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호는 편의점씬만 봐도 준영이가 속에 있던 말을 털어놓으면
항상 듣는 입장이었고, 아마 여기서 오는 피로감도 그동안 없진 않았을거야
아무리 좋아하는 친구 사이라도 이런 관계에 부담이 없을 수 없으니까
더군다나 현호는 정경이와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연애하는 내내 애인의 감정을 다 받아내던 입장이기도 했음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에 보답해야한다는 부담도 있고
스스로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남들의 감정을 받아내는 데 익숙한 애였으니
어쩌면 가장 위험한 시한폭탄으로 자라왔다고 말할 수 있을듯
그런 한현호가 15년간 봐온 박준영은 항상 진실한 사람이었는데
상대방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감춘 게 다름아닌,
자신이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애인에 대한 짝사랑임
현호 입장에서는 그 감정을 믿을 수도, 인정하기도 솔직히 어렵지
1차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정경이를 사랑하고 노력해왔는지
준영이가 안다면 처음부터 짝사랑을 하지 못했을텐데라는 마음이 들 수박에 없음
그 다음에는 15년간 지켜본 친구의 전혀 다른 모습(거짓말)으로
내 애인이 흔들린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음에 속이 상할 거고
(준영이를 무조건 탓하는게 아니라 그런 준영이나 정경이를
눈치채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한 분노도 분명 있겠지)
'친구놀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한현호는 박준영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얕은 우정이었다?
아니, 소중한 친구니까 더 큰 배신감이 드는거지
현호 입장에서는 모든 일이 터지기 전에
정경이를 붙잡고, 트리오 관계를 바로잡아볼 시간이나 기회가 없던거니까
간혹 정경이가 먼저 키스했고, 현호가 먼저 뉴욕 질문했으니
준영이는 그냥 끌려간거 아니냐 억울하다 하는데
준영이도 어디까지나 본인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거지만
스스로 침묵을 선택한 것도 사실임 그에 따른 후폭풍도 같이 책임져야지
다 지나고 난 뒤에야 '난 널 잃고싶지 않았어'라는 준영의 말은
솔직히 너무 의미 없음
특히 '정경이 더이상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반주도 할 수 있는 거야'라는 말은
당장 현호 입장에서는 어이없게 들릴 수 밖에 없는 거고
회복시킨다한들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우정인데
현호는 현호대로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상황 정리하고 있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