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참 와닿게 쓰는 작가 - 공감대를 샘솟게 하는 작가란 생각이 드는 최은영의 짧은 소설집인데, 나덬은 특히 '지나가는 밤'이 인상 깊어서 얘기하고 싶었다.
생활력 강한 홀어머니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왔던 두 자매가 그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성장하며 겪게 되는 관계의 변화, 심리 상태를 담담하게 쓴 소설.
나덬은 손위 누이인 입장인 데도 두 자매 중에서 언니 쪽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더라. 또 그런 만큼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독자들이 읽으면서 감정 이입하는 대상에 따라서나 또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상도 모두 다르리라 생각해.
하지만 몇몇 문장들은 그러한 개인적 동감의 여지를 떠나, 그냥 고개 끄덕이게 만드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서 말야.
특히 나덬 맘에 와 닿은 부분 조금 인용해 본다.
"...어쩐지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인데도 입이 막힌 것처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동생에겐 칭찬을 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기다림은 언제나 가슴이 뻐근할 만큼 고통스러운 즐거움이었다...(중략)...그때의 기다림을 아프게 기억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