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절망, 시스템과 인간이 교차하는 연기적 시험

사진=애니 '나 혼자만 레벨업' 예고편 캡처
한국 콘텐츠의 확장사는 이제 하나의 진화 과정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작고 닫힌 서사였던 이야기들이 점차 다른 매체와 장르를 거치며 세계로 나아간다. 변화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가 바로 추공 작가의 '나 혼자만 레벨업'이다. 한때 웹소설 플랫폼의 인기 연재물이었던 작품은 웹툰으로, 애니메이션으로, 그리고 마침내 넷플릭스 실사 시리즈로 변모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오늘의 한국 콘텐츠 서사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호흡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판타지의 외형 속에 현실의 불안과 구조적 압박을 담아내며, 작품은 '성장'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다시 현대의 언어로 번역했다.

성진우는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헌터들 사이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 늘 낙오의 끝자락에 머무는 E급 헌터로 등장한다. 생존조차 버거운 인물이 어떻게 세상을 뒤흔드는 존재로 변모하는가. 그 변화의 과정이 바로 서사의 본질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마주한 '시스템'은 축복이 아니라 명령이다. '퀘스트를 수행하라. 성장하라.' 성진우는 명령에 복종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초월해간다. 인간의 의지와 비인간적 시스템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야기는 철학적 깊이를 얻는다. 성장의 의미는 레벨 상승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쓰는 행위다.
웹툰으로 재탄생한 '나 혼자만 레벨업'은 서사의 감각을 새롭게 확장시켰다. 장성락 작가의 세밀한 작화는 절망의 어둠과 희망의 빛을 정교하게 교차시켰다. 던전의 어두운 색채는 성진우의 내면 자체처럼 보였다. 회를 거듭할수록 독자들은 마치 게임 속 세계를 직접 체험하는 듯한 몰입감에 빠졌다.
이후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세계를 또 한 번 입체화했다. 동적인 연출과 음악, 성우의 호흡이 결합되며 한국형 판타지의 가능성을 넓혔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이로써 하나의 서사적 브랜드가 되었다. 웹소설로 시작된 한 작가의 상상력은 이제 세계적 IP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이 이야기가 현실의 배우와 화면 위로 옮겨진다. 넷플릭스 실사 시리즈로 제작하게 된 것이다. 주인공 성진우 역을 맡은 배우는 변우석이다. 변우석의 캐스팅은 흥행 카드 뿐만 아니라, 정서적 완성도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변우석은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감정 연기로 이미 대중의 주목을 받아왔다.

변우석은 지난해 종영한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인상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 밴드의 보컬 류선재로 분한 변우석은 사랑과 상실, 청춘의 열망과 슬픔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적 설정 속에서도 변우석의 연기는 현실적이었다. 한 시대의 감정과 시간을 통째로 품은 듯한 변우석의 표정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선재 업고 튀어'는 변우석이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감정의 배우'로 성장한 작품이었다. 극 중 변우석은 청춘의 불안을 정제된 슬픔으로 변환시켰고, 사랑을 성숙의 시작으로 그려냈다. 변우석이 지난 감정의 깊이는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성진우는 청춘의 사랑을 잃은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잃은 인물이다. 변우석은 이번 작품에서 그 상실을 연기해야 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의지의 결핍이다. '선재 업고 튀어'에서 시간의 슬픔을 연기했다면,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는 세계의 냉혹함을 견뎌야 한다.

변우석의 얼굴에는 상반된 에너지가 흐른다. 따뜻한 온기와 냉정한 이성, 인간적 연민과 비현실적 고독이 공존한다. 이런 얼굴이야말로 성진우에게 필요하다. 강함과 약함,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이런 감정의 층위를 지닌 배우가 필요했다.
실사화는 언제나 위험한 도전이다. 원작의 팬들이 구축한 상상 속의 이미지와, 실제 배우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현실감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그러나 변우석은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배우다. 변우석은 시각적 화려함보다 감정의 흐름으로 인물을 구축한다. 변우석의 연기는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넷플릭스 시리즈로서의 '나 혼자만 레벨업'은 시각적 스케일과 정서적 리얼리티의 균형을 요구한다.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올 때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설득력이다. 던전의 어둠 속에서도 인간의 눈빛이 살아 있어야 한다. 변우석의 연기가 그 리얼리티를 완성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는 낯설지 않다. 게이트와 괴물, 시스템의 명령은 결국 현대 사회의 은유다. 인간이 끊임없이 성장하길 강요받는 현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세계. 성진우의 싸움은 결국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다. 작품은 비현실의 언어로 현실을 말한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궤적 또한 성진우의 여정과 닮아 있다. 웹소설로 시작해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확장된 이 IP의 진화는 한국 창작 산업의 '레벨업' 그 자체다. 형식을 바꿀 때마다 새로운 감각을 획득하며, 한국 서사는 세계의 문법으로 번역되어 갔다.
변우석에게 이번 작품은 단지 차기작이 아니라, 또 하나의 퀘스트다. '선재 업고 튀어'에서 감정의 진폭을 증명했다면, 이번엔 그 감정을 세계의 언어로 확장해야 한다. 단 한 사람의 성장 서사를 전 세계 시청자와 공유하는 배우로서, 변우석의 연기는 한국 배우들에게 새로운 지점을 상징할 수도 있다.
또한 이번 작품은 한국 배우가 글로벌 플랫폼에서 어떻게 자신의 연기를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라는 세계적 창구를 통해, 변우석의 성진우는 지역적 서사에서 세계적 공감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팬 서비스가 아니라, 연기적 도전이자 문화적 의미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절망을 견디고, 시스템을 이기며, 자신을 다시 일으키는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인간을 연기하는 또 다른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변우석이 성진우로서 마주할 퀘스트는 단 하나다. 스스로를 초월하는 것. 변우석은 성진우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성장의 상징을 연기해야 한다. 변우석이 그 여정을 완성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조용히 속삭이게 될 것이다. "이건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나 혼자만 레벨업'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다. 시스템을 이기려는 인간,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를 일으키는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을 연기하는 또 한 명의 인간. 변우석의 성진우가 그 여정을 걸어갈 때, 우리는 다시금 그가 보여줄 다음 레벨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성장의 서사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은유라는 사실을. 던전의 어둠 속에서 다시 눈을 뜨는 성진우의 얼굴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일상 속에서 버텨내는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기사 원문 출처
https://www.nc.press/news/articleView.html?idxno=576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