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주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8회 지금 다시 봤고, 무척 잘 쓴 회차라는 생각이 들었어. 준영의 행동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캐릭터 붕괴가 아닌 일관적인 주제를 향한 응집된 회차라는 생각. 이 회차의 제목이 Con fermezza: 확실하게, 분명하게 (Firmly)라는 걸 고려하면.
결국 8회는 "확신"에 관한 회차인 거야. 송아의 경우에는 이 점이 무척 분명하게 드러나. 좋아하는 사람과 나의 재능, 둘 다 확신이 필요한 분야지만 절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분야잖아. 송아는 준영에게 좋아한단 고백도 했지만, 그에겐 기다려달라는 말을 들은 상태. 자기 재능엔 확신 제로.
심지어 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경에게 마스터클래스를 받고, "머뭇거리는 느낌이 난다. 확신있게 연주했으면 좋겠다" 라는 조언을 받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확신을 가질 수 있나요?" 라고 묻지만, 정경도 대답을 못함….(정경이도 확신 없긴 마찬가지임) 거기에 실기는 꼴찌이고. 준영 마음에도 자기 실력에도 확신이 너무 없음. 근데 거기 준영이 와서 빨리 가도록 할게요, 라고 해서 마음에 약간 희망이 생기는데.
거기다 더해 친구 민성은 "좋아하는 여자가 해달라는데 반주 왜 안 해주냐" 라고 하고, 송아는 그 말에 혹시나 싶어 준영에게 은근히 반주 얘기 꺼내지만, 준영은 이미 유교수에게 네가 반주해주면 그 여자애에게 오히려 해롭다는 말에 모르는 척함. 송아는 이런 사정 모르니까 준영에게 섭섭함. 이게 내 반주 안 해줘서 섭섭하다는 게 아님. 민성이 “좋아하는 여자라면 춤도 춰줄 거다” 했기 때문에 ‘나를 안 좋아하는구나’ 라는 불확신의 상태로 빠져버린 것임.
그런 상태에서 동윤이 자기 좋아한단 고백을 하니까, 너무 늦어버린 말에 눈물이 나와. 이 부분은 나도 애매하긴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확신을 못 받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고백을 받으니 자기 마음이 어떤 건지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함.
준영의 마음은 송아보다는 좀 더 복잡하고 은근하게 표현되어 있음. 겉으로 볼 땐 준영이 훨씬 자기 확신이 있는 상태여야 함, 재능도 월드클래스로 인정 받고 송아에게 좋아한단 고백도 받았으니까. 그런데 유교수는 준영의 재능을 후려치고 심사위원의 마음에 고르게 드는 연주를 하라고 함. 네 맘대로 치면 콩쿨 안 될 거라는 말이지. 거기서 준영의 확신은 금이 갈 수밖에 없음.
게다가 박과장이 와서 너 급 떨어지고 있다 이제 그러기 전에 다시 붙잡아라 이런 말을 함. 그러지 않아도 흔들렸던 준영의 마음이 더 흔들리는 계기가 됨. 재능이란 뭘까 그런 것도 안정감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함.
거기에 자기를 좋아한다는 확신의 말을 줬던 송아조차도 계속 밀어내는 거 같음. 자기도 송아 좋아하는 자기 마음에 확신이 없는데 송아도 마음 알 수 없게 행동하고 급이 안 맞으니까 옆에 설 수 없다고 하고. 게다가 준영은 실기 1등이어도 역시 안정감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의미없다는 말을 함. 하지만 송아는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그 말도 서운해 함. 송아는 자기가 자신없다는 말을 준영에게 했지만, 준영은 성격상 입장상 그것도 못함. 그러니까 연애라는 거대한 불확실한 사건 앞에서 준영도 깨져버린 것임. 그래서 그러면 송아 씨에게 못 간다는 말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남.
각각 이 상태에서 송아는 팀장님을 만나서 준영이를 믿어야 한다는 말을 들음. 준영은 정경을 만남. 정경도 자기 입장의 불확실성을 호소함. 그러면서 그 시점에서 준영은 드디어 확신을 획득했던 거야. 나는 정경이 아니라 송아를 좋아한다는 확신. 그래서 그 마음을 빨리 전하고 싶음.
그래서 리허설룸 씬 장면으로 이어지면 준영은 미괄식 인간이어서 본론을 먼저 얘기하지 않고 자기가 그 본론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함. 나는 정경과의 마음을 정리했고 마음의 빚을 갚고 싶고 그래서 반주를 해주기로 했고 설명하는데 송아는 그 말의 뜻을 오해하고 그에게 멀어지려 함. 준영은 다급해져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송아에게 확신을 주려 함. 그게 네 번의 고백인 거야. 한 번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네 번의 고백. 그리고 넘쳐 흐르는 마음을 담아서 키스.
8회는 결국 두 사람이 불확실을 넘어서 확신으로 가는 과정을 그리려고 했던 것임. 거기서는 갈등도 있고 준영도 송아도 엇갈리게 행동하기도 했음.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예술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에서는 불확실한 연약한 존재라는 걸 작가님은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결국 확실하게, 분명하게 행동하는 엔딩으로 이어졌던 거지. 드디어 확신을 얻은 사람으로서…딱 극의 반에 이르렀을 때. 이게 완성형은 아닐 것이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방황은 있겠지만, 이렇게 얻어낸 확신이 그들의 예술에도 이어지는 과정이 후반부에 펼쳐지지 않을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