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youtu.be/jLgTtGlrWHg?si=REvao-jxZr45vcQC
옛날, 아주아주 옛날 신비한 존재들이 있었어요. 모두가 사랑하고 숭배하며, 세상의 일부를 맡아 수호하고 위대한 힘을 떨치는 아름다운 존재들. 예를 들면 바다를 돌보는 바다의 요정이 그랬고, 달을 지키는 달빛의 수호자가 그러했죠.
달빛의 수호자는 머나먼 도시에서 비롯해 도시보다도 넓은 밤하늘을 다스리게 된 존재로, 달과 함께 지고 달과 함께 떠올랐습니다. 달빛의 수호자가 밤바람을 맞을 때마다 수호자의 머릿결에서 찬란한 빛과 포근한 어둠이 달빛에 반짝이는 밤 파도처럼 물결쳤고, 흰 옷자락에 가려졌다 드러나길 반복하는 초승달은 날렵하고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밤하늘을 갈라냈어요. 수호자가 언제나 손에 쥐고 있는 금빛 화살 속 달빛은 밤바다를 보석함처럼 빛나게 했죠. 이따금 밤하늘을 올려다본 이는 그 찬란한 빛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바다의 요정은 바다를 성실히 돌보는 존재였지만, 언젠가부터 바다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해요. 그 하늘엔 구름과 별과 달과... 우아한 초승달에 올라탄 달빛의 수호자가 있었죠.
요정이 바다를 내려다보지 않으니 바다의 생물들은 의아해했어요. 고래가 고개를 내밀고 요정을 부르기도 하고, 바닷새가 노래 부르며 주위를 맴돌기도 했죠. 그러나 바다의 요정은 잠시만 눈길을 줄 뿐 다시 밤하늘로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달을 너무 오래 올려다본 요정은 그만 마음속이 달빛으로 가득 차고 말았던 거에요.
모두가 바다의 요정에게 바다를 돌봐달라고 말했습니다. 용, 정령, 천사, 요정들... 그러나 바다의 요정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조금이라도 더 밤하늘에 가까이 닿고 싶은 듯 드높은 파도로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을 탑을 만들어냈죠.
바다의 요정은 달빛 외의 다른 빛을 보고 싶지 않다며 낮에는 탑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언제나 마지막 햇빛이 저물고 나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탑을 올라갔죠. 서서히 밝아오는 달빛을 받으며, 바다의 요정은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는 달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달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달의 앞에는 언제나 완벽하게 아름다운 존재가 반짝였어요.
바다의 요정은 잠시 바다가 끓고 있진 않은가? 싶어져 바다를 내려보았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요정의 마음이 이렇게 데일 듯 뜨겁게 끓을 리가 없는 것 같았죠. 그러나 여전히 바다는 차갑고, 파도의 탑은 드높이 솟아있고, 바다의 요정은 여전히 달에 닿지 못한 채였죠. 바다의 요정은 참을 수 없는 기분에 사브르를 높이 치켜들어 달을 겨누었어요. 사브르 날의 끝이 달빛에 반짝였고... 그 반짝임이 수호자의 눈가에 와닿았어요. 달을 지키며 하늘을 맴돌던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고개 숙인 적 없던 달빛의 수호자가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죠. 그리고 요정과 수호자의 눈이 마주쳤어요.
그 순간은 찰나였을까요, 천년이었을까요? 눈을 마주친 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바다의 요정은 짐작할 수도 없었어요.
짐작하려는 순간 달빛의 수호자가 움직이기 시작했거든요.
찬란한 머리카락, 반짝이는 화살과 초승달. 그리고 달빛... 바다의 요정은 너무나도 강한 빛에 그만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달이 바다로 쏟아지는 듯한 빛의 폭포 속에서, 바다의 요정은 자신이 눈을 뜨고 이 긴 세월 중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달빛을 마주하고 싶은지, 아니면 계속 눈을 감은 채 달과 맞닿을 듯한 이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고 싶은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환한 목소리를 들었죠. '눈을 떠요.' 바다의 요정은 물기가 어린 눈을 떠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서 내밀어오는 손을 잡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파도의 탑에 많은 이들이 머리를 맛대고 궁금해했습니다. 탑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영원히 잠든 걸까? 영영 떠난 걸까? 그러나 답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다만 달의 뒷면에 바다가 있다는 소문이 바람결에 맴돌다 흩어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