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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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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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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17-18)

 

 

제2차 세계대전 때 참전해 독일군과 맞서 싸웠던 여자들의 이야기

여기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10대 중후반 정도의 소녀들이야

여성용 군복이나 군화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아서 남성용으로 지급된 것을 어떻게든 입어야 했고, 화장실도 마땅치 않았던 전선에서

그들은 소총을 들고, 참호에 몸을 숨기고, 자신보다 훨씬 무거운 부상병을 전장에서 끌고 오고, 지뢰를 제거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어

 

그들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지

하나는 '여자애들이 철없게 구는 거다', 다른 하나는 '저들은 여자도 아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그냥 둘 다야

 

한 면에는 '아름다움', '여성성'을 지키고 싶어했던 병사들의 이야기가 있어

군복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가제로 칼라를 만들어 달고,

전쟁 중 목욕탕에 들렀을 때 다같이 눈썹을 물들였다가 상관에게 혼나고,

독일의 어느 성에 머물렀을 때 예쁜 드레스를 하나씩 입어 보고,

주인이 떠난 모자 가게에서 어울리는 모자를 써 보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쓰고 있고 싶어서 모자를 쓴 채 잠들고,

기쁜 일이 생겨 집에서 챙겨 왔던 귀고리를 달고 보고하러 갔다가 상관에게 혼나고,

흉하게 죽는 것이 싫어서 얼굴부터 가리고,

어린 소녀병사들의 머리를 솔방울로 구불구불하게 말아 주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 상관이 미용사를 불러 주겠다고 하자 기뻐하고...

어떻게 보면 대단히 '철없는' 행동이야. 아니 전장에서도 '꾸밈'을 못 잃는다고?

하지만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또 한 면에는 흔히 '가장 여성다운 것', '여성의 힘'이라고 여겨지는 '모성애'를 '버린' 병사들의 이야기가 있어

검문을 피하기 위해 포대기에 싼 아기의 피부에 소금을 문질러 열이 나게 해서는 전염병에 걸렸다고 둘러대고,

그 포대기 안에 옮겨야 할 물건들을 가득 싸매고,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어내고...

'모성애'가 있는 여자라면 자기 자식들을 이렇게 이용하고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았겠지. 어떻게 '어머니'가 이럴 수 있어?

하지만 마찬가지로, 제삼자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다른 모든 병사들이 그렇듯, 그들 역시 전쟁 이후에도 고통에 시달려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육체적 장애가 남은 사람도 있고,

밤이면 악몽을 꾸며 발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큰 소리에 겁을 먹거나 빨간색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돌아갈 집도, 맞아줄 가족도 남지 않은 사람도 있어

 

그런데 여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남자들은 겪지 않을 고통이 덧씌워지지

전장에서 전우였던 남자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그들이 '남자를 찾아 연애하려고' 갔다온 것이라면서 비난해

전장에서 돌아온 남자들은 영웅이지만, 전장에서 돌아온 여자들은 '여성성을 잃은 여자', 그러니까 결혼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된 거야

80년 정도 지난 지금은 좀 다를까? 과연?

 

"그런 여자들이랑 정찰은 같이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혼은 하지 않을 거요. 그게, 그래요…… 우리 남자들은 여자를 엄마나 아내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요." (166)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221)

"남자들이야 다리가 어찌되든 무슨 상관이겠어? 남자들은 설사 다리를 잃는다 해도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었지. 어쨌든 영웅이 될 테니까. 결혼도 문제없고! 하지만 여자가 다리병신이 되면, 그걸로 인생은 끝난 거야." (340)

 

 

 

끝으로 내 마음에 깊이 남았던 이야기가 있어

아마 위생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병사가 빵 수레를 끌고 가다가 어린 독일군 포로가 끌려가는 걸 본 거야

포로는 빵을 갈망하는 눈으로 보고 있었고, 병사는 커다란 빵 덩이를 떼어 포로에게 줘

매번 밀려들어오는 부상병들을 보며 살았으니 전쟁-적군의 잔혹함에 대해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누군가는 이 장면에 대해 '여자들은 하여튼 동정심이 문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행동한 순간 병사는 행복을 느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뻤어…….'(157) 그리고 또 그렇게 생각한 자신에게 놀라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때 병사는 자신이 아직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한 것 아니었을까?

 

 

굉장히 긴 책이고(560페이지...) 괴롭고 잔혹한 이야기도 많지만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다 읽게 되어서 좋았어

관심 있다면 시간 널널할 때 한번쯤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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