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K팝 전성시대다. 올해는 유난히도 자극적인 이슈와 기록적인 성과가 수면 위로 앞다투어 떠올랐다. 연일 차트와 기록을 갈아치우며 문화콘텐츠 수출 공신이자 한국 알리미로서 K팝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숫자가 전부일까? 분명 그 아래에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음악적 담론도 존재하고 K팝의 다양한 발전 가능성도 잠재되어 있다. 이즘에서는 이러한 취지에서 2024년 K팝을 둘러싼 여러 사건의 배경을 분석하고, 조명받았던 음악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탐구하는 기획특집 [2024 K팝 동향조사]를 준비했다. 세 번째는 '데이식스의 약진과 역주행 너머의 것들'이다.
데이식스의 2024년은 화려했다. 기존 히트곡 ‘예뻤어’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쌍끌이로 선두에 나선 한편 컴백 앨범 < Fourever > 속 ‘Welcome to the show’, ‘Happy’ 두 트랙이 큰 인기를 얻었고 곧바로 발표한 < Band Aid >는 타이틀 ‘녹아내려요’가 앞선 성공을 이어가며 한 해를 수놓았다. 음원 차트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약해진 상황이라 하더라도 9년 만에 거둔 수확은 그간 밴드와 여정을 같이했던 팬들에게 막대한 감동을 주었으리라.
일련의 성적이 더욱 각별한 이유는 군 입대로 인한 오랜 공백기 및 뒤따른 변동을 딛고 일어섰다는 데 있다. < The Book Of Us : Negentropy - Chaos Swallowed Up In Love > 이래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5년가량 고정되었던 구성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특히 밴드에게 뼈저리게 다가오는 포지션 전환을 물 흐르듯 넘겨낸 데엔 그동안의 멀티 플레이가 주효하게 작용했다. 보컬을 한 멤버가 전담하지 않는 특성상 빠르게 합을 맞출 수 있었으며 비교적 늦게 연주를 익힌 리더 성진이 이전부터 기타를 병행한 덕에 빈틈이 최소화되었다.
작금의 K팝은 충성심 강한 팬덤만으로는 성과를 보장할 수 없다. 결국 대중성과 기본적인 퀄리티를 갖추고 탄탄히 뿌리를 내려야만 장기 흥행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데이식스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적확하게 꿰뚫었다. 이즘이 2010년 이후, 우리에게 감동을 준 K팝 트랙에 선정하기도 한 ‘예뻤어’가 처음 역주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되건만 이들은 여느 원 히트 원더처럼 쉽게 스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복귀 후 다시 차트에 올라 기록을 경신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주요한 강점을 잊지 않고 꾸준히 좋은 곡을 선보인 까닭이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묘사한 노랫말로 친밀히 다가가며 록과 팝을 오가는 유연한 작법 속 쉬운 멜로디는 자연스레 가슴에 스며든다. ‘노력해볼게요’ 속 ‘힘들 때 내 옆에 푹 기대 쉬어도 돼요’에서 ‘녹아내려요’의 ‘옆에 내가 있잖아’로 이어지는 따스한 위로도 빼놓을 수 없겠다. 데이식스의 가사는 대부분 친숙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채워져 있기에 한층 가치 있다. 상술한 금년의 두 음반과 그 타이틀, 수록곡들 또한 영어 사용을 최소화하고 한국어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어느새 젊음의 찬가로 자리 잡은 한마디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는 그 백미다.
이러한 요소에 더해 비상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근래 하나의 선언처럼 계속되는 ‘밴드 붐은 온다’란 키워드다. 마스크로 입을 싸맨 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은 제한이 풀리자마자 공연장에 뛰어들어 해방과 자유의 음악 록을 즐겼다. 이와 같은 흐름이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유행을 상징하는 표어로서 보다 넓은 차원을 아우르려면 비단 인디 신뿐만 아니라 강력한 소구력을 지닌 밴드의 존재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할을 도맡은 데이식스 역시 이번 해 대한민국의 세 유명 페스티벌인 서울재즈페스티벌,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연달아 참여하며 대중과 마니아 양쪽에 어필했다.
이를 두고 대형 기획사를 뒤에 둔 덕 혹은 공장식 송 메이킹이라 깎아내리기 전 간과해서는 안 되는 핵심이 있다. 바로 거의 모든 곡이 멤버들 및 데뷔 초부터 함께한 전담 프로듀서 홍지상의 손에서 탄생한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룹 활동을 넘어 데이식스 (이븐 오브 데이)와 주로 공백기에 발매되었던 솔로 앨범의 크레딧을 살펴보라. < Letter With Notes >, < Pilmography >와 제일 최근의 < 30 >에 이르기까지 각 멤버들의 정규 1집은 외주가 아닌 자체 프로듀싱을 중심으로 산출한 결과물이다. 이는 장르 면에서도 원래의 팝 록 외에도 발라드, 힙합과의 결합을 도모하는 등 실험의 장이 되어 주었다.
아홉수라는 미신을 가뿐히 무시하듯 출범 9년을 맞는 올해의 열매가 가장 달콤했다. ‘아이돌’과 ‘밴드’라는 두 키워드 중 후자에 더 무게를 두면서도 이루어낸 결실이다. 무리한 변화 없이 고유의 매력과 개성으로 다시금 증명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앞길에 쭉 햇빛이 비치리라는 예보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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