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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리뷰] 후원받아 꿈 이룬 피아니스트, 그는 왜 불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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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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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9]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준영의 '빚진 마음'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송주연 기자]


제법 가을이다. 아침 저녁이면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고, 낮 동안의 열기도 식어가는 요즘. 가을이 오는 이 느낌은 매년 내게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올핸 쓸쓸함이 예전만큼 나를 사로잡지 않는다. 바로 지난 8월 31일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참 따뜻하다. 조금 얄밉게 구는 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함께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켠이 포근해져 온다. 대부분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그려지는 재벌까지도 이 드라마에서는 품위있고 따뜻하게 그려진다.


드라마 속 경후문화재단 이사장 나문숙(예수정)은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음악도를 후원한다. 재단의 말단 인턴사원들에게 밥을 사주며 '맛있는 밥 사주는 할머니'라고 생각하라 할 정도로 훈훈한 인물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도움의 의도도 꽤 순수해보인다.


그런데 이 따뜻한 할머니 덕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드라마의 주인공 박준영(김민재)은 지난 6회 방송 분서 문숙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피아노요. 칠 때마다 건반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저 피아노 때문에 단 한 번도 제 마음을 따라가 본 적이 없었었어요. 갖고 싶은 거 탐나는 거 그냥 다 참고 견뎠습니다."


도대체 준영은 왜 자신을 후원해주는 이의 손길을, 그를 키워준 피아노를 왜 이토록 무겁게 느껴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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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받았을 때 드는 또 다른 마음


피아노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준영은 예술중학교에 입학해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워간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은 늘 그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꿈을 포기하려던 찰나,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바로 나문숙 이사장이다. 준영은 경후문화재단의 꿈나무 지원사업 1기 장학생이 되고, 각종 콩쿨에서 수상을 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준영처럼 평생의 후원자 덕에 꿈을 이루고 인생이 달라졌다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마땅하다고 여길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감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때 느끼는 긍정적인 정서다. 감사는 개인의 심리적 안녕감을 높여주고, 우울, 불안 등 부정적 정서를 감소시켜주는 것은 물론, 대인관계의 질을 향상시키고 친사회적 행동의 동기를 높여주는 매우 좋은 정서다.


그런데 준영의 감정은 좀 다르다. 감사하는 듯 하지만, 어딘지 불편해 보인다. 6회 준영은 마침 돈이 필요했던 때 입금된 반주비를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쾌하며 돌려주려 한다. '사고만 치는' 아버지의 빚을 경후재단에서 대신 갚아준 것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도 준영은 발끈하면서 화를 낸다.


준영은 왜 도움을 받았으면서 불편해하고 심지어 화까지 냈을까. 최근 심리학자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종종 감사와는 다른 정서를 경험함을 알아냈다. 이 마음은 긍정적인 정서인 감사와는 다르게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통제당하고 있는 듯한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도움을 받은만큼 되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과도하고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도움을 받고도 기분 좋게 감사하기보다는 어떤 불편함을 느낀다. 도움을 받았을 때 느껴지는 이런 또 다른 마음을 심리학자들은 '빚진 마음(indebtedness)'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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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은 '빚진 마음'


'빚진 마음'은 도움을 받은 후에 불공평을 회복하기 위해 보답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닌 부정적인 정서로 정의된다. 빚진 마음의 크기가 클수록 불편감은 커지고 이를 감소시키고자 하는 행동의 동기가 증가된다. 때문에 빚진 마음을 느낄 때 사람들은 도움에 보답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느낀다.


드라마 속 준영이 사로잡혀 있는 정서가 바로 이 빚진 마음이다. 2회 준영은 "콩쿨을 즐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하나는 상금으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결국 포기하려 했을 때 손을 내밀어준 한 분을 위해서였다 (…)나를 도와주신 분이 보람을 느낄 수 있게"라고 내레이션 한다. 이는 준영이 도움을 받은 후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음을 의미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준영의 빚진 마음엔 '미안함'이 더해진다. 재단의 지원사업이 시작된 건 친구 정경(박지현)의 어머니가 사망한 직후였다. 재단의 지원사업은 역시 피아니스트였던 정경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이를 준영은 "내게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왔던 그 돈은 어떤 아이의 슬픔의 값이었다"(2회) 받아들인다.


"그 아이의 비극이 내게 행운이 됐다"고 여기는 준영은 이제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즐길 수 없다. 죄책감과 빚진 마음이 뒤범벅된 채로 준영은 이 마음을 갚기 위해 연주한다. 때문에 준영에게 재단에서 제공한, 정경 어머니의 이름이 새겨진 피아노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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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마음'에 사로잡힐 때


한 번의 도움도 아니고 평생토록 도움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준영에게 빚진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커져 가는 그 빚진 마음은 피아노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준영의 마음까지 침범해 들어간다. 그는 더 이상 연주를 좋아할 수 없다. 그걸 갚기 위해 자신이 만족하는 연주보다 다른 사람이 만족하는 연주를 하기 위해 애쓴다.


이처럼 빚진 마음에 짓눌린 준영은 자신의 재능을 축복이라 여기지 않는다. 5회 그는 채송아(박은빈)에게 이렇게 말한다.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죠. 나한테도 재능이 없었더라면 그랬으면 모든 게 더 나아졌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주 자주."


이런 준영은 연주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때문에 오랫동안 정경을 좋아해왔던 마음 역시 그냥 '참고 견딜' 뿐이며 송아를 향한 마음에도 무척이나 신중하다. 4회 "그러시겠지. 넌 니 생각이라는 게 없으니까. 넌 니가 원하는대로 해본 적 있어? 한 번이라도!" 라는 정경의 날 선 말은 준영의 내면을 꿰뚫는 아픈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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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마음'을 털어낼 때


참으로 다행인 건, 그가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준영은 재능은 없지만, 바이올린을 너무나 사랑하는 송아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직면하기 시작한다. 2회 준영은 '알고 있었지만 마주하기 싫어 차라리 외면해왔던 사실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이 다음은 또 무엇일까'라고 생각한다. 알 수 없이 자신을 짓눌러왔던 그 마음들을 하나씩 마주해보겠다는 의미였다. 그가 이런 준비를 해가고 있을 때 송아는 매우 적절한 질문을 던져준다.


"다른 사람 말고, 준영 씨 마음엔 드셨어요?" (2회)


이 질문은 준영에게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했을 것이다. 6회 준영이 문숙에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고, 돈 문제로 애를 태우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장면은 그가 마침내 '참고 견디기'를 그만두기로 했음을 선언한 것과 다름 없었다. 이는 송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준영이 찾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4회 송아와 준영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누굴 도와줄 때도 마찬가지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해도 이왕이면 도와준 보람이 있기를 기대하는 거니까." (송아)


"이사장님은 저한테 장학금 주실 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는데." (준영)


"이사장님은 준영 씨가 피아노를 치면서 행복하게 사는 거 그걸 보시고 싶었을 거예요."(송아)


어쩌면 보답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한 빚진 마음이 오히려 도움을 준 상대에 대한 보답을 막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준영이 '빚진 마음' 대신 '나는 이정도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될 때,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연주를 하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보답을 하게 되지 않을까.


드라마가 끝나갈 때쯤이면 준영 스스로가 만족해하는 '행복한 연주'를 들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그 행복이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져 깊어져 가는 가을을 따스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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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ver.me/IgtL9m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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