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어본 건 오랜만인데

이게 전집이라 초반부는 좀 어렸을 때 쓴 시들이 많아서 그런지

윤동주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비장함, 자아성찰 이런 것보다

몽글몽글한 시가 많아서 놀랐음..

마음에 들었던 거 몇 편만 발췌해봄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옇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