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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리뷰북동의]준영이가 조금만 덜 다정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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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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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준영이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에 이유를 묻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있을 때면 드는 생각이야. 차라리 준영이가 예민미 넘치고 제멋대로인 피아니스트였다면 이렇게 말 하나 행동 하나를 재단받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곤해. 조금만 덜 다정했다면 준영이도, 송아도 덜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준영이의 다정함에 이끌려 브람스를 달리고 있고, 드라마 분위기에 지금의 준영이보다 어울리는 캐릭터는 없었을 거야. 그런만큼 다정함은 준영이의 본질이라 생각해. 덜 다정했다면-하는 가정 따위는 의미없는. 그 다정함 때문에 준영이 스스로와 준영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끔은 아팠음에도 지켜왔고, 지켜갈 본질.


  초반회차에서 그려진 준영이의 다정함은 그자체로도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 그러니 그 다정함이 송아를 향할 때 송아도, 송아의 시점에서 드라마를 보는 우리도 매료될 수밖에. 심지어 이때는 송아나 우리가 준영이를 둘러싼 복잡한 인간관계나 힘든 가정사를 보고 들어도 단편적일 뿐더러 아직은 남의 이야기에 가까웠으니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어. 4화까지는 '월드클래스'라는 수식어에 준영이의 힘든 상황들이 가려져 있었고 5화에서야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지. 그래서 5화 마지막 무렵인 돌담길에서 송아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준영이가 말을 돌리지만 '그래도 안 좋은 일이 없으면 좋을 텐데'라고 웃어 넘겼어. 나도 마찬가지로 돌담길에서 두 사람의 데이트가 마냥 예쁘고 즐겁기만 했고. 


  그런데 복습을 하면서는 준영이가 말을 돌린다는 사실에 집중이 되버려. 왜냐하면 6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준영이를 옥죄는 가정사와 불안정한 인간관계, 급타령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고 송아와 우리는 더이상 준영이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거든. 우리는 이미 준영이의 상황이, 힘들다는 말로도 부족할만큼 힘든 걸 알고 있어. 차마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준영이는 행여나 송아가 오해하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많은 이야기들을 해. 7화 벤치에서 트로이메라이의 의미, 11화 대전에서 아버지에 관한 가정사 등 대부분의 이야기를(이전에 2화 이자까야에서 콩쿨의 정적 얘기나 4화 토크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지. 준영이답지 않게도 말이야). 문제는 털어놓는다고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거야.


  꽃노래도 한두번이라고, 좋은 소리도 자주 들으면 질리는 마당에 안 좋은 소리라면 들어볼 것도 없지.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가 잘 지내고 있노라 생각했으면 좋겠다던 준영이로선 송아에게 '일이 있었다'는 말로 뭉뚱그릴 수밖에 없을거야. 그런 준영이의 다정함은 송아가 원하는 다정함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위태로워보여. 게다가 준영이의 다정함은 진작에 끊어냈어야할 정경이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삐걱거림은 당연한 결과야. 당장 13화에서도 준영이는 정경이와 택시를 타고 송정희 교수네에 같이 가주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비까지 맞으며 기다려줘. 그무렵 송아는 두 사람을 목격한데다 역시나 우산 없이 비 속에 있고. 지켜보는 나는 불과 11화에서 이제 비 걱정하지 말라던 준영이의 다정한 말이 떠올라 송아의 처지가 더 서럽게 느껴져.

  설상가상으로 솔직하게 말한답시고 정경이를 돈, 피아노 때문에 욕심내지 못 했다고, 나는 너를 보고싶지 않아도 그럴 수 없으니 니가 나를 놓으라고 해. 정경이에겐 그 말이 꼭 부채감이 없었다면 관계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말 같고, 정경이가 놓지 않으면 준영이가 가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리지. 그런데 준영이가 끝끝내 하는 말은 '제발 놔줘'였어. 이 말에서 정경이는 이미 준영이가 저 멀리로 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을 거야. 그래서 붙잡겠답시고 꺼낸 얘기는 결국 돈. 또다시 부채감으로 준영이를 옭아메려 하고 있어. 자기가 가진 것, 베푼 것을 이용할 줄 아는 재벌의 사고방식을 지닌 정경이와 자신이 받은 것의 무게를 아는 준영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부채감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어.

  부채감을 비롯해 준영이를 둘러싼 감정과 상황은 만약 준영이가 다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많이 달랐을 거야. 부모님 빚에 시달릴 일도, 경후에 발목 잡힌 듯 부채감을 느낄 일도 없었겠지. 그랬다면 죽기보다 싫은 콩쿨에도 나가지 않았을 테고, 한국에서 도망치듯 떠나지도 않았을 테고, 7년 간 호텔방을 전전하면서 주 2, 3회 씩 공연을 하다 지쳐가지도 않았을 테지. 스스로의 안녕을 위해서 이쯤이면 다정함이 메마를 법도한데. 그럼에도 준영이는 여전히 다정해. 특히 송아에게. 준영이 스스로도 모르는 끌림이 있긴 했지만 준영이가 한 행동의 대부분은 다정함이 깔린 행동들이야. 악보를 일부러 떨어뜨리고, 수고했다며 인사해주고, 친구들 일에 상처받을까 눈을 가려줘도 보고, 끝내 마주한 진실에 울고싶은 송아를 위로해주고, 생일파티에 함께 가주고, 사인씨디를 가져다주고, 말없이 손잡아주고, 반주를 자청하는 것까지.



  부모님을 대하는 속없고도 묵묵한 다정함이 때로는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송아에게 내보인 원치않는 방식의 다정함이 상처를 주기도 하고, 정경이를 끊어내지 못한 다정함이 서운함을 남기기도 해. 하지만 준영이는 엄마에게 힘들다 말하며 눈물을 쏟아냈고, 송아에게 말보다 음악으로 송아맞춤의 위로를 건넸고, 이사장님의 부탁을 거절하면서까지 정경이를 끊어내고 있어. 다정하고도 확실하게.  당장은 송아와 삐걱대고 힘든 일들이 쌓이고만 있는 것 같아도 준영이는 그 속에서 잘 성장하고 있어. 그런 준영이를 둘러싼 일체의 가정이나 아쉬움은 중요하지 않아. 무엇을 가정하고 무엇을 아쉬워하든 준영이는 준영이니까.

'남들이 뭐라하든 니가 행복한 쪽으로 결정하면 되는거야'라는 송희의 말은 그래서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 될 수 있을 거야.
tmi로 내가 준영이와 송아의 꽉 닫힌 해피를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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