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거나 투영하거나 그리워하거나 — 치바 유다이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만나서 좋았던 세 권
데뷔한 이래, 폭 넓은 배역을 연기하며 ‘카멜레온 배우’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치바 유다이 씨. 그런가 하면 열렬한 ‘독서가’의 일면도 가지고 있어서, 블로그 등에서 보이는 깊은 맛이 느껴지는 글도 책의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길러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작년에 서른 살을 맞은 치바 씨에게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만나서 좋았던’ 책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책벌레’ 어머니의 영향으로 정기적으로 활자를 머리에 집어넣고 싶어진다
— 치바 유다이 씨 하면 독서를 좋아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어느 정도의 페이스로 책을 읽으시는지요?
예전에는 독서주간을 정해 놓던 시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언제나 대본이라는 읽을거리가 옆에 있으니까 책을 사도 ‘쌓아 두기만’ 할 때도 많아요. 어머니가 책벌레라서 저희 집에 놀러 왔을 때에는 곁에 놔둔 대본도 읽어 버릴 만큼 활자를 좋아하세요.
그런 어머니의 영향도 있는지, 대본 이외의 활자를 머리에 집어넣고 싶어질 때도 정기적으로 있어요. 그렇지만 요령이 없어서 바쁜 일상 속에서는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은 독서주간을 정하기보다는 여행이라든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때 책을 들고 가려고 해요.
— 블로그 등 치바 씨 자신이 써내는 글도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독서가 치바 씨에게 있어서 마음의 양식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책은 활자밖에 정보가 없는 만큼 목소리 톤이나 풍경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지요.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해요. ‘아, 이 묘사는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구나.’ 하고 원작과 비교하며 보기도 하고요. 표현 방식을 살피거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서, 블로그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전하고 싶은 게 있을 때, 활자에는 곧바로 전해지는 장점이 있지요. 표현을 다양하게 곱씹어서, 읽는 사람이 사물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넓어지는 장점도 있고요. 소설도 그렇지만 에세이에는 특히 그런 표현의 자유도가 있는 느낌이 들어요. 에세이는 온도가 더 느껴져서 좋아해요.
—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나요?
요즘은 인터넷에서 살 때도 많아졌지만 서점에 가서 고르기도 해요. 이북은 만화책밖에 읽지 않아서 그 이외의 책은 기본적으로 종이책으로 읽고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가르쳐 준 작품
—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특히 만나서 좋았다고 느끼는 책을 세 작품 알려 주세요.
거슬러 올라가면 먼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독서감상문 과제도서였던 야마다 에미의 《나는 공부를 못해》예요. 몇 작품 나란히 놓인 과제도서 중에서 제목에 끌려 내용도 하나도 모르고 골랐는데 당시에는 읽어도 뜻을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웃음)
고등학생이 되어서 다시 읽어 봤더니, 주인공 히데미라는 남자가 엄청 멋있다는 걸 깨달았죠. 성인 여성과의 연애라든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든가. 공부는 못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구나, 하는 걸 가르쳐 준 책이었어요.
야마다 에미 《나는 공부를 못해》(※ 한국어 번역본 있음/ 현재 절판)
지루한 어른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공부보다도 더 멋지고 중요한 것이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히데미는 공부는 못하지만 여자들에게는 인기 있다. 왠지 모르게 편치 않게 느껴지는 학교, 바에서 일하는 연상의 여성 모모코와의 연애. 쿨하고 멋진 히데미의 서툰 고교 생활을 그린 청춘소설.
— 야마다 에미 작가의 책은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어른스럽다고 해야 할지 조금 야한 묘사도 있는 것 같은데 과제도서로 선정된 것이 신기하네요.
그렇죠. 물론 어른이 된 뒤에 읽어도 즐길 수 있다고 보지만, 역시 저는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에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히데미에 대한 존경심도 있고, 다감한 시기에는 특히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당시 저는 변신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전혀 다른 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해서 읽곤 했기 때문에, 그런 분에게도 마음에 와닿을 것 같아요.
— 변신하고 싶은 욕구라니 의외네요.
그런가요? (웃음)
좋아하는 밴드의 곡에 제목이 등장해서 집어든 한 권
— 두 번째 책을 말씀해 주세요.
《나는 공부를 못해》하고는 다른 방향에서 오쓰키 겐지의 《구미 초콜릿 파인》도 좋아해요. 제가 긴난 BOYZ라는 밴드를 좋아하는데, 가사에 이 책 제목이 나온 것을 계기로 읽었어요.
별 볼 일 없는 매일을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 주인공이 친구와 셋이서 밴드를 결성하는 이야기인데요, 그 관계성이 무척 좋아서 제 자신을 겹쳐 보며 읽었죠. ‘자신을 겹친다’고 해도 아까 말한 히데미하고는 다른 방향이지만요. 저는 남학교 출신이라서 요즘 말하는 ‘리얼충’에 내성이 없었어요.
오쓰키 겐지 《구미 초콜릿 파인: 구미 편》
고등학교 2학년 오하시 겐조는 학교에도 집에도 녹아들지 못하고, 격한 자위행위와 마니악한 영화와 록의 세계에 빠져서 별 볼 일 없는 매일을 보내고 있다. 주위에 있는 것을 되돌아보기 위해, 겐조는 어느 날 친구들과 록 밴드 결성을 결의. 오쓰키 겐지의 자전적 대하소설인 이 작품은 구미 편, 초콜릿 편, 파인 편의 총 3부작이다.
— 이른바 ‘리얼충 폭발해 버려.’였나요?
그럴지도요. (웃음) 요즘도 다시 읽으며 생각하는 게, 사람과 접하는 방법이라든지 그 시기에 생긴 축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남아 있지요.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읽으면 그리움을 느끼며 즐길 수 있어요.
— 청춘이 되돌아오는 느낌이겠군요.
‘그럴 때도 있었지.’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청춘은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미 초콜릿 파인》이 그런 활력이 된다면 좋겠어요.
책도 개그 소재도 좋아해서 함께 출연할 때 팬심을 감추고 임한 저자
— 나머지 한 권은 어떤 작품인가요?
오도리의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씨가 쓴 에세이 《삐딱한 황혼》이에요. 저는 소설 말고 에세이도 좋아해서 자주 읽는데, 에세이는 어른이 된 뒤의 사물이나 사람과 마주하는 법에 대해 더욱 생각해 보도록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히 이 에세이는 공감한다기보다 어딘지 구원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삐딱한 황혼》
개그 콤비 오도리의 와카바야시 마사야스가 잡지 <다빈치>에서 연재한 내용에 새로 쓴 에세이를 추가한 ‘자아 찾기’ 완결편. 자의식에 휘둘리고 ‘살아 있어도 전혀 즐길 수 없는 지옥’에 있던 와카바야시가 아저씨가 되어 자신과 사회를 직면하여 도달한 끝에 대해 쓴 이 작품은 ‘살아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이 꼭 읽어 볼 책이다.
—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는지요?
예를 들어 뭔가 잘못을 저질러서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좀 위험해 보이는 사람을 두고 다들 “왜 그렇게 된 거야?!” 하고 뭐라고 할 때가 많잖아요. 하지만 와카바야시 씨는 그러지 않아요. ‘(내가) 후드를 뒤집어쓴 저 사람이 됐을 수도 있어.’라고 하죠.
그 글을 읽었을 때, ‘표리일체’라는 와카바야시 씨의 사물을 보는 시각을 건져 올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와카바야시 씨는 그저 단순히 ‘서브컬처’라든가 ‘리얼충’에 대해서 ‘삐딱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겪는 소소한 마찰 같은 것에 대한 표현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개그맨이 ‘이렇게 직설적인 내용을 써도 괜찮은가?’ 싶은 점도 있지만, 오도리의 라디오를 들으면 ‘아, 이 사람들, 전혀 아무렇지도 않네.’ 하는 느낌도 들어서 좋아해요. (웃음)
와카바야시 씨는 책 외에도 개그 소재도 좋아하고 라디오도 듣고 있거든요. 버라이어티에서 함께할 기회가 있었을 때, 어떻게 와카바야시 씨에 대한 팬심을 감추고 프로그램에 임할지 고심했던 건 좋은 추억이에요. (웃음)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 얽매이는 건 아깝다
— 마지막으로 치바 씨에게 책이나 이야기는 어떤 존재인가요?
책뿐만 아니라 영화도 그렇지만, 사고방식을 여유롭게 해 주는 존재라면 좋겠어요.
작품을 읽거나 관람했을 때의 감상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다들 이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이렇게 생각해야 돼.’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이는 건 아까워요.
물론 자신이 느낀 걸 자기 안에서만 소중하게 간직해 두면 평화롭고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거친 계절의 소녀들이여.》(※)처럼 때로는 의논하거나 다 같이 의견을 나누는 것도 중요해요.
물의를 빚기도 하고 부족한 것을 메워 주기도 하고. 책이나 이야기는 ‘기호품’으로는 정말 평화롭고 풍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친 계절의 소녀들이여.》 오카다 마리 원작, 에모토 나오 작화
오카다 마리의 원작 ․ 원안에 의한 만화 및 애니메이션 작품. 고등학교 문예부에 소속된 여학생 다섯 명이 문예부에서 다룬 책의 성적인 묘사를 계기로 서로 의논하고 성에 휘둘리며 고민하는 군상극.
30대에는 새로운 경지로 ‘실패해도 괜찮으니 도전’
— 2월 21일에는 주연을 맡으신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붙잡힌 살인귀>도 개봉했습니다. 전작의 섬뜩한 연기가 화제를 부른 연속살인귀 우라노 역의 나리타 료 씨와 대치하는 형사 카가야로 긴박감 넘치는 역을 연기하셨지요.
이번에 치바 씨가 연기하는 카가야와 나리타 씨가 연기하는 우라노는 마치 마주 보는 거울 같은 캐릭터였는데요, 어떻게 연기하셨는지요?
카가야는 자신의 기분이나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하고 싶다’를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이 아니라 속에 묻어 두는 타입의 인간이지요. 그것은 과거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데, 그래도 사람들과 얽히며 지내는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 (우라노와 달리) 남에게 도움을 받을 줄 알아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구원받아 온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며 연기했습니다.
— 나리타 씨와 함께 연기하고 느낀 점은?
나리타 군의 존재에 도움을 받은 면도 있었어요. 저랑은 다른 부분이 엄청 많으니까 모든 게 자극이 되고,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사람이고, 또…… 귀엽지요. (웃음) 남의 품에 들어오는 것이 엄청 능숙해서 약았다 싶어요.
저는 배역에 지나치게 집중해서 깊이 들어가 버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좁은 시야로밖에 사물을 보지 못하게 되기도 하죠. 그럴 때 나리타 군이 (마음을) 비집어 열고 접해 주면 ‘그래, 됐어.’ 하고 좋은 방향으로 개운해지거든요. 그런 뒤에 연기에 임하면 편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로 나리타 군에게 크게 도움을 받았죠.
— 그렇군요. 작년에 서른이라는 고비를 맞았는데요, 30대의 활동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지금은 어느 쪽이냐면 영상 쪽 일이 많지만, 장르의 담장은 계속 없애고 싶어요. 성우나 내레이션 일도 좋아하고 라디오도 해 보고 싶고요. ‘배우니까’ 하는 생각에 연연하지 않고, 제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일이나 처음 하는 일은 실패해도 괜찮으니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습니다.
독방 생긴 지 두 달 된 기념으로 예전에 번역해 둔 인터뷰 하나 올려
바치가 책 이야기를 조곤조곤 해 줘서 좋아하는 인터뷰야
링크로 들어가면 다른 사진도 많이 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