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기록도 해놨는데 마치 운명 같죠 안 그래도 신경쓰여서 페스트를 읽을까 이방인을 읽을까 하고 있었는데 글쎄 먼클로 등장을 🙄
신기해서 기록해뒀던 거 벗들이랑도 공유해봐 ㅎㅎ
김민정 <읽을, 거리>
카뮈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서로 모순된 양면적 세계에 민감한 작가였어. 나는 그게 특히 공감이 가. 무엇보다 그는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인간의 생명을 최상의 가치로 제시하고 있는데 노벨상 수상 연설만 봐도 그래. 대충 요약하면 "나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정의가 나의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면 나는 어머니의 편을 들겠다!" 보라고, 카뮈에게는 추상적인 이론보다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공감이 더 가까이 있다고. 카뮈가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오늘에 와서도 나는 『섬』 속에, 혹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말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이기나 하듯이 쓰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일을 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스스로에게 온 이같은 행운을 기뻐할 뿐이다." 그런데 내가 카뮈에 대하여 그래. 카뮈가 한 말인데 나 스스로 내 말처럼 믿게 되어버린 게 많아. 그건 카뮈가 그랬듯 나 역시도 내 근본에 살냄새가 나는 휴머니즘의 믿음이 있어서일 거야. 만약 그게 낡은 거라면 카뮈와 함께 나도 낡았을 거야. /68 p. (이화영 교수님 인터뷰)
박선영, <그저 하루치의 낙담>
44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뮈는 한 달 뒤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요 얼마 동안 저를 에워싸고 시끄러웠던 소음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려 이제야 선생님께 진심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막 저 자신이 얻고자 청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과분한 영예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제가 어머니 다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선생님이 그 당시 가난한 어린 학생이었던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리고 손수 보여 주신 모범이 없었더라면 그런 모든 것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영예를 지나치게 중요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선생님이 어떤 존재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드리고, 선생님의 노력, 일, 그리고 거기에 바치시는 너그러운 마음이 나이를 먹어도 결코 선생님께 감사하는 학생이기를 그치지 않았던 한 어린 학동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 있음을 선생님께 말씀드릴 기회는 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키스를 보내며.
알베르 카뮈
(*카뮈 소설 속 베르나르 선생님의 실제 이름은 제르맹이다. 제르맹 선생님 은 카뮈에게 보내는 편지를 항상 "그리운 아이에게"로 시작한다. 노벨상 수상 직후 카뮈가 쓴 위의 저 편지를 서한문학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이 벤트 시리즈인 런던의 '레터스 라이브(Letters Live)' 행사에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읽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아름답다.)
어때 일리있지 🙄 가서 결제하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