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직원들이 모두나가자 송아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사무실 옆에 있는 리허설룸으로 들어간다
누군가를 보고 멈칫하던 송아가 얼른 나가려고 하다가 끌리듯 피아노선율을 시선으로 쫓는다
준영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송아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핸드폰 진동음에 준영이 송아를 돌아본다
"엇 죄송합니다 아무도 안계신줄 알고.."
"아니에요 아, 여기 쓰세요?"
"어, 아니, 아니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앗"
준영이 기억을 떠올린다
"너 이름이 뭐야?!"
"채송압니다.."
비를 피해 빌딩 입구에 서 있던 송아도 떠오른다
준영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친다
#이 날 저녁, 돼지갈비집
송아가 치마때문에 불편한 자세로 좌식테이블 앞에 앉아있다
종업원이 송아 쪽 테이블에 병맥주를 갖다준다
"얘는 왜 안와"
"누구 와요?"
"준영이, 오라 그랬는데 연습하느라 잊어버렸나"
"전화를 해보세요! 그럼"
"번호를 몰라, 아직 한국휴대폰을 안했다고 했거든"
"송아씨, 미안한데 준영이 좀 데려올래요?"
"아 네!"
송아가 절뚝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온다
송아가 옷냄새를 맡아보고 냄새를 빼려는듯 자켓을 펄럭인다
백팩을 맨 준영이 간판을 확인하면서 오다가 송아와 딱 마주친다
"엇,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 저 경후문화재단 인턴 채송아라고 하는데요, 회식에 오신다고 해서 근데 안오셔서 제가 모시러 가려던 길이었는데.."
"오셨네요"
"아 네, 늦어서 죄송해요"
"아뇨 아 그럼 들어가시겠어요?"
"네"
문을 열어주려던 준영이 송아가 절뚝거리는걸 본다
"괜찮으세요?"
"아 아하 네 괜찮아요, 제가 지금 다리가 조금 저려가지고"
"아- 그러면 잠깐 있다가 들어가요"
"엇 아니, 아니에요 괜찬... 그럼 딱, 30초만.."
"네, 30초"
"아 그, 한국 핸드폰이 아직 없으시다고 해서 그래서 제가 모시러가던 길이었어요"
"아- 휴대폰 방금 했어요, 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네? 제 번호요..?"
"네, 아까 유진대리님이 앞으로 리허설룸쓰려면 미리 연락드리라고.."
"아 네네"
송아가 핸드폰을 받아서 입력하고 돌려준다
"여기요, 아 이름이 최 아니구요 채소할때 채.."
"네 알아요 채 송 아"
준영이 이름을 입력한다
기분이 이상한듯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송아가 고개를 드는 준영과 눈이 마주친다
송아는 어색하게 웃는다
"아, 30초"
"네"
준영이 문을 열어서 송아를 먼저 들여보내고 들어간다
#공항 입국장
송아가 입국장 펜스 앞에서서 설레는 눈빛으로 문을 보고 있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던 송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는 준영을 발견한다
고개를 돌리던 준영도 송아를 본다
둘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둘 사이에 낯선이 세 명이 서 있을 정도로 떨어져 서 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나란히 서 있다
"누구, 마중나오셨어요?"
"네 친구가 와서..친구요! 남사친 그니까 그냥 남자인 친구!"
준영이 송아가 메고 있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잠깐 본다
"악기 만들고 고치고 하는 친군데 제가 악기 소리가 이상하다고 했더니 봐준다고 해서.."
"아- 네"
"누구.. 마중나오셨어요?"
"아 저도 친구요"
"아- 하하"
"근데 경후문화재단 들어갈 땐 무슨 시험을 보세요?"
"실내악 공연기획안을 쓰는건데요 연주 프로그램하고 홍보마케팅안을 썼어요"
"와 멋지네요"
"하핫, 누구나 쓸 수 있는거예요"
"누구나 쓸 수 있으면 아무나 다하게요? 송아씨는 어떤 곡들로 짜셨어요?"
"그냥 별 거 아니었어요"
"얘기 해주시면 안돼요?"
"브람스하고 슈만하고 클라라요"
"...테마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나봐요.."
"아니요 세 사람의 우정이요, 브람스 좋아하세요?
(송아 나레이션)
나는 왜 그렇게 물었을까 그 때
그가 대답했다
"아뇨 안좋아합니다 브람스"
"송아! 채송아!"
입국장을 나오던 동윤에게 송아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동윤 쪽을 보던 준영의 표정이 정지된다
브람스가 평생 사랑했던 사람은 선배 음악가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슈만의 아내 클라라였다
같은 음악가였던 클라라는 브람스의 곡을 자주 연주했지만 그녀의 곁엔 항상 남편 슈만이 있었다
과거의 어느 날, 현호가 첼로를 켜면서 바이올린을 켜는 정경과 미소를 나눈다
그런 클라라의 곁에서 브람스는 일생을 혼자 살았다
준영이 보고 있는 사람은 나란히 서있는 정경과 현호다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동윤에게 송아도 손을 흔든다
나중에 알았다
그는 브람스를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얼어붙은 채로 현호와 정경을 바라보는 준영을 송아가 잠시 쳐다보다가 동윤에게 미소를 보낸다
입국장 펜스를 가운데 두고 준영과 송아, 동윤, 정경, 현호.
다섯 젋은이의 복잡한 시선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