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먼 곳을 바라보는 배우 최우식의 태연한 얼굴
Q 오늘 유튜브 영상 촬영을 위해 ‘산수경석’ 모형을 직접 가져와줬어요. ‘〈기생충〉 돌’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A 현장에 모형이 딱 세 개 있었어요. 무게는 조금씩 달랐고요. 촬영이 끝난 후 탐내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래도 기우(최우식) 줘야지’라는 분위기 속에서 운 좋게 가져올 수 있었죠. 언제까지 〈기생충〉 이야기할 거냐는 말도 듣지만 제 배우 인생 내내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 돌처럼 묵직하게.
Q 오늘 촬영하면서 어떤 상상을 했나요
A 루이 비통 멘즈 컬렉션 F/W 룩을 이렇게 빨리 입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루이 비통이라는 하우스 자체가 주는 ‘플렉싱’도 있고요.
Q 아주 잘 어울렸어요. 실제로 보니 180cm 키가 실감 나네요
A 아이고, 아닙니다.
Q 최우식도 플렉싱하는 게 있나요? 이것만큼은 꼭 좋은 것으로 산다거나, 주기적으로 신제품을 알아본다거나
A 스타일에 관심 없는 건 아닌데 쇼핑을 진짜 안 하는 편이긴 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쿠팡에서 쓰레기 봉투나 주문하려나…. 아! 보드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그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사요. 어릴 때 장난감 선물을 받으면 상자 자체가 주는 무게나 형태감에 설레곤 했는데 보드게임 상자를 쥘 때 같은 느낌을 받아요. 상자를 열었을 때 아기자기하게 구성품들이 진열돼 있는 것도 너무 좋고요. 아무튼 보드게임에는 돈을 아낄 생각이 없습니다. 은근히 비싸요.
Q 영화 〈경관의 피〉(가제)와 〈원더랜드〉가 개봉을 앞두고 있고 드라마 〈그해 우리는〉 크랭크인 소식도 들려요.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A 진짜, 좀, 많이 떨고 있는 상태예요. 어쩌다 보니 한동안 드라마 촬영장을 떠나 영화에 집중했는데 심지어 주연이라니. 최우식의 커리어 그래프를 그린다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어떤 걸 더 갖고 있는지, 다시 확인받아야 하는 단계라고 할까요.
Q 〈그해 우리는〉은 영화 〈마녀〉에서 만났던 김ㄷㅁ 씨와 함께합니다
A 그 사실이 제법 의지가 됩니다. 예전에 만난 적 없는 상대방이면 더 긴장했을 것 같거든요. ‘꽁냥꽁냥’대는 로맨틱 코미디를 해본 적 없기에 더 떨리나 싶기도 해요.
Q 대학생 때 헤어진 커플이 재회하는 현실적인 로맨스를 최우식이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도 돼요. 평소 ‘로코’는 좋아하나요
A 그럼요! 집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보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작품 위주로 보게 되는데 로맨틱 코미디도 보고 나면 행복해지는 장르잖아요. 남의 연애 구경하는 기분이 들고.
Q 혼자 살죠?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볼까, 아니면 홈 시어터로 4K 블루레이를 보는 쪽일까 궁금했어요
A 식사할 때는 무조건 픽사 애니메이션을 틀어둬요. 애니메이션만큼 보면서 행복해지는 게 없어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발성과 연기도 완벽하고요(웃음). 물론 〈코코〉같이 너무 슬픈 작품들도 있지만….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많을 거예요. 어느 시점부터 드라마나 영화를 작품으로 못 즐기고 직업적으로 보게 된달까. 그러다 보면 한 발자국 빠져나오고 싶어지죠.
Q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A 애니메이터인 형 덕분에 어릴 때부터 컴퓨터로 하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친숙하게 지켜봤어요. 〈토이 스토리〉도 1편을 지금 보면 예전엔 어떻게 이 작품에 몰입해서 봤지 싶을 정도로 지금과 기술 차이가 많이 나요. 물론 〈토이 스토리〉는 최고지만요. 정말 최고예요.
Q 팬들이 느끼는 공백은 올해 방영했던 〈윤스테이〉가 많이 달래주지 않았나 싶어요.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역시나 낯선 기분일지
A 〈여름방학〉 촬영 전에 정ㅇㅁ 누나가 해준 말이 있어요. “일단 그냥 해. 그런데 나중에 방송을 보면 깜짝 놀랄 거야. 기억도 못했던 네 모습을 보게 될 거야”라고. 진짜 그대로였어요. 내가 저런 동작을 하고 저런 표정을 지었나, 신기하더군요. 〈여름방학〉이 누나와 방학을 보낸 것이라면, 〈윤스테이〉는 실제 근무하고 일을 마친 뒤 놀았다는 느낌이 커요.
Q 노동에 동원됐다는 느낌이군요(웃음). 게스트하우스 ‘윤스테이’에는 국적, 인종, 직업, 연령대가 다른 손님들이 등장했죠. 한국에 이렇게 채식주의자가 많이 등장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나 싶어요. 밴쿠버에서 살았던 경험이 손님을 맞을 때 도움이 됐나요
A 음식 알레르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는 확실히 있어요. 손님들의 종교를 비롯해 문화적으로 조심해야 할 부분을 챙기는 게 제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음식 알레르기는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거든요.
Q 올해 윤ㅇㅈ 선생님의 〈미나리〉가 〈기생충〉의 성과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 같아요
A ‘받을 분이 받았다’ 싶어요. 조금 쑥스러운 이야기인데 아카데미 멤버로서 투표권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미나리〉를 둘러싼 언론 반응을 보며 어느 정도 수상을 예측했어요. 또 윤ㅇㅈ 선생님은 한국 배우 최초로 연기상을 받으신 거니까, 감독상과 작품상 등을 받았던 〈기생충〉과는 또 다른 기쁨과 놀람이 분명 있죠.
Q 이 거대한 경험이 당신에게 남긴 흔적이 있나요. 혹은 인간적으로 더 넓고 깊게 만든 건 오히려 다른 일들일지
A 〈기생충〉에서 파생한 경험은 제게는 오히려 〈거인〉으로 청룡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았을 때와 비슷하게 남은 것 같아요.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고 운도 좋다는 걸 되새길 수 있게 해줬죠. 올해로 데뷔 10년째인데, 일을 하면 할수록 제 성격이 배우에게 기대하는 어떤 특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느껴요. 그런 면모 때문에 조금이라도 의지가 되고 용기를 주는 일이 생기면 그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크게 받아들이기도 하고요. 미국 영화제에 가서 상을 받다니, 확실히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에게 들려줘도 좋을 이야기이긴 하죠.
Q 최우식의 인간관계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어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게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아침에 일어나서 일이 끝날 때까지 혼자 하는 게 거의 없어요. 나를 근사한 모습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편안하게 개인 시간을 보낼 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옆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고 제가 흐트러질 때 쓴소리도 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제게는 좋은 사람으로 남아요.
Q 다른 사람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건 쉽지 않잖아요. 당신도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는지
A 정말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정말 어렵죠. 가까운 친구들의 칭찬은 실제 표현보다 훨씬 더 큰 칭찬이라는 건 알아요. 항상 서로 욕이나 하지(웃음).
Q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나요. 당신에게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A 몇몇 사람이 떠오르는데요. 정말 둘이 만나서 이야기 듣고 싶은 사람은 〈거인〉의 김태용 감독님이에요. 작품 이후 연락도 간간이 드리고 감독님이 SNS에 제 이야기를 올리는 것도 봤는데 막상 전화하고 뵙자고 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초등학교 때 은사님을 떠올리기만 하고 연락은 못 드리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어떻게 지냈는지, 솔직히 내 작품들은 어떤지, 어떤 걸 더 잘했으면 좋겠는지….
Q 이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게 되면 좋겠네요. 한 릴레이 인터뷰에서 ‘가장 행복했던 촬영장’을 정ㅇㅁ 배우에게 묻던데 어때요. 촬영장에서 행복한 편인가요
A 욕심 있는 배우라면 모든 현장이 어느 정도 부담되고 힘들 거예요. 그래도 〈부산행〉은 즐길 수 있었던 촬영장 같아요. 일단 모든 출연진이 대사가 많지 않았고요(웃음). 촬영 시간도 칼같이 지켜졌거든요. 아침에 눈뜨면 열심히 소리 지르며 좀비로부터 도망치고, 저녁에는 함께 재미있게 놀았던 촬영장이에요.
Q 〈경관의 피〉 원작 소설은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의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에 대해 3대에 걸쳐 이야기해요. 문득 ‘직업인’을 연기하는 최우식은 낯설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필모그래피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A 제가 가진 얼굴에 온도가 있다면 이런 온도의 얼굴은 아직 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데뷔 초반에는 마냥 개구쟁이 같은 역할이 많았고, 〈거인〉 이후에는 아무래도 어둡고 불안한 학생 역을 많이 제안받았죠. 타고난 체형이 어떤 역을 맡을 때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저 자신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요. 가장 중요한 건 물론 관객의 판단이겠지만.
Q 보는 입장에서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온도를 오간다는 느낌이 커요. 〈거인〉 이후에도 〈호구의 사랑〉이나 〈썸남〉에서 코믹한 모습을 보여줬고, 또 〈마녀〉나 〈사냥의 시간〉 같은 작품이 있고요
A 잘하는 것 하나를 계속해서 하며 독보적인 캐릭터로 남을 수도 있겠으나 새로운 최우식을 보여주는 것이 제 큰 목표 중 하나예요. 그러다 보니 의도적으로 역할을 가리지 않고 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어떤 역할을 하든 그 역할 안에서 최고의 모습을 끌어낼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죠.
Q 그럼에도 ‘해맑은 부잣집 도련님 같다’와 ‘불안한 청년 같다’는 평 중에서 마음에 끌리는 표현을 하나 꼽는다면
A 어머니는 당연히 전자를 좋아하실 테고요(웃음). 제 성장 배경을 돌아봤을 때 두 가지 면이 다 어쩔 수 없이 있지 않나 싶어요. 캐나다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괜히 ‘유학파 교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또 그때그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쩔 수 없이 주눅들어 주변 눈치를 살피던 시간들이 있으니까요.
Q 과거의 내가 경험하고 축적한 것들이 지금의 일을 해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죠. 32세의 최우식은 어떤 것을 쌓아갈까요
A 어떻게 해서 30대의 나를 다양하게 그려갈 수 있을지는 이 일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숙제예요. 나이 들수록 만나는 사람이나 가는 곳은 나날이 한정되고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하니까요. 소수와의 만남에서도 경험을 나누고, 가끔 떠나는 여행에서도 최대치를 음미하려 해요. 배우들의 주름에는 삶의 흔적이 묻어나온다고 하잖아요. 얼마 전 영화를 보는데 나는 그런 멋진 주름이 안 생기면 어쩌지? 불현듯 고민되더라고요.
Q 어떤 얼굴로 나이 들고 싶은가요
A 저는 정말 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일이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철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많이 웃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그게 보인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생긴 주름도 예쁘다 하고요. 이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즐기고, 만약에 더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그때는 다른 기쁨을 주는 일을 계속 찾아 웃으며 살고 싶어요. 다행히 요즘은 차츰 카메라 앞에서 노는 법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10년 차가 된 스스로에게 거는 자기 최면일 수도 있지만.
Q 세상의 여러 문제 중 단 하나를 해결할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다면 그 힘을 어디에 쓰고 싶나요
A 모든 질병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그럼 또 인구가 폭증해서 자원이 고갈되는 문제가 생기겠죠? 지구온난화도 걱정이긴 한데 그건 너무 거대한 문제 같고. 솔직하게 진심을 말하면… 반려동물 수명이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초코가 이제 13세인데 보고 있으면 너무 힘들거든요. 초코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 어떡해. 눈물 날 것 같아요.
https://www.elle.co.kr/article/56489
최근꺼라 다들 봤을거 같지만..! 난 일부 내용들만 보고 전체로는 못봤어가지고 이제야 정독해따..
보드게임에 플렉스하는 우식이 ㄱㅇㅇ...ㅋㅋㅋㅋㅋ 마지막 대답은 너무 슬프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