 또, 무대 위에선 혼자 잘난줄 알았던 프리마가 함께 만드는 감동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객석엔 젤 예쁜 한사람을 정 없어야 해서 몰래 눈물을 훔치는 집사에게 새삼 잘 부탁하는 팔불출이 있었지. 이렇게, 알고 보면 이기적인 욕심이었던 극한 상황을 겪은 그들이 이제는 많은 욕심 부리지 않은 마음으로 준비를 마쳤어. 연서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지젤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저 높은 곳으로 보내고, 단은 아름다운 지젤을 드디어 직접 보는 설렘과 감동..이 행복함에 충분히 만족하며.



사실은 비극이 끝나지 않았어, 후의 희생으로 비극도 한차례 유예되었을 뿐. 이 사실은 니나가 단에게 알려주었어, 루나가 공연장에 침입한 상황을 통해. 그래도 다행인 것은 루나가 자신과 같은 고통을 연서에게 주기 위해 단을 노린다는 거였고, 그러면 공연 중인 연서 모르게 조용히 해결하겠다며 담담한 반응인 단이었지. 그리고 유예된 비극이 성큼 다가와서 자신을 향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서라는 이기적인 욕심이 언제든 쉽게 차오른다는 의미기도 할까. 단은 잠시 만나 후 멀어지는 연서의 손을 잡으며 사랑한다고 말했어, 어찌 될지..마지막 밀어일지도 모른다는 듯. 그래서인지..먼저 떨어지는 손끝 하나도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멀어지는 연서를 바라보고 있었어.

멀어지고 있는 연서는 애매모호했던 감이 공연에 몰입할수록 선명하게 다가오는 모양이었어. 그래서 어제 보고서를 썼는데 멀쩡했음을 단에게도 말하고, 포기하지 않고 널 지켜내겠다는 말까지 했어. 이 공연을 통해 그럴 수 있겠다는 육감이 단단히 자리잡은 듯 말야. ...그런데 이 육감은 무대로 한정해서 발생한 것은 아니었나봐. 우연히 본 루나를 뒤따라가고 그 칼날은 단을 향하고 있었지, 그 동시에 자신의 몸으로 칼날을 막아서...단을 지켜내었으니. 그러니까 루나가 칼날의 방향을 돌린다면, 유예된 비극은 바로 유예된 운명으로 돌변한다는 의미일까? 악인에게 죽임당할 예언을 끝끝내 실현하겠다는 괴팍한 성정의..?

예정된 운명으로 비극의 칼날을 막아냈다면 연서가 할일은 다하지 않았을까..? 아니, 연서는 비극속에선 언제나 날서있는 육감이 정확하게 가르키고 있는 무대로 다시 나가려고 했어. 핏기없는 얼굴과 니나에게 내일 공연을 부탁하는 말에서, 지금 무대에서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마지막 기적을 이뤄내겠다는 한가지 집념에 사로잡힌듯이...

 
수족을 잃고 직접 칼을 들고 나타난 루나였지만 이전과 같은 권모술수는 변함없었어. 연서 찌른 칼을 던져놓고 날 죽이지 않으면 연서를 끝까지 노리겠다는, 악마같은 속삭임으로 단의 마음을 한번 갖고 놀 속셈 같았거든. 그리고 정말 악마의 속삭임을 듣기라도 하는 듯 단의 눈동자엔 어지러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지. 뿌리부터 썩은 악인이야, 죽여도 돼. 안 죽이면 네가 소멸한 후에는 어떡할 거야? 어차피 몇시간 뒤엔 사라질 것, 지금 죽이고 소멸하라고! 그래서 사랑한다는 마지막 인사를 했던 것 아니었니? 너도 이미 예상하고 있던 순간이야, 그러니 어서 칼을...잡아, 죽여! 한순간, 검은 속삭임들이 단을 점령해버린 듯 칼날을 높이 치켜들고 루나에게 다가섰어.

그 시각 무대 위의 연서는 어느 때보다도 지젤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었어. 무덤에서 걸어나온 지젤과 죽음에 이를지도 모를 상처를 입은 연서, 윌리들로부터 알브레히트를 구해야하는 지젤과 몇시간 남은 소멸로부터 단을 지켜야하는 연서. 육감과 집념이 무대위에서 재능과 얽힌다면 그것은 완벽한 영감으로 탄생하는 것일지도 몰라. 지젤과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연서는 윌리의 여왕 미르타에게 간절한 염원을 갈구하는 몸짓으로 무대를 수놓고 있었어. '살려주세요.. 죽이지 마세요.. 제발..' 알브레히트를, 내 사랑을.

간절한 영감 한줄기가 윌리처럼 들러붙은 검은 속삭임도 밀어내는 것일까, 칼자루 움켜쥔 손마디가 하나씩 힘을 풀고 있었어. 영원의 사랑을 맹세한 증표가 자리한 손으로 한 생명의 영원을 뺏을 순 없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팽개치고 사라진다면 평생 미워할 거란 원망을 벌써 잊었어? 그 몇시간이면 사랑한다는 말을 수천번은 더 전할 수 있잖아! 그렇다면 널 위해서는 허울이고..그저 내안의 악을 정당화하려는 이기적인 욕심에 불과할 뿐이었나.. 이 자책하는 욕심을 이미 사라진 존재가 공기처럼 맴돌며 다독이는 것 같았어, 넌 살리는 애야. 마침내 악의 허울을 모두 떨쳐낸 듯 단이 칼을 떨어뜨리며 루나에게서 물러섰어, 살아서 인간의 죄로 처벌 받으라며. 짧은 순간이었음에도 마음에서는 선악의 극렬한 전쟁을 치른듯 그 얼굴엔 어느새 땀이 배어있었지.


옷 위로 붉은빛이 비치는 상태로 무대를 누비는 연서는 육체의 한계를 이미 넘어선 상태였을 거야. 모든 잠재능력을 끌어내게 하는 정신적 활동이 신체의 비상식적인 능력을 가능케 하는...훗날 이 공연 자체가 기적이라 부풀려 칭송될지도 모르는 순간이 흐르고 있어. 이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연서는 오로지 지젤과 일체화된 영감 하나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상태였어. 새벽 4시를 알리는 종과 함께 알브레히트를 무사히 지켜낸 지젤의 마음에 연서의 확신이 얹히고 있었어, 이 춤을 끝내는 것..이거였어, 널 살릴 수 있는 방법. 드디어 윌리들이 사라지고 알브레히트와 애틋한 시간을 나누는 지젤의 영감은 더 높은 곳으로 초월해서 흘러가서 육신의 내구력을 쥐어짜고 있었어, 이 춤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딱 하나만..내 사랑을 살려주세요. 그리고 진심을 담아 내미는 알브레히트의 꽃다발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지젤 역시 아침이면 사라져야하는 윌리이기 때문이지. 죽어서도 사랑하는 알브레히트를 눈앞에 두고 무덤으로 다시 돌아가는 지젤의 발걸음은 한계를 넘은 핏빛 육체로 단의 품에 쓰러진 연서의 마음과 같았어, 함께 있지 못해 가슴이 찢어져도 살아있기만 하면 돼요, 다시는 못 봐도...

쓰러지는 연서를 바로 품안으로 받아내는 단은 그전부터 불안함이 역력했어. 원래는 너였다, 선물 잘 받으라는 루나의 찝찝한 말 때문에. 그래서 무대 뒤를 지키고 있었던 건데, 손에 축축이 묻어나는 혈흔이 선물의 정체를 재빠르게 알려주고 있었지. 단이 잠시 놀라는 사이, 연서는 객석에 있어 못 볼줄 알았던 단이 와줘서 반가울 뿐이야. 그 마음을 기력이 다해가는 손길로 전하면, 손가락 하나에도 힘을 제대로 싣지 못하는 연서의 상태를 느끼는 단은 이미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어. 그런 단을 향해 연서는 힘없는 미소를 지어보였어, 지금까지 버티게 한 영감을 꼭 부여잡은 채, 널 살릴 수 있어서 기쁘다며.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한마디 더 전한 후에는 두 눈이 감기고 손은 모든 힘을 잃은 채 흘러내렸어, 이제 정신 활동마저 완전히 한계에 다다른듯. 단이 뺨을 매만지고 몸을 흔들어보고 더 힘주어 흔들어도 미동이 없었어. 눈물과 절망이 뒤섞인 절규로 아무리 이름을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었어, 사랑한다는 그 마지막 인사 이후로는. 그 인사는 몇천번 반복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두고서 너를 내 품에서 잃어갈 줄이야, 삶과 죽음과 사랑이 핏빛으로 엇물린 채 단의 품안에 있었어.

불발된 비극의 아픔을 딛고서 큰 욕심 내지 않는 마음마저 짓밟히고 있어. 단을 살렸다는 건 연서의 영감이었을 뿐, 신은 어떤 응답도 하지 않았어. 악마의 유혹마저 이겨내고 그저 연서의 행복을 바라보며 떠나고 싶었던 단은.... 다만 확실한 건 비극은 끝나간다는 거야, 유예된 연서의 죽음이 이루어진다면 유예된 비극마저 끝이 날 테니. 이렇게 끝나는 비극이라면...결국...서로를 품에서 잃어가기 위해 만난 그들이라면, 너무 잔인한 슬픔이지 않아..? 그러니 부디..한줄기 빛은 그 슬픔을 비추고 있기를.. 이 비극속에 남아있는 모든 빛을 모아 그들에게 전하고 싶어, 비극이 끝나갈 때...


keFeI



보태기.

세기말 중2병, 지옥의 묵시록이었던 강우의 입에서 기적이란 말이 흘러나왔어. 강우가 얼마큼 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하지만 그러면 뭐해, 결과적으로 유예된 죽음의 판을 깔기 위해 기적이란 말로 연서를 유인한 꼴이 되었는데... 단연의 비극이 워낙 처절해서 그렇지, 강우도 참 잔인하게 흘러가는 감정이야. 그래서 천사가 평범한 인간의 삶과 행복을 가진다는 것, 얼마나 쉽게 허락하지 않는 금기이고 자기 껄 어느 정도로 뺏기기 싫어하는 그분인지 새삼 알 수 있지. 그리 보면 단 역시 인간이 되는 기적이 절대 순조롭지 않겠다는 예감도 다가오고. 초반엔 단과 강우는 상반된 요소로 서로 대치점 같았는데, 결말에 다다를수록 근원적인 고초는 비슷한듯.

집안에 만연한 비극 앞에서는 제일 약해보였던 니나가 의외로 강해보였어. 고모는 차마 자기 딸을 신고할 순 없어 방관하다가 자신의 탐욕이 딸을 망쳤다고 무너지는 모성인 반면, 니나는 직접 루나를 유인하는 강단을 보여주었지. 그리고 루나는 준수의 죽음도 수족을 잃은 짜증 정도에 불과하고 표적을 단으로 금세 바꾸어 스스로 동기부여할 만큼, 약점 없는 전천후 악 같아. 그런데 니나에게는 삐뚤어졌을지언정 앞뒤 못 재는 애정이 있어서 체포되고 말았지. 그래서 강단 있는 니나라서 천만다행이었달까, 저런 루나에게 끝까지 휘둘렸으면... 강하게 대처했을지라도 가족에게 일어난 일인데 절대 맘 편할 순 없겠지. 그 심정을 연서가 알아줄 때는 힘들다는 솔직함이 흘러나오며 지금껏 묵은 감정을 풀어내는 악수를 청했고, 다시 루나가 나타났을 때는 얼굴 가득 드린 불안함이 원래 지닌 강단은 아님을 알려주더라. 그렇게, 불안하고 나약하지만 빛을 향해 올곧이 서있으려는 니나가 고모네 집안의 유일한 희망 같았어.


//


휴가 갔다오고 흐름 잃어서 안 써지더라..ㅠ
게다가 15화는 처연함, 비장미, 비극미의 절정이라 글로 풀려니..또르르..ㅠㅠㅋㅋ
12쯤만 되도 이번엔 진짜 gg 칠랬는데 걍 오기로 쓰긴 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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