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후재단 로비
송아가 보안대를 통과해서 로비로 나온다
"송아씨"
멈칫하던 송아가 복잡한 표정으로 준영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다
#밤거리
"어젠 미안해요 답장 못해서.. 사정이 좀 있었어요"
"괜찮아요, 정경씨 일이에요? 어젯밤에 저 정경씨랑 있었어요 준영씨가 정경씨한테 전화했을때요"
준영의 표정을 살피는 송아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스친다
두 사람은 조금 떨어져서 나란히 걷고 있다
"좋은 일은 안 궁금해요?"
"아, 맞다 좋은 일 있다고 했죠 뭐예요?"
"대학원 시험 보기로 했어요 서령대요"
"아 그래요, 잘될거예요"
"..고마워요"
"우리, 친구하쟀었죠 준영씨가 근데, 얼마든지 힘들때 연락하래놓고 말 바꿔서 미안한데요.. 나 준영씨랑 그런 친구는 하고 싶지 않은거 같아요 힘들 때 보고 싶다면서 그래서 만나자고 해놓고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뭐가 힘든지.. 아무 얘기도 안해주고 그런거, 그런 친구는 안할래요"
"..미안해요"
(송아 나레이션)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건 아니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속상하다 힘들다 울고싶다
송아는 버스 창가자리에 앉는다
준영이 창 밖에서 보는걸 알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 얘길 할 수 있는 친구를 하고 싶었다
버스가 출발한 후에야 송아가 뒤를 돌아본다 고개를 바로하는 송아의 얼굴이 물기로 젖어있다
#개강 첫날, 서령대 음대 강의실
"우와, 언니 방학동안 연습 진짜 열심히 했나봐요 여기 자국 진해졌어요"
"아 그래?"
"언니 인턴했다면서요, 연습할 시간 있었어요?"
"그냥 주말에 좀 몰아서 하고, 회사 점심시간에도 조금씩 하고"
"회사 점심시간에요? 어디서요?"
"거기 리허설룸 있거든"
"아- 그런데가 있었구나"
"연주자분들 와서 연습도 하고 그러시더라고"
"연주자 누구요?"
"어- 박주.."
"박? 누구요?"
"..박준영"
"와 대박 언니 그럼 거기서 박준영 만났어요?"
"..응"
"수정아 밥먹자 언니, 밥!"
"아, 너네끼리 먹어"
"그럼 맛점하세요"
송아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하지만 혼자가 되자 금새 미소가 사라진다
송아가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휴지로 물기를 닦는다
그러던 송아는 왼쪽 손가락 끝 굳은살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송아 나레이션)
손 끝에 굳은살이 단단해지면 마음의 굳은살도 단단해질 것만 같았다
복도로 나온 송아는 준영이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걸 본다
어차피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이제 괜찮을거라고
송아가 준영을 지나쳐간다
매일매일 주문을 걸었었는데
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여학생들에게 싸인해준다 송아와 같은 수업을 듣는 지우와 수정도 그 무리에 있다
송아는 출입문을 열고 나온다 그런데 준영이 그 모습을 본다
송아가 어두운 얼굴로 건물을 뒤로 한다
"송아씨"
멈칫하던 송아는 울컥하는 감정을 누르려는듯 걸음을 빨리 옮긴다
"송아씨!"
준영이 달려와서 송아의 앞을 막는다
"송아씨"
준영을 보는 송아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괜찮아요?"
송아는 눈물이 터질 것 같은지 등을 보이고 돌아선다
"네... 괜찮아요"
아니
송아가 떨리는 입술을 손으로 가린다
괜찮지않다
나는
송아가 준영을 돌아본다
당신을
"좋아해요"
어쩌지 못할 만큼 아주 많이
"좋아해요 준영씨"
흔들리는 준영의 시선과 물기어린 송아의 시선이 조용히 만난다
마음의 굳은살에 기대보려던 나의 야심찬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