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삼체 한줄요약
= ‘외계인이 쳐들어옴’을 2000페이지로 서술하시오.
좀 더 길게 요약
= 외계인이 쳐들어왔을 때 인류의 대응안을 우주철학적 관점에서 서술하시오.
며칠 전에 삼체3 읽는 중에
청신이 스위치 던지는 순간 나도 책 던져버리려다가
도서방 덬들에게 한탄글 썼더니 다들 완독을 독려해줘서 무사히 다 읽었어.
나한테 스위치 줬으면 경보 울리자마자 버튼 눌렀을텐데
(애초에 나한테 스위치를 안 줬겠지만 ㅋㅋㅋ)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나는 철학적, 사상적 바탕이 부실하다는 의미겠지 ㅠㅠ
그리고 챗지피티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청신에 대한 빡침의 원인을 혼자 분석해봤어.
나는 왜 청신에게 짜증이 났는가
>> 내가 청신에게 이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왜 이입하지 못했나
>> 작가가 캐릭터에 이입할 수 없게 캐릭터를 구축, 활용했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이 사태의 시발점인 예원제에게는 이만큼 화가 안 났음.
왜냐하면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 비극을 1권에서 충분히 보여주면서
캐릭터의 행동에 개연성이 생겼으니까.
근데 청신은 ‘모두가 (예쁜) 청신을 사랑해’의 세계에서
굴곡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똑똑하고 운때 잘 맞아서 취업 잘 하고 보니 ‘내가 이 세계의 검잡이?’ 상태가 돼서 내가 캐릭터에 이입할 틈이 없었어.
게다가 작가가 세계관 위주로 글을 끌고 가다보니까
캐릭터의 욕망이나 동인이 무시된 채 (독자에겐 고구마인) 선택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됨.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를 작가가 직접 등장해서 계속 서술할 수 없으니까
청신을 계속 동면 시켰다가 시대 바뀌면 깨우고 옆에 설명충 캐릭터를 붙여서 바뀐 세상을 구경시켜줌.
그러니까 청신은 캐릭터로서의 욕망도 무시되고 현실감각도 떨어져보이는 도구적인 캐릭터로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었어.
청신 캐릭터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불호와는 별개로 삼체 세계관은 아주 흥미로웠고 (특히 2권까지는) 진짜 재밌게 읽었어.
3권은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
작가가 이 세계관으로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내달린 부분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함 ㅋㅋㅋ
내 인생책이 프로젝트 헤일메리인데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외계와의 조우 희망편,
삼체는 절망편이라는 느낌도 들었어.
내 의지로는 선뜻 읽기 시작하지 못했을 거 같은데
도서방 덕분에 완독까지 해서 뿌듯하다!
다들 고마워!